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의 ‘제2의 독립전쟁’으로 애국심 고취
멕시코와의 전쟁 후 텍사스·캘리포니아 획득
스페인 전쟁으로 필리핀·괌 등 차지 식민지화
#. 1812년 영국과의 전쟁
미국의 국가(國歌)는 1931년에 지정된 ‘The Star-Spangled Banner(별이 박힌 깃발)’이다. 통상 ‘성조기여 영원하라’라고 번역되는 이 미국 국가는 대한민국 애국가와 달리 제대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한다. 워낙 고음까지 올라가야 하는 곡조도 그렇고, 가사도 19세기 고어들이 많아 외우기가 쉽지 않다는 게 이유다.
그럼에도 미국인들은 공적 이벤트나 중요 행사 때는 꼭 한 번씩 듣거나 함께 부른다. 특히 대통령 취임식 때나 NFL 슈퍼볼 경기 때 부르는 유명 가수의 독창은 가슴을 뭉클하게 하며 불끈 애국심을 고취하곤 한다.
이 노래가 탄생된 계기가 된 것은 1812년 발발한 영국과의 전쟁 때다. 가사의 배경이 된 맥헨리 요새(Fort McHenry)는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항을 방어하기 위해 1798년 건설된 요새이다. 전쟁이 발발하자 영국군은 수도 워싱턴 DC를 불태우며 승승장구하면서 1814년엔 볼티모어 맥헨리 요새까지 공격해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런데 폐허의 포연 속에서도 미국 국기 하나가 아침 햇살에 힘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우연히 그 광경을 본 프랜시스 스콧 키(Francis Scott Key)라는 사람이 급히 수첩을 꺼내 그 감동을 한 편의 시로 적어 내려갔다. 이 시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애국심을 고취했고 마침내 미국 국가 가사로까지 채택되었다.
미국 국가
The Star-Spangled Banner
O say, can you see, by the dawn’s early light,
What so proudly we hailed at the twilight’s last gleaming,
Whose broad stripes and bright stars, through the perilous fight,
O’er the ramparts we watched, were so gallantly streaming?
And the rockets’ red glare, the bombs bursting in air,
Gave proof through the night that our flag was still there.
O say, does that star spangled banner yet wave
O’er the land of the free and the home of the brave!
성조기여 영원하라
오, 말해주오, 그대 보이는지, 이 새벽 여명 속,
황혼의 미광 속에서 우리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환호하며 맞았던
넓은 줄무늬와 빛나는 별들이 이 치열한 전투 속에서도
저기 성벽 너머 당당히 나부끼고 있음이.
로켓의 붉은 섬광과 하늘 높이 작렬하는 폭탄이
밤새 우리의 깃발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음을 증명할지니.
오, 말해주오, 성조기는 여전히 휘날리고 있는지
자유의 땅이자 용기 있는 자들의 고향에서.
그렇다면 1812년 전쟁은 어떤 전쟁이었을까.
1800년대는 신생 독립국 미국이 안으로는 국가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고 대외적으로는 국가의 위신과 존재감을 높여가던 시기였다. 전쟁은 그런 미국에 내부 갈등 봉합과 애국심 고양을 위한 최고의 수단이었다. 미국은 19세기에 외국과 세 번의 큰 전쟁을 치렀다. 그 중 첫 번째 치른 전쟁이 영국과의 ‘1812년 전쟁(War of 1812)’이다.
이 무렵 영국은 유럽에서 프랑스와 교전 중이었다. 이를 위해 영국은 미국 상선 선원들을 강제로 징발하기도 했다. 또 독립전쟁에선 졌지만 미국 땅에선 여전히 종주국 행세를 했다. 당시 제4대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 1751~1826) 대통령은 이를 주권 침해로 간주하고 영국에 선전포고했다. 아직도 국가 체제가 완전히 정비되지 않은 미국으로선 커다란 모험이자 시련이었다.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주제로 한 우표는 역사를 기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1812년 영국과의 전쟁의 주요 전투 장면을 담은 기념 우표 세트.
전쟁이 터지자 영국군은 총력으로 미국을 압박했다. 새로 건설한 수도 워싱턴이 쑥대밭이 되고 국회의사당과 백악관도 불탔다. 미국은 끈질기게 저항하면서 전쟁은 교착상태가 되었다. 협상이 시작되고 양국은 전쟁 전 상태로 원상 복귀하기로 합의했다. 전쟁은 흐지부지 끝났다. 미국도 영국도 별 소득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미국은 아니었다. 여전히 세계 최강이었던 영국과의 전쟁은 사실상 ‘제2의 독립전쟁’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승리의 자부심이 전국에 퍼져갔다. 대외적으로도 신생 미국의 위신이 크게 높아졌다. 전쟁을 수행한 매디슨 대통령의 인기도 덩달아 치솟았다. 뉴욕 맨해튼의 매디슨 스퀘어가든 같은 지명은 그의 이름을 기린 것이다.
#. 텍사스 합병과 멕시코 전쟁
19세기 초만 해도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 텍사스 등 서남부 대부분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멕시코가 차지하고 있었다. 서부 개척의 바람을 타고 미국인들이 그 땅으로 몰려갔다. 1820년대 텍사스의 미국인은 이미 2만 명을 넘고 있었다. 멕시코 땅이라고는 했지만 더 이상 멕시코의 지배력이 먹히질 않았다. 미국인들과의 충돌은 필연적이었다.
반항하는 텍사스인들을 진압하기 위해 1836년 멕시코 토벌대가 들이닥쳤다. 텍사스 민병대는 샌안토니오 인근 알라모(Alamo)에서 이들에 맞섰다. 하지만 중과부적으로 187명 전원이 장렬하게 전사했다. 텍사스인들은 “알라모를 잊지 말자”며 더욱 맹렬히 싸웠다. 결국 샘 휴스턴 장군이 이끄는 민병대가 샌 하신토 전투에서 멕시코 군대를 물리쳤다.
텍사스는 바로 독립을 선언했다. 휴스턴 장군은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텍사스 주민들은 독립 국가로 남기보다는 미국 연방으로 편입되기를 더 원했다. 하지만 노예 문제를 둘러싼 연방 내 갈등으로 곧바로 연방 편입은 이뤄지지 못했다. 텍사스 공화국(1836~1845)이 별도 국가로 9년이나 존재하게 된 이유였다. 1845년, 텍사스는 28번째 주로 미국 연방이 됐다.
(왼쪽부터) 맥헨리 요새 폐허 위에 나부끼는 성조기를 보고 미국 국가 가사를 쓴 프랜시스 스콧 키(1814), 텍사스 알라모 전투(1936), 텍사스 합병(1845) 기념 우표
텍사스 병합 이듬해인 1846년, 리오그란데 강 유역에서 미국 국경수비대와 멕시코 군대와의 작은 충돌이 일어나 몇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당시 11대 대통령이었던 제임스 K. 포크(재임 1845~1849)는 5월 12일 멕시코에 선전포고를 했다. 멕시코-미국전쟁(Mexican-American War)의 시작이었다. 전쟁 전부터 미국은 캘리포니아 땅을 노리고 있었다.
신의 명백한 계시(Manifest Destiny)라면서 미시시피강 서쪽 태평양까지 모두 미국이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캘리포니아 매입을 몇 차례 타진했지만 멕시코가 응할 리 없었다. 포크 대통령은 무력을 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 전쟁의 빌미가 찾은 것이다.
미국은 대기하고 있던 육·해군 공동 작전으로 순식간에 캘리포니아를 점령했다. 리오그란데 쪽에서도 싱겁게 승리를 거둔 데 이어 뉴멕시코 산타페를 점령하고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까지 진격했다. 1847년 9월 17일 수도가 함락되면서 멕시코는 사실상 항복했다.
이듬해 1848년 과달루페 이달고에서 강화조약이 체결되었다. 리오그란데강 이북 애리조나와 캘리포니아는 이제 미국 땅이 됐다. 미국은 전쟁 배상금 명목으로 멕시코에 1500만 달러를 지급했다. 멕시코가 미국에 진 빚 325만 달러도 탕감해주었다. 형식상 캘리포니아 매입이었지만 명백한 침탈이었다. 멕시코로선 땅을 칠 노릇이었다. 하지만 힘이 없었다. 약육강식의 냉엄한 국제 질서였다.
#.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Spanish-American War)전쟁은 쿠바 독립 문제로 쿠바와 필리핀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당시 쿠바는 스페인의 오랜 식민지였다. 하지만 지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쿠바는 이미 미국에 많은 것을 의존하고 있었다. 스페인의 잔혹한 식민통치가 불편했다. 쿠바인들은 독립을 원했고 미국도 거들었다. 극우 신문은 스페인과의 일전불사를 부추겼다.
마침 쿠바 아바나 항에 정박 중이던 미국 순양함 메인호가 원인 모를 폭발 사고로 승무원 260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스페인을 의심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결국 미국은 ‘메인호를 잊지 말자’며 1898년 4월 20일 스페인에 선전포고했다.
(왼쪽부터) 캘리포니아 연방 편입(1850), 개스든 지역 매입(1853), 메인호 침몰 사건을 빌미로 시작된 스페인과의 전쟁(1898) 기념 우표.
전쟁은 쿠바가 아닌 태평양의 스페인 식민지 필리핀에서 먼저 시작됐다. 듀이 제독이 이끄는 미국 함대가 5월 1일 스페인 함대를 격파하고 필리핀을 점령했다. 쿠바에서는 훗날 대통령이 되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령이 이끄는 특공대가 산티아고에 상륙, 스페인 방어군을 무너뜨렸다. 필리핀에서도 쿠바에서도 미국 측 희생자가 거의 없는 완벽한 승리였다. 역사가들은 이 전쟁을 ‘소풍 같은 전쟁’이라고 평했다.
이 전쟁의 승리로 미국은 다른 유럽 열강들처럼 본격적인 식민지 제국주의 열강의 길로 본격적으로 들어섰음을 세계에 알렸다. 스페인은 쿠바를 포기하고 필리핀은 단돈 200만 달러에 미국에 양도해야 했다. 괌과 푸에르토리코도 미국령이 되었다. 미국 땅이 될 수도 있었던 쿠바는 애초 약속대로 독립을 유지시켰다.
이종호 애틀랜타중앙일보 대표
19세기 미국의 영토 확장 일지
▶1803년: 루이지애나 매입
▶1812년 : 미영전쟁
▶1818년 : 영국과 캐나다 인접 국경 확정
▶1819년 : 스페인으로부터 플로리다를 포함해 현재의 루이지애나와 미시시피, 콜로라도, 앨라배마주 일부를 매입. 대금은 500만 달러
▶1846년 : 영국과 오리건 조약(Oregon Treaty)을 맺고 영국에게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를 넘겨주는 대신 아이다호, 오리건, 워싱턴주 전 지역과 와이오밍과 몬태나 일부 지역을 미국 영토로 확정
▶1845년 : 텍사스공화국 합병
▶1846년 : 멕시코 전쟁
▶1848년 : 멕시코 전쟁 승리 후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네바다, 유타, 콜로라도, 뉴멕시코, 와이오밍 등을 넘겨받음.
▶1853년 : 남부의 대륙횡단철도 건설을 위해 리오그란데 부근의 멕시코 땅 개스든(Gadsden) 매입. 대금은 1000만 달러.
▶1867년 :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 매입. 대금은 720만 달러.
▶1898년 : 하와이 왕국 병합
▶1898년 : 스페인과의 전쟁으로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괌의 지배권 넘겨받음.
시민권 시험 문제풀이
문. 1800년대에 미국이 치른 전쟁 중 한 가지만 말해 보라. (Name one war fought by the United States in the 1800s.)
답. 1812년 영국과의 전쟁(War of 1812), 1846년 멕시코와의 전쟁(Mexican-American War), 1861년 남북전쟁(Civil War),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Spanish-American War) 중 하나를 말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