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거나, 눈에서 꿀이 떨어진다는 말이 참말임을 알 때가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주사랑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한없이 관대하고 지극한 그 사랑은 어디서 오는 걸까?
노랑과 주황이 어울려 노을 느낌을 주는 책표지에 할아버지를 향해 달려가는 한 작은 아이가 있다. 제목은 〈Our Favorite Day〉, 작가는 ‘오주원(Joowon Oh)’이다. 몽고메리 도서관에서 한국 작가의 그림책을 뽑아든 것은 처음이다. 반가움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달려오는 손녀를 향해 두 팔을 내민 할아버지의 얼굴처럼.
할아버지의 하루는 단조롭다.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차를 한 잔 마시고, 화초에 물을 주고, 집안정리를 하고, 외투를 입는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 상점들을 둘러보고, 늘 들리는 만두집에서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든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는 할아버지의 되풀이되는 하루다.
그러나 목요일은 조금 다르다. 집안정리를 하고 버스를 타고 시내에 가서 그동안 눈여겨봐둔 준비물을 산다. 만두집에서 만두 2인분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다 길섶에 핀 꽃도 몇 송이 뽑아 온다. 그리고 기다린다.
손녀가 달려와 안기는 순간, 할아버지의 아주 특별한 목요일이 완성된다. 함께 만두를 먹고, 미리 준비해둔 문구류를 가져와 손녀가 원하는 나비 연을 만든다. 그리고 함께 밖으로 나가 노을 진 하늘에 연을 날린다.
그림이 참 평화롭다. 일상을 조용히 즐기는 할아버지만의 평화가 느껴진다. 홀로 지내는 삶이 조금 외로워 보이기도 하지만, 외로움도 삶의 맛으로 음미하는 여유가 보인다. 할아버지에게도 목표를 향해 숨 가쁘게 달리던 젊은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수많은 인간관계가 오히려 외로움과 괴로움을 키우던 시간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 어디에 휘둘리지 않고, 여유롭게 나누며 베풀 수 있는 노년의 시간을 누리신다.
한국에는 조부모 육아를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들이 있다. 맞벌이 가구가 늘면서 조부모에게 육아를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손주 육아 교육 프로그램들이 생겨난 것이다. 베이비시터 전문자격증, 동화구연 지도사 같은 자격증을 따는 분도 계시고, 아동발달 관련 책을 읽고, 손주들이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면 영어공부도 하신다. 장성한 자녀들이 반려자를 만나 둥지를 떠나고 이제 부모노릇 마쳤구나 하며 한숨을 돌릴 때 다시 찾아온 손주 육아, 우리의 부모님은 자식을 위해 다시 굽은 허리를 내어주신다.
책제목 〈Our Favorite Day〉에서 알 수 있듯이, 목요일은 할아버지뿐 아니라, 손녀와 손녀의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날이다. 책 마지막 페이지에 ‘For my dad, with love’라고 적힌 걸로 보아, 손녀의 엄마는 이 책 작가이자 할아버지의 딸인가 보다. 일 때문인지 아니면 홀로 계신 아버지를 위해서 인지 알 수 없지만, 어린 딸을 데리고 찾아갈 수 있는 아버지가 가까이 계시다는 게 부럽다. 또한 일주일 내내 손녀 육아를 책임지지 않고, 목요일만 손녀와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할아버지의 여유로운 삶도 부럽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노년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출발점 같다. 책임과 의무라는 짐을 내려놓고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는 시기,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젊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에도 도전할 수 있다. 건강과 경제력을 헤아려 무리하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노년을 살고 싶다.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은 주변 사람들의 응원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해도 괜찮다는 응원을 받을 때,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열정이 가득할 것이다.
이 짧은 그림책을 읽으면서 아름다운 노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였다. 아름다운 노년이란 평화로운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하고 나름대로 답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렇다면 평화로운 삶이란 어떤 삶일까? 슬픔이나 불행이 닥쳐도 그것에 휩싸여 자신의 삶을 원망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이고 헤쳐 나갈 수 있는 강인함을 가진 삶, 아무에게도 부담주지 않는 삶, 단순한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