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 북쪽 헬렌 인근 명소
등산 즐기는 한인 단골 산행지
두세 시간 걷고 땀 흘리기 좋아
#. 애틀랜타 한인들 많이 사는 동네 가까운 곳엔 높은 산이 별로 없다. 스톤마운틴이나 케네소마운틴이 그나마 조금 높지만 어디든 30분이면 정상에 닫는다. 산 오르기 좋아하는 사람은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럴 때 한 번 가봄직 한 산이 요나마운틴이다.
요나마운틴은 조지아 북부 소도시 클리블랜드와 헬렌 사이에 있다. 등산로 입구까지는 둘루스H마트서 65마일(104km), 1시간 20분 정도 거리다. 해발 고도는 3166피트(965m). 주차장에서 정상까지 편도 2.3마일, 1시간 30분 정도 땀흘려 올라야 한다. 등반 고도(Elevation gain)는 1518피트(462m)다.
둘루스 한인타운에서 요나 마운틴 등산로 입구까지는 65마일 거리다.
처음엔 ‘요나’라 해서 구약성서에 나오는 사람 이름인 줄 알았다.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살아 나온 그 사람 이름이 왜 여기 조지아에 있나 했다. 하지만 요나마운틴의 요나(Yonah)는 ‘곰’을 뜻하는 체로키 인디언 단어였다. 옛날 이곳에 곰이 많이 살아서, 혹은 멀리서 이 산을 보면 웅크린 곰 모습 같아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 같다. 성경 속 인물 선지자 ‘요나’는 영어로 ‘Jonah’라고 쓰고 ‘조나’라고 발음한다.
등산로 입구 주차장. 간이 화장실 주변으로 50~60대 주차 공간이 있다. 뒤로 보이는 산이 요나마운틴이다.
조지아에서 등산 좀 한다는 사람치고 요나마운틴을 모르는 이는 드물다. 산 오르는 맛도 있고, 정상에서의 전망 또한 일품이어서다. 산세가 좋다보니 한인 산악인들은 이곳에서 시산제를 올리기도 한다.
시산제란 무사 산행을 기원하며 매년 1~2월 산신에게 드리는 제사로 한국 산악회의 오랜 전통이다. 보통 돼지머리와 북어, 시루떡, 과일을 준비해 초를 켜고 향을 피우며 진행한다. 술은 꼭 막걸리라야 한다. 제문도 낭독하는데 전에는 유교식 한문이 많았지만, 요즘은 알아듣기 쉬운 한글이 대세다. 이런 것 다 무시하고 자기 방식대로 안전 산행을 기원한다 해도 뭐라 할 사람은 없다. 어차피 산행 즐기는 사람이라면 자유 영혼 갈구하는 사람일 터인데 형식이 뭐 그리 대수겠는가.
#. 한인들은 보통 요나마운틴이라부르지만 정식 이름은 마운트 요나(Mt. Yonah)다. 하이킹 안내 전문 사이트 올트레일스닷컴(AllTrails.com)에도 ‘Mt. YonahTrailhead’라고 검색해야 바로 찾아갈 수 있다고 나온다.
햇볕 좋았던 지난 주말 요나마운틴을 올랐다. 작년 2월 이후 1년여 만이었다. 지난해 처음 갔을 때는 날도 춥고 길도 얼어 고생을 좀 했었다. 안개가 걷히지 않아 그 좋다는 전망도 보지 못하고 내려와야 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오후 1시부터 걸었는데 등산로 초입부터 공기가 달랐다. 연둣빛 봄 향기가 고운 입자처럼 숲속 가득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부드러워진 땅에선 쌓인 낙엽을 뚫고 초록 풀들이 돋아나고 있었고, 한창 새순을 틔우고 있는 나뭇가지엔 마구 물오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여기저기서 먼저 꽃봉오리를 터뜨린 노랑, 보라 야생화가 눈부셨다.
숲속 나뭇가지가 연둣빛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쌓인 낙엽 사이로는 초록 풀들이 돋아나고 있다.
바위가 많고 가파른 등산로 주변으로 노란 야생화가 피었다.
등산로는 가팔랐다. 울퉁불퉁 돌길에 발은 자꾸 걸렸고, 두 손 짚고 넘어야 할 만큼 험한 바위도 수시로 길을 막았다. 단단한 등산화를 신고 온 게 참 잘했다 싶었다. 이마의 땀을 훔치며 삼사십 분쯤 오르자 넓은 풀밭이 나타났다. 텐트 치고 한가롭게 소일하는 사람들이 정겨웠다. 나무 사이 해먹에서 재장궂게 놀던 꼬마의 눈인사를 뒤로하고 계속 발길을 재촉했다.
요나마운틴으로 봄나들이 나온 한 가족이 텐트와 해먹에서 휴일을 즐기고 있다.
20분쯤 더 올라가니 다시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차 한 대는 너끈히 지날 수 있을 만큼 넓은 소방도로가 닦여 있었다. 공중 화장실이 있고 이곳이 군사 훈련장임을 암시하는 팻말이 보였다. 요나마운틴은 미 육군 소속 산악경비대가 실전 훈련을 하는 곳이라는 정보를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났다.
요나마운틴이 군인들의 암벽등반 훈련장임을 암시하는 팻말과 클라이머들을 위한 쇠줄
이제 10분만 더 올라가면 정상이다. 길은 두 갈래다. 왼쪽은 넓고 편한 소방도로, 오른쪽은 좁고 가파른 등산로다. 지난 해엔 왼쪽이었으니 이번엔 오른쪽 길을 택했다. 얼마 안 가 산 아래 전망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우와~’ 탄성이 나왔다.
낭떠러지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이어진 등산로를 조심조심 걸었다. 제일 전망이 좋아 보이는 곳, 너럭바위 위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진 찍으려다 가끔 추락사고가 난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렸다. 나는 바위 끝까진 못 가고 중간 쯤에 겨우 섰다. 그래도 산 아래가 다 보였다.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두 팔을 펼쳐 들어 보았다. 속이 뻥 뚫렸다. 아득히 산 아래 차 세워둔 주차장이, 그 너머 마을과 호수가, 더 멀리 고만고만한 산과 집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정상은 여기서 몇 걸음만 더 올라가면 나온다. 유명한 산 정상치고는 뜻밖에 밋밋하고 싱겁다. 축구장 반 정도 넓이의 평평한 풀밭이 전부다. 모닥불을 피웠는지 풀밭 가운데 타다 남은 장작 몇 개가 흩어져 있었다.
요나마운틴 정상은 이런 넓은 풀밭이다.
#. 요나마운틴 절벽은 생생한 ‘전설의 고향’이다. 옛날 이곳엔 체로키 부족과 치카사 부족이 다투며 살고 있었다. 싸움 그칠 날이 없었다. 그러던 중 소티(Sautee)라는 치카사 부족 전사와 나쿠치(Nacoochee)라는 체로키 부족 추장 딸이 사랑에 빠졌다. 둘은 자신들의 사랑으로 두 부족이 평화롭게 화해하기를 염원했다. 어른들은 용납하지 않았다.
체로키 추장은 딸의 연인 소티를 붙잡아 요나마운틴 절벽 아래로 던져버렸다. 이를 지켜본 딸 나쿠치도 절벽으로 달려가 몸을 던졌다. 이루지 못한 사랑의 종말이었다. 체로키 추장은 뒤늦게 후회하고 탄식했다. 영혼이라도 함께할 수 있도록 두 사람의 시신을 수습해 함께 묻어주었다. 지금 헬렌 들어가는 초입에 있는 ‘소티 나쿠치 인디언 마운드(Sautee Nacoochee Indian Mound)’가 바로 그들의 무덤이다.
헬렌 초입에 있는 ‘소티 나쿠치 인디언 마운드’ 무덤
애틋한 전설은 여기까지다. 그 다음 이야기는 조금 맥이 빠진다. 고고학자들의 무덤 발굴로 마지막 부분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일찍이 스미스소니언 연구소의 발굴 조사 결과 두 연인의 무덤이라던 인디언 마운드는 14~17세기 원주민들의 전통 매장지였음이 밝혀졌다. 조지아대학 연구팀 역시 2004년 발굴을 통해 인디언 마운드에서 170여구의 유골을 수습하면서 이곳이 두 사람의 합장묘가 아닌 체로키 부족의 공동묘지였다고 발표했다.
전설의 시대는 끝났다. 과학 만능, 진실 만능의 시대다. 그렇다고 우리 삶이 더 풍성해졌을까. 아닌 것 같다. 전쟁과 싸움은 여전하고 미움, 다툼, 시기, 질투하는 마음도 더 늘어만 간다. 아무리 달에 사람이 오가는 시대가 되었어도 여전히 달나라에선 계수나무가 자라고,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다는 얘기를 믿고 싶을 때가 있다. 요나마운틴 전설도 그렇다. 그들의 무덤이 사실이거나 말거나, 그들의 애틋한 얘기는 조지아 사람들의 소중한 ‘스토리’로 남았으면 좋겠다.
산 아래 호수에서 올려다본요나마운틴. 이름 그대로 웅크린 곰의 형상을 닮은 듯도 하다.
#. 메모 : 주차장서 요나마운틴 정상까지는 왕복 4.5마일, 2시간 반에서 3시간 정도면 다녀올 수 있다. 챔버스 로드(Chambers Rd.)에서 주차장까지 드나드는 길은 심히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다. 주차장은 50~60대 정도 주차 공간이 있다. 입장료는 없다. 전설 속 주인공 무덤으로 알려진 인디언 마운드는 주차장에서 헬렌 쪽으로 10분쯤 거리, 17번 도로와 75번 도로가 만나는 코너에 있다.
글·사진=이종호 애틀랜타중앙일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