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LA 폭동 30년 릴레이 인터뷰 6. 송정호 KYCC 관장
각종 양식 한글로 번역하고 융자 신청 등 앞장서 도와
타 커뮤니티와 관계 중요, 주인의식·리더십 키워야
한인 비영리 단체의 맏형인 한인타운청소년회관(KYCC)은 한인타운 지역 주민들과 비즈니스 업주들을 위해 일한다.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 외에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각종 경제개발 프로그램과 정신건강 클리닉을 운영하고 거리에 나무를 심고 청소하는 환경보호 활동도 한다. 세금 시즌에는 무료 세금보고 작성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저소득층 가정들에 거주지를 제공하는 주택 프로그램도 있다. 코로나19팬데믹이 시작된 후에는 고립된 시니어들을 위해 식사를 배달하기도 했다.
1975년 갈 곳 없는 한인 이민자 가정과 자녀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출발한 KYCC는 대상 범위를 타인종 청소년들과 지역 주민들로 확대하면서 이제는 한인타운 내 다인종 커뮤니티를 위한 대표적인 비영리 단체가 됐다. 그 배경엔 송정호 관장이 겪은 4·29 LA 폭동이 있다.
한글 번역으로 피해자 지원
“웨스턴과 8가를 지나가는데 한인 보석상 앞에 30~40명이 모여 있었다. 한 사람이 들어가더니 조금 있다가 그 뒤를 여러 사람이 따라 들어갔다. 직원 2명과 함께 한인타운을 둘러보러 나가던 길이었다. 경찰도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 업소 주인의 심정은 어땠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당시엔 KYCC를 한인청소년회관(KYCC)이라고 부르던 때였다. 1985년 7월 UCLA 심리학과를 졸업한 후 첫 직장으로 KYCC의 카운슬러로 취직한 송 관장은 카운슬링 유닛 책임자에서 프로그램 디렉터로, 다시 총 매니저가 됐다.
폭동이 발생하던 1992년에는 부관장으로 행정 업무를 전담하면서 20여명의 직원과 함께 한인 청소년들을 위한 방과 후 프로그램과 정신건강 카운슬링 프로그램 외에 낙서 지우기와 거리청소 등 환경 프로그램을 도입해 한인타운 거리를 가꿔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폭동으로 한인타운은 처참하게 변했다.
믿어지지 않는 현장을 목격하고 사무실로 돌아온 송 관장은 당장 한인 업주들을 도울 방법을 고민했다.
한인노동상담소(KIWA), 한인가정상담소, 민족학교(KRC), 한미연합회(KAC) 등 소위 1.5세 단체들과 모여 협의회를 만들고 피해자들을 돕는 일을 시작했다.
사무실 한쪽에 공간을 만들어 방화와 약탈 피해를 당한 한인 업주들이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보험회사에 보상금을 신청하는 일을 지원했다. 또 비즈니스 재건 자금을 받을 수 있도록 융자 신청을 도왔다. 무엇보다 적십자와 연방 재난관리청(FEMA)에 연락해 한인들이 연방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했다.
하지만 정작 한인 피해 업주들은 신청을 주저했다. 미국법을 제대로 모르다 보니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도 전혀 없었다. 게다가 한인 업주들은 영어로 쓰인 신청서를 작성하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송 관장은 “지금은 정부의 신청서나 안내문이 한국어로 배치돼 있어서 모든 한인이 쉽게 정보를 알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모든 서류는 영어로 쓰인 것 뿐이었다”며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 모르는 한인 1세들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서류 신청서를 한국어로 번역하기로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영어와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각종 서류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번역이 필요한 곳은 예상보다 많았다.
“당시 KYCC는 정부의 예산을 받아 진행하던 프로그램이 꽤 있었다. 환경 프로그램도 그중의 하나였다”는 송 관장은 “정부에 연락해 지금 하는 일을 중지하고 당분간 폭동 피해를 당한 한인들을 돕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다행히 정부가 허락해 피해 지원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 고마웠던 순간”이라고 했다.
번역 외에도 한쪽에서는 신청서 작성을 도왔다. 매일 수십 명의 젊은 한인 자원봉사자들이 KYCC 사무실에 나와 서류 작성을 대행했다. 당시 도움을 받은 한인 업주들은 수백 명에 달한다. 안타까운 건 피해를 당한 이들을 그냥 돌려보내야 할 때였다.
“보험이 없어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또는 정부가 지원하는 항목에 포함되지 않은 분들도 있었다. 이런 분들은 비즈니스를 다시 회복하지 못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뤘는데 이 모든 걸 한순간에 잃은 한인들을 우리도 그냥 돌려보내야 할 때 가장 힘들고 안타까웠다.”
타인종으로 서비스 확대
폭동은 한인타운에 거주하는 타인종을 돌아보는 계기도 됐다. 90년대 한인타운은 한인 이민자뿐만 아니라 중남미 출신 저소득층 이민자들이 몰려 사는 곳이었다. 한인 업소들에 몰려가 물건을 약탈하는 폭도들 속에 라티노 주민들이 많은 것을 보면서 지역 주민들을 위한 서비스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한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던 프로그램의 문을 타인종에게도 활짝 열었다.
송 관장은 “폭동은 한인들만 도와서 좋은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며 “많은 한인 커뮤니티 단체나 비즈니스 업주들은 다른 커뮤니티와 맺는 관계의 중요성을 잘 몰랐다. 그래서 이들에게 ‘한인타운은 우리 모두 더불어 사는 곳’이라는 걸 알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타인종 커뮤니티와 관계를 다지기 위해선 함께 사는 주민들과의 관계와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 타인종 커뮤니티에 KYCC가 무슨 일을 하고 있고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이때부터 홍보했다”고 KYCC에 일어난 변화를 알렸다.
“주인의식 가져야” 당부
내부 시스템도 다인종 커뮤니티를 위한 단체로서의 체계를 차근차근 다져나갔다. 한인이 주를 이뤘던 직원 채용도 점차 타인종으로 넓혀 2022년 현재 직원의 60% 이상이 백인과 라틴계 등 다인종으로 교체됐다.
송 관장은 “타인종 직원들을 채용했다고 단체가 바뀌는 건 아니다. 단체의 목적이나 서비스는 그대로 유지했지만 서비스 대상을 한인 위주에서 한인타운 위주로 점차 확대해나갔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4년 단체 이름에서 한인(Korean)이라는 단어 대신 한인타운(Koreatown)으로 교체한 것도 그 이유다.
송 관장은 “폭동 후 한인타운내 다인종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타인종이 어울려 일하고 사는 곳이 됐다. 뿌듯하다”고 말했다.
송 관장은 이어 “당시 많은 단체가 합심해서 일했다. 따로 활동했던 한인 단체들이 모여 일하며 형성된 친근한 관계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이를 계속 발전시키는 게 앞으로 차세대들이 할 일”이라고 말했다.
주인의식도 강조했다. 송 관장은 “많은 한인 2세들이 한인타운에서 타인종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다문화를 받아들이게 됐다. 하지만 폭동 후 노력했던 한흑관계가 지금은 유지되지 못하고 있다‘며 ”주인의식을 갖고 타인종과 함께 일하며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이 지금 한인 커뮤니티가 해야 할 일“이라고 조언했다.
장연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