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LA 폭동 30년, 릴레이 인터뷰 3. 크리스틴 나 사장
폭도 300여명 진입 시도, 총격으로 위협하며 막아
한인 업주들 지역사회 인식, “한인사회 상기해야 할 역사”
사우스 LA 지역에 있는 대형 스왑밋 ‘슬라우슨 수퍼몰’은 LA폭동 당시 혼란의 중심에 있었지만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지역적 특성에다 고객 대부분이 흑인이라는 점 때문에 가장 먼저 방화와 약탈이 우려됐지만 다행히 예상은 빗겨갔다.
그 뒤에는 생업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건물 지붕에서 밤을 새워 총을 들고 몰을 지켰던 한인 업주들이 있었다.
지금도 이 곳에서 ‘레더 익스프레스’를 운영하던 크리스틴 나(64) 사장은 “당시 18일 동안 업주들이 번갈아 가며 지붕에서 총을 들고 지켰다”고 회고했다.
만능 백화점 ‘슬라우슨 수퍼몰’
슬라우슨과 웨스턴에 있는 ‘슬라우슨 수퍼몰’은 당시 지역 멋쟁이들의 쇼핑 명소였다. 한인이 건물주였던 이 몰 안에는 의류, 신발, 주얼리, 뷰티 서플라이 등 120~130개 업소가 있었다. 업소 주인의 90%가 한인이었고, 고객의 95%는 흑인이었다.
지역 주민들에게 ‘만능 백화점’이었지만 가격은 백화점의 60% 수준. 게다가 현금을 내면 깎아주고 한인 업주들은 ‘손님은 왕’이라는 생각으로 고객을 대했다. 좋은 물건, 저렴한 가격, 기분 좋은 쇼핑을 경험한 고객들은 곧 단골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 패션 브랜드인 ‘뱅뱅 패션’의 디자이너로 일했던 나 사장은 25세에 미국으로 이민 와 덴탈 테크니션으로 일하다 돈을 모아 마켓을 운영했다. 하지만 슬라우슨 수퍼몰에 돈이 몰린다는 소문을 듣고 남편(제이슨 나)과 함께 3만여 달러를 투자해 다 망해가는 의류 업소를 인수했다.
1988년 고급 드레스 슈즈, 인도산 실크셔츠, 가죽 제품을 판매하는 ‘레더 익스프레스’를 오픈하자마자 고객들이 몰려들었다. 패션 디자이너로 일한 안목으로 고른 제품이어서인지 입소문이 나면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그러다 몰 안에 여성용 신발점은 많지만 남성용은 없다는데 착안해 고급 남성용 구두 전문점으로 품목을 전환했다. 건물주가 가죽 전문점을 제안했다. 가죽 재킷을 169.99달러라는 당시로서는 비싼 가격에 팔아도 재고가 판매를 따라가지 못했다. 크리스마스를 지나니 돈이 보였다. 하루 1만 달러를 벌기도 했다. 곧 투자한 돈 이상을 회수했다. 폭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슬라우슨 수퍼몰은 나 사장을 비롯해 한인 업주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는 소중한 생업의 터전이었다.
가까스로 몰 탈출
1992년 4월 29일 오후 4시쯤 몰 안이 시끌시끌했다. 몰 입구 근처 매장에서 주차장을 내다보니 심상치 않았다. 어디선가 “폭동인가 봐”라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 없이 혼자서 가게에 있던 나 사장은 얼른 그날 장사한 현금을 가방에 재빠르게 넣고 바로 건물을 나와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주차장은 폭동을 감지하고 빠져나가려는 차들로 뒤엉켰다.
나 사장은 “간발의 차로 돌이 날아오는 주차장을 빠져나갈 수 있었지만 뒤에 있던 차는 폭도들에게 둘러싸였다”며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리고 폭동 발생 3일째. 폭도 300여명이 몰 주차장에 몰려들었다. 이들은 건물을 지키고 있던 시큐리티 가드들을 향해 “브라더”를 외치며 다가왔다. 시큐리티 가드들은 아무리 ‘돌아가라’고 외쳐도 폭도들이 해산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하늘을 향해 공포탄을 쐈다. 폭도들은 해산했지만 업주들은 불안했다. 이민 와 힘들게 일군 소중한 생업의 터전이 불타거나 약탈당하지 않으려면 온몸으로 막아야 했다. 업주들은 번갈아 가면서 지붕에 올라가 총을 들고 총 18일 동안 밤낮으로 슬라우슨 건물을 지켰다.
덕분에 직접 피해는 피할 수 있었다. 업주들은 각각 600~800달러씩 모아서 위험을 무릅쓰고 함께 남아 지켜준 시큐리티 가드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18일 만에 문을 연 슬라우슨 수퍼몰의 분위기는 예전과는 달라졌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쇼핑몰 입구를 지키던 시큐리티 가드들은 입장하는 손님들의 소지품을 일일이 검사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몰 안은 안전했지만 주차장에서 구타를 당하고 현금이나 귀중품을 뺏겼다는 업주들 소식도 늘어났다. 또 다른 폭동이 발생할까 봐 불안감을 느낀 일부 업주들은 서둘러 비즈니스를 팔고 나갔다.
고객과의 관계 정립 시작
폭동이 지나간 후 ‘이런 일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고민이 업주들 사이에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 사장은 “나부터 비즈니스 운영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 폭동 이전에는 성실하고 이익에만 신경을 썼다면 폭동 후에는 흑인 고객들에게 좀 더 친절해졌고 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에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신발 재고가 생기면 슬라우슨 지역 커뮤니티에 기부하기도 했고, 흑인 고객들에게 한국 음식과 문화를 알리기 위해 한복을 입고 한식을 제공하는 ‘오퍼레이션 나이트’ 이벤트도 진행했다.
나 사장은 LA폭동 2년 뒤인 1994년에 슬라우슨 수퍼몰에 두 번째 매장인 ‘레더 하우스’를 열었다. 원래는 한국에 살던 가족들이 이민 와서 같이 운영하기로 했었던 매장이었지만 가족들이 폭동을 겪고 그대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나 사장과 남편이 각각 맡아 운영해야 했다. 하지만 두 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건 무리라는 판단에 2008년 첫 번째 매장을 정리하고 지금의 가게만 남겼다.
나 사장이 슬라우슨 수퍼몰에서 가게를 운영한 지 34년째. 이제 이곳에도 LA폭동을 겪고 남아 있는 업소는 나 사장을 포함해 3~4곳에 불과하다.
나 사장은 “당시 폭도들이 몰려와 인근 경찰서에 연락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힘이 없는 민족은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을 체험한 순간이었다”며 “30년이 지났지만 LA 폭동은 한인사회가 함께 상기해야 할 역사다. 지속적인 한인 정치력 신장으로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