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미국에 와서 도서관에 들렀을 때, 생각보다 도서관들이 작고 아기자기해서 좋았다.
눈길이 저절로 가는 잡지들과 소설들을 지나, 나는 그림책 앞에 오래 머물렀다. 가만히 살펴보니 나의 짧은 영어실력으로 읽기에는 그림책이 딱 좋았다.
그림책은 그림과 글이 어우러져 이야기를 전달하는 책이다. 그림책을 유아들이 읽는 유치한 이야기 일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도 맞는 말이다. 글을 잘 읽지 못하는 유아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이 그림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림책은 책을 읽어주는 어른과 아이가 함께 독자가 되는 책이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고,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책이다.
미국 남동부에 위치한 작은 도서관에서 찾아낸, 그림책 속에서 가끔 한국문화나 한국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발견하는데, 그럴 때면 풀밭에서 네잎클로버를 찾아낸 것처럼 설렌다. 그 설렘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이곳에 글을 올린다.
이번 주에 설렘을 준 그림책은 〈The Invisible Boy〉이다.
그림으로 봐도 시끌벅적한 교실에서 혼자 흑백으로 조그맣게 서 있는 아이, 브라이언이다. 큰 목소리와 행동으로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공책 한쪽만한 공간을 가진 브라이언은 친구가 없다.
공놀이를 위해 편을 나눌 때, 희망을 품고 마지막까지 기다리지만 끝내 이름이 불리지 않는 아이다. 모두가 초대받는 생일파티에 당연히 초대받지 못하고, 아이들의 대화에 끼지 못한 채, 귀퉁이에서 혼자 점심을 먹는 브라이언은 투명인간 같은 존재다. 하지만 브라이언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있다. 그림그리기이다. 상상으로 만든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린다.
어느 월요일 아침, 저스틴이 전학을 온다. 점심시간에 젓가락으로 불고기를 먹는 저스틴을 반 아이들은 이상하다며 놀린다. 그 모습을 바라본 브라이언은 생각한다. ‘웃음거리가 되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중 무엇이 더 나쁠까?’하고.
그리고…글과 그림으로 만든 짧은 편지를 저스틴 가방에 몰래 넣어둔다. 저스틴은 그 편지를 읽고, 브라이언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프로젝트 수업을 멋지게 해낸다. 점심시간에 늘 혼자이던 브라이언을 친구들과 있던 저스틴이 큰소리로 부른다.
투명인간처럼 혼자 있는 아이가 한국아이가 아니라, 투명인간 같은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고 도와주는 아이가 한국아이라 반가웠다. 분명히 미국 학교에 브라이언 같이 외톨이인 한국계 아이들도 많을 텐데, 작가가 일부러 배려한 게 아닌가 싶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어느 나라든지 교실 안에는 서열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중학교나 고등학교의 서열문제는 사회문제로 인식되어 왔지만, 초등학교나 유치원에서의 서열문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책을 쓴 작가 Trudy Ludwig는 ‘국제 따돌림 방지 협회’의 회원으로 아이들이 학교에서 겪는 문제에 잘 대처하고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일을 하는 사회활동가이기도 하다.
아마도 작가는 다양한 연령에서 발생하는 따돌림 문제를 알고,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해 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좀 아쉬웠던 것은 교실 안에서 겪는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사와 부모의 노력이 필요함을 살짝 피해갔다는 것이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엄마로서, 브라이언을 보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 아이의 부모는 어떤 사람일까?’였다. 왜냐하면 브라이언과 부모가 어떤 관계냐에 따라 브라이언은 투명인간이 불편하지 않고 도리어 편하다고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같은 교실에 있다고 해서 모두가 친구는 아니었다.
성격이나 취미 등이 나와 하나도 맞지 않는 사람과 친구를 해야 하는 것은 투명인간이 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저스틴처럼 브라이언이 좋아하는 것에 관심 가져주고 응원해 준다면 다행이겠지만, 브라이언이 원하지 않는 운동이나 게임을 억지로 같이 하게 한다면 둘은 친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내가 브라이언의 엄마라면 어떤 말을 해줬을까?…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혼자 있어도 네가 편하다면 괜찮아. 하지만 다른 아이가 너를 괴롭힌다면, 너는 분명하게 싫다고 말해야 한단다. 그리고 나에게도 꼭 말해주렴. 엄마는 항상 네 편이고, 너를 너무나 사랑하니까’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