영어의 어려움을 몇 사람과 이야기하다가 문득 내가 철자 때문에 곤혹스럽던 경험이 떠올랐다. 학위를 마치고 처음 한 미국 대학에 조교수로 강단에 섰을 때 판서하기가 무서웠다. 영어 철자가 자주 틀리고, 철자가 확실치 않아 망설이면 학생들이 눈치채고 불러주었다. 틀린 철자를 학생들이 고쳐주는 일, 그것이 실력 없고 자격 없는 나를 드러내는 것 같아 두려웠다.
학위만 마치면 그리고 직장만 잡으면 만사가 순조로울 것 같던 강의 듣고 시험 보던 학생 시절이 그리워졌다. 빨리 하면 좋을 것 같아 삼 년에 학위를 마친 것을 후회했다. 미국 대학에 머물 양이면 몇 년 더 공부하며 준비를 했어야 하는 것이었는데. 딴 어려움도 있고 해서 교수직을 팽개치고 딴 일을 찾아보던가 아니면 내 말 쓰고 내 말하는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내가 왜 영어 철자법에 약할까? 내 정신 기능 중에 철자를 담당하는 기능이 약한 가? 미국에서 초중등학생 때 받는 철자교육을 건너뛴 탓인가? 영어 단어들은 세계각국에서 수입되어 단어들이 일관된 철자의 규칙을 엉망으로 흐려 놓은 점 때문인가? 그 모든 조건들이 다 나를 어렵게 하는가?
문제는 교수로 살려면 철자를 익혀 직무 수행에 지장이 없도록 해야 되었다. 4학년에서 10학년까지의 철자 교본을 샀다. 약 1,200쪽이었다. 한 시간에 5 쪽을 공부하고 하루에 한 시간씩 한 달이면 최소한 100쪽쯤 하게 되고, 1,200쪽을 하려면 1년 정도면 끝난다는 계산이 나왔다.
철자 교본을4학년 교재부터 시작했다. 연습장 위에 써보고, 틀린 단어는 딴 노트에다 적어 두었다가 틈나는 대로 다시 연습했다. 강의를 준비할 때, 신문이나 잡지를 읽을 때 철자에도 관심을 가졌다. 하니까 나아졌다. 걱정만 하는 대신 착수할 구체적인 과업이 있으니 자투리 시간들이 투자되었다.
1977년 어느 날 컬럼비아 대학교 수학교육과 과장인 부르스 보겔리 교수가 하는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아 글쎄 수학 교과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인기 있는 수학교과서를 쓰는 유명한 교수가 판서 할 때 틀린 철자가 보였다. 누군가 지적하자, 보겔리 교수는 틀린 철자를 고쳐 쓰면서, 그의 강의 시간에 그의 틀린 철자를 찾아 고쳐주는 학생들이 몇 명씩 나오고, 그런 영광을 누리는 학생들 때문에 메마른 강의가 부드럽게 된다고 했다. 자기는 초등학교 시절 전쟁 때문에 철자 공부할 최적의 시간을 놓쳤기 때문에 철자에 약하다고 했다. 당시 근무하던 대학에 사학과 교수를 만나 보겔리 교수의 철자법에 관한 변명을 말하니, 자기도 철자때문에 고민인데 보겔리 교수의 변명, 전쟁 때 제대로 철자학습을 못해서 철자를 자주 틀린다는 변명을 써먹어야 갰다고 즐거워했다.
철자법 때문에 고민하던 때가 한 고비였다. 딴 어려움도 많은데 철자법까지 말썽을 부려 때려치우고 싶었던 고비, 소처럼 잘 견디어 낸 것 같이 생각된다. 지금 돌아보니, 살다 보면 그만한 고비는 무슨 직업이거나, 어디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다. 산다는 것은 어려움을 만나 도전하고 해결하는 과정인 것 같다.
컴퓨터가 대중화되고 나서는 파워포인트로 강의 준비를 미리 해서 강의 시간에 컴퓨터 프로젝터로 보여주니 칠판에 분필로 쓸 필요가 거의 없이 강의했다. 40 여년을 미국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다 은퇴하고 영어로 책도 쓴 나는, 영어를 읽고 듣고 쓰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으리라고 나의 한국인 친구들은 믿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아직 일할 때도 미국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그램을 즐길 만큼 유머를 이해 못했고, 학생들이 가끔 던지는 농담을 이해 못해 당황할 때가 있었다. 교실에서 판서 할 때 철자를 몰라 학생들에게 물을 때가 많았다. 은퇴하고 십년, 지금은 그나마 익힌 영어를 안 쓰고 한국 말만 쓰니, 내가 미국 대학에서 40년 동안 일 한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