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씨가 써서 나누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같은 동네에서 오랜 동안 이웃으로 살다가 은퇴하고 딴 도시로 가서 살던 Y씨가 남편과 함께 우리가 은퇴하고 이사 온 애틀랜타를 방문했을 때, 그녀는 지병을 앓으면서도 얼굴이 수련같이 온화하고 행복해 보였다. 녹내장으로 시력이 나빠져 꼭 쓰고 싶은 글을 못쓰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그 엄마에 그 딸’ 이라는 말, ‘가난은 대물림 된다’라는 말,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라는 말을 180도로 뒤집은 대표 같은 Y씨, 그래서 나는 그녀가 존경스럽고 호기심이 갔다. Y씨는 수기를 써서 신문에 연재했고 나는 그녀의 수기를 감동 깊게 읽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육이오 전쟁 폐허속에 가계를 책임진 장녀로 미국병사들과 살았다. 임신 된 애를 떼려고 배를 때리고 높은 데서 뛰어내리기도 했다. 아빠도 없이 출생된 혼혈 사생아, 그 사생아가 그녀였다. 엄마는 계속 일하고 그녀는 병든 할머니와 가난한 이모의 돌봄을 받았지만, 많은 시간 혼자 자랐다.
그녀의 수기중에 그녀의 상처로 생각나는 몇 가지는: 네 살이 안된 그녀가 혼자 빈 집에서 자다가 새벽 징징징 굴뚝 청소하라는 징소리에 잠이 깨어 문을 열어도 자물쇠가 잠긴 아무도 없는 추운 빈집에서 혼자 울던 일, 학교 가기 전 엄마와 살 때 세를 든 판자집에서 세도 안 내고 나가지도 않는다고 주인이 엄동 설한에 문짝을 뜯어내어 찬바람에 떨다 쫓겨난 일, 혼혈아동 복지회의 도움으로 중학교를 다닐 때, 버스에 탄 그녀를 엄마가 맨발로 쫓아와 머리채를 잡아 끌어내며 이 년아 학교는 무슨 학교, 가서 돈 벌어 오라고 소리치던 일, 아이노코 할아버지 혹이 12개라며 애들이 그녀를 왕따 시킨 일, 자살하려고 약을 먹고 혼수에 빠졌다가 살아난 일, 혼혈인 이기에 무사당한 서러움들.
전쟁 혼혈아들을 돕던 펄벅재단의 도움으로 대학을 나온 그녀는 같은 과정을 거친 혼혈인 남편과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았을 때, 그녀는 엄마를 불러 같이 살았다. 엄마는 손녀들을 돌봐 주었다. 할머니의 불평에 찬 잔소리하는 버릇, 불평과 비판의 소리, 내 딸 고생시키는 놈이라는 잔 소리 때문에, 사위가 집을 나갔다. Y씨와 아이들도 사위를 따라 나왔다.
Y씨 가족은 미국 와서 열심히 살았고 세탁소를 하며 경제적인 여유도 있을 때 불쌍한 엄마를 미국으로 모시고 왔다. 큰 손녀는 고등학교에서 우등생이고, 토론 반 반장, 치어리더 단장, 학교의 자랑인데, 손녀가 짐을 싸서 할머니와는 같이 못살겠다고 집을 나가겠다고 했다. 손녀를 보면 쫓아다니며 시시콜콜 잔소리, 신발이 가지런히 제자리에 안 있다고, 옷은 왜 방바닥에 있냐고, 왜 말을 안 듣느냐고 잔소리를 했다.
한인 교회에서 엄마가 친구도 사귀고 자기 자신처럼, 하나님을 만나 전의 고생이 지금의 보상처럼 넉넉하고 다 잘되게 한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기를 바랐지만, 엄마는 받은 상처들의 아픔 속에 갇혀, 교회도 사람들도 관심이 없고, 누구에게 이야기를 하지도 않고, 누구의 이야기에 공감하지도 않아 안타까웠다.
세탁소를 팔고 큰 딸네 집 가까이 은퇴한 Y씨는 아주 행복하다고 했다. 하버드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한 큰딸은 패이스북회사에서 간부로 일하고, 둘째 딸도 전문직장인으로 엄마와 언니 가까이 살고 싶다고 집을 사 놓았다.
전화 걸어 엄마 아이스크림 먹으려 갈까? 그래서 딸들과 아이스크림을 들고 호수변을 걷는 작은 행복들. 그렇게 다정한 엄마, 손자 손녀들을 사랑으로 보듬어 주는 엄마, 사랑하고 사랑받는 엄마, 그녀의 행복이 그녀의 얼굴에 보였다.
어떻게 Y씨는 자신의 엄마와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 교육, 좋은 남편, 사업의 성공, 바뀌어진 세상? 그녀의 수기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다.
행복한 그녀가 녹내장 때문에 글을 못써 아쉬워한 것, 그것은 무엇일까? 그녀가 써서 발표한 수기에서, 전에는 ‘왜 나는’ 하고 혼혈 사생아의 불평불만을 달고 살던 그녀가 인생 후반에서는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은혜를 주시는 가’ 하고 끝 없는 감사를 표현했다.
혹시 그녀가 글로 쓰고 싶었던 것은 못다 쓴 그 은혜의 감사가 아니었을까? 그녀와 같이 출생에서부터 차별, 가난, 잡초처럼 짓밟히며 산 영혼들에게도 다 하나님은 섭리속에 마련하신 은혜가 있다고, 나를 보라고, 그 은혜를 찾으라고 알려주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아니었을까?
그녀를 알고 내가 배운 것도 바로 그것, 사람의 상식을 깨는 기적 같은 은혜가 있다는 증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