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로 제조법 배워 3D 프린터로 부품 제작
규제법 강화해도 ‘총탄규제’ 없으면 효과 의문
지난 11일 조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수년 새 급증하고 있는 총격 범죄를 막기 위해 이른바 ‘유령총(Ghost Gunㆍ고스트건)’에 대한 규제 방안을 발표했다. 물가 상승, 우크라이나 전쟁 등 현안이 산적한 지금, 바이든 대통령이 이런 정책을 들고 나온 이유가 무엇일까. 규제 내용과 그 배경을 문답식으로 알아본다.
– 유령총, 즉 고스트건이 무엇인가.
말 그대로 총기 매매 내역이 존재하지 않는 총기를 말한다. 일련번호가 없어서 연방정부 총기 매매 데이터베이스에서 조회할 수 없는 총기들이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유령총이란 집에서 만든 조악한 사제총기나 일련번호를 지운 총기들을 뜻했는 최근 수년간 유령총은 성능, 모양이 실제 공장에서 만들어진 총기와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해졌다.
– 어떻게 그런 총이 가능해졌나.
3D 프린터 때문이다. 3D 프린터는 컴퓨터에 수치만 입력하면 뭐든 실제 제품과 똑같이 찍어낸다. 인공 심장이나 뼈도 만들 수 있다. 이전까지 총신, 몸체 등 일반인들이 공구만으로는 만들기 어려웠던 부품들을 이젠 3D 프린터를 이용해 클릭 몇 번만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됐다.
– 말이 쉽지 일반인들이 어떻게 총을 만들 수 있나.
유튜브를 통해 총기 제조법을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다. 3D 프린터로 부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설계도도 널려있다. 이 설계도를 3D 프린터에 입력하고 가볍고 튼튼한 ‘폴리머(polymer)’ 소재를 넣어주면 아무리 늦어도 12시간 내 핵심 부품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이게 아니면 조립만 하면 총이 되는 ‘DIY(do-it-youself) 키트’를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도 있다. 지난 2월 CBS 방송의 탐사보도에 따르면 DIY 총기는 200달러면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 총기 관련법이 엄격하지 않나.
현행법상 모든 총기는 허가받은 제조업체에서만 만들 수 있다. 또 생산되는 모든 총기에는 일련번호를 새겨 넣어야 한다. 총포상에서도 구매자의 신원을 연방 주류·담배·화기·폭발물단속국(ATF)에 요청해 승인을 받아야만 판매할 수 있다. 구매자가 전과가 있거나 정신적 문제가 있을 경우엔 팔 수가 없다. 이렇게 판매된 총기는 연방정부 데이터베이스에 구매자 신원과 일련번호가 함께 저장된다. 혹시 총기가 범죄에 사용됐을 경우 구매자를 추적하기 위해서이다.
– 법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현행법상 크게 2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판매 목적이 아니라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개인이 총기를 만드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적절한 장비만 있다면 누구나 집에서 총기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또 다른 사각지대는 ‘총기의 법적 정의’에 있다. 총기에서 가장 핵심 부품은 탄창을 장착하고 방아쇠를 끼우는 ‘하부몸체(lower receiver)’다. 이 하부몸체를 제조 공정의 80%만 만들면 ‘총기’로 분류되지 않아 합법적으로 판매할 수 있다. 당연히 일련번호를 붙이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DIY 키트에는 이 하부몸체의 나머지 공정 20%를 완성할 수 있는 드릴과 제조설명서가 함께 들어있다. 사실상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총이 법적으로는 총기가 아닌 것으로 분류되고 있는 셈이다.
– 그래서 바이든 대통령은 어떻게 규제하겠다는 말인가?
규제안은 완제품만 총기로 규정한 기존 정의를 변경해 권총 프레임, 몸체 등 부품에도 일련번호를 부여하고 부품 판매 역시 총기와 동일하게 허가를 받은 거래상이 구매인의 신원을 확인한 뒤 진행하도록 했다.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총기 조립 키트는 물론이고 최근 늘어나고 있는 3D 프린터를 통해 찍어내는 부품에까지 모두 적용된다. 또 유령총이 전당포 등으로 흘러 들어갈 경우 재판매 이전 일련번호를 부여받도록 의무화해 유령총의 양성화도 유도할 방침이다.
– 그런데 왜 지금 발표했나.
갑자기 나온 정책으로 들리지만 사실 지난 1년간 준비한 규제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4월8일 총기폭력을 ‘전염병’으로 규정하면서 유령총을 엄격하게 단속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유령총과 총기난사 사건이 무슨 관계가 있나.
백악관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동안 범죄현장에서 발견된 유령총은 약 2만 정에 달한다. 이는 2016년에 비해 10배나 늘어난 수치라고 한다. 유령총의 실체를 언론에 처음 알린 사건은 지난 2013년 샌타모니카 칼리지에서 발생한 총기난사였다. 존 자와리(당시 23세)는 차량을 몰고 버스를 향해 총격을 가한 뒤 칼리지 캠퍼스에서도 총기를 난사했다. 8명이 숨졌고 범인 자와리도 경찰이 쏜 총에 숨졌다. 범인이 사용한 공격형 소총은 본인이 조립한 AR-15이었다.
-규제 효과는 있을까.
당장 큰 효과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을 통한 판매를 일일이 규제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총탄 규제’가 빠졌다는 점이다. 현재 총탄 구입을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는 주는 캘리포니아를 비롯해 뉴욕, 뉴저지, 코네티컷, 일리노이, 매사추세츠 등 6개주에 불과하다. 아이다호, 메인, 뉴햄프셔, 버몬트주 등에서는 16세 이상이면 누구나 총알을 구입할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표현대로 총기가 ‘전염병’이라면, 이를 막을 수 있는 완벽한 백신은 총기 규제뿐 아니라 총탄 규제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정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