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러웨이 가문이 일군 미 동남부 명소
숲과 호수 온종일 걸어도 다 못 걸어
미 최대 나비박물관 등 볼거리도 많아
미국엔 곳곳에 유명한 ‘가든’이 많다. 조지아만 해도 깁스가든이 있고 오늘 얘기할 캘러웨이 가든도 있다. 그냥 정원이라는 말로 옮기기엔 ‘급’이 다르다. 모두 아름다운 꽃과 조경, 특이한 주제의 건물과 시설로 사람을 불러 모으는 명소들이다.
가든의 번역어인 정원(庭園)이란 한자어는 19세기 일본에서 탄생했다. 서양과의 교류가 늘면서 동양엔 없고 서양에만 있던 개념어를 옮기면서 새로 만든 것이다. 문화, 국민, 과학, 자연 같은 단어도 다 그렇게 만들어졌다.
나는 아직도 ‘가든=정원’이라는 등식이 잘 적응이 안 된다. 좋다고 해서 가본 곳은 모두 상상 그 이상이어서다. 여간한 식물원보다 크고, 웬만한 수목원보다 잘 가꾼 곳인데 가든이라니. 더구나 한국 사람에겐 가든이라 하면 ‘수원가든, 삼원가든’처럼 대도시 근교의 대형 고깃집 이미지까지 있어 더 그렇다.
영어로 가든(Garden)은 집이나 성, 궁전 안에 인위적으로 가꾼 꽃밭이나 뜰을 말한다. 규모가 크면 돌과 연못과 나무도 배치하고 주인의 기호에 맞춰 그늘막이나 분수도 만들어 넣었다. 그렇게 꾸며놓고 계절 따라 달리 피는 꽃과 식물을 감상하며 한가롭게 소일하는 공간, 그게 가든이다. 요즘은 야외 파티나 결혼식, 음악회, 모임 같은 행사장으로도 활용된다.
캘러웨이 가든은 이런 수준을 완전히 뛰어넘는다. 정원이라기보다 종합 휴양지다. 정식 이름도 리조트&가든이다. 조지아 제2의 도시 콜럼버스 동북쪽, 파인마운틴 서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조지아, 앨라배마 일대에선 가장 볼 것 많고 즐길 것 많은 위락지로 꼽힌다. 애틀랜타 공항에선 1시간 남짓 거리, 둘루스 한인타운에선 두 시간이면 넉넉하다.
캘러웨이가든 입구. 27번 도로 선상에 있다.
캘러웨이는 조지아 남부도시 라그랜지의 오랜 유지였던 캘러웨이 가문 이름이다. 캘러웨이 가든은 케이슨 캘러웨이와와 그의 아내 버지니아 핸드 캘러웨이가 함께 조성한 공동 작품이다. 세계적인 골프용품 메이커 ‘캘러웨이’ 설립자와는 사촌 간이다.
1952년에 문을 연 이곳은 전체 면적이 2500에이커나 된다. 여의도의 3배가 넘는다. 크고 작은 호수도 10여개나 있다. 자전거길은 물론 산길, 숲길 등 하이킹 트레일도 구석구석 뻗어 있다. 호수에선 낚시와 보트를 즐길 수 있고 넓은 백사장이 있어 물놀이도 가능하다. 골프장도, 승마장도 있다. 물론 숙박시설, 식당도 두루 갖춰져 있다. 하루 일정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규모다.
디스커버리 카페. 그림 같은 호수 옆이다.
바쁜 사람들은 하루 나들이로도 얼마든지 걷고 보고 즐길 수 있다. 다만 무턱대고 갔다간 한귀퉁이만 보고 올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미리 공부가 좀 필요하다. 여러 방문자의 후기, 가든 측의 안내 설명서에 내 경험을 더해 꼭 보고 와야 할 곳들을 소개한다.
1. 디스커버리 센터(Discovery Center)
가든 투어의 출발점으로 캘러웨이 가든에 대한 모든 정보를 접할 수 있다. 다양한 영상물이 상영되고 있고, 야생동물 박제와 식물 표본, 동남부 지역 생태계 교육 자료 등이 아주 훌륭하게 전시돼 있다.
디스커버리 센터. 전시실, 교육관, 기념품 가게 등이 있어. 캘러웨이 가든에 대한 모든 정보를 볼 수 있다.
센터 앞은 멋진 호수(Mountain Creek Lake)가 펼쳐져 있어 경관도 빼어나다. 호수를 따라 5분 쯤 걸어가면 맹금류 쇼 관람장이 있다. 주말엔 보통 오전 11시, 오후 1시와 3시에 쇼가 시작된다. 별도로 사육 중인 매나 올빼미가 조련사 지시에 따라 관람객 사이를 날아다니며 먹이를 채가는 장면을 보여준다. 지난 주말은 배가 불렀는지 새들이 별로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젊은 여성 조련사가 어쩔 줄 몰라 했는데 그래도 관람객들은 열심히 손뼉을 쳐 주었다.
조련사가 사냥 시범에 나선 올빼미를 올려다보고 있다.
2. 나비박물관(Cecil B. Day Butterfly Center)
미국에서 가장 큰 나비 박물관으로 꼽힌다. 유리로 된 온실 정원 안엔 60여종의 열대 식물도 자란다. 50여종의 1000마리 가까운 나비가 자유롭게 날아다닌다는데 세어보진 못했다. 나비 구경 못지않게 사진 찍느라 여념 없는 사람 구경도 재미있다. 나비 전시관과 나비 주제 기념품 가게도 들러볼 만하다.
미 최대 나비 박물관으로 꼽히는 버터플라이센터 안과 밖.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옛날 통나무집도 캘러웨이 가든의 자랑거리다. 19세기 초기 서부 개척자의 전형적인 집으로 내부엔 당시 쓰던 침대와 주방기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당시엔 애팔래치안 산맥 서쪽은 다 서부였다)
파이오니어 로그 캐빈. 1800년대 초기 개척민들이 살았던 통나무집이다.
3. 메모리얼 채플(Ida CasonCallaway Gardens Memorial Chapel)
숲속 작은 호수(Falls Creek lake) 옆에 있는 그림 같은 예배당이다. 가든을 만든 케이슨 캘러웨이가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지었다.
예배당은 결혼식이나 작은 콘서트 장소로도 이용된다.
16세기 고딕 예배당 양식으로 자연석 벽과 스테인드글라스 유리창이 숲속 동화 나라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름과 성탄절 전후 일요일 아침에는 초교파 예배가 드려지고, 주말엔 결혼식이나 미니 콘서트 장소로도 활용된다고 한다. 운이 좋으면 장엄한 파이프 오르간 연주도 감상할 수 있다.
나도 운이 좋았다. 이곳을 향해 걷는 내내 숲속 가득 울려퍼지는 장엄한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4. 로빈 레이크(Robin Lake)
파인마운틴에서 흘러내린 물을 모아 놓은 인공호수다. 바닥이 다 들여다보일 만큼 물이 맑고 깨끗하다. 호숫가 모래 비치도 꽤 넓다. 주변엔 피크닉 테이블이 많아 소풍 놀기에도 좋다. 모래 장난하는 아이, 깔깔대며 물에 뛰어드는 아가씨들, 비치 의자에 나란히 누워 일광욕 즐기는 노부부들의 모습 등 한가롭고 평온한 미국인의 일상이 연출되는 곳이다. 물론 직접 동참하면 더 좋은 곳이다.
로빈 레이크 비치. 물이 맑다. 주변으로 피크닉 테이블이 있어 소풍 나들이 즐기기에도 좋다.
5. 트레일 걷기
어디를 가든 걷는 게 남는 장사다. 걸어 봐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트레일은 가장 큰 호수인 마운틴 크리크 레이크를 한 바퀴 도는 6마일 트레일이다. 다 돌지 않고 일부만 걸어도 좋다.
가든에서 제일 큰 마운틴크리크 호수. 둘레길을 걷거나 자전거로 돌 수 있다.
나는 디스커버리센터에서 나와 왼쪽으로 돌며 나비박물관까지 걸었다. 호수를 따라, 나무 사이로 걷고 또 걸었다. 나무가 무성했고 숲은 깊었다. 가끔 손 맞잡은 노부부들이 지나갔다. 어쩌다 자전거를 탄 젊은이도 스쳐갔다. 호젓하고 좋았다. 디커버리센터 주차장으로 돌아올 때는 걷지 않았던 트레일을 일부러 골라 걸었다. 야생화가 무성했고 개울도 흘렀다. 전혀 새로운 길이었다.
나비박물관 가는 길. 가든에는 이런 트레일이 곳곳에 있다. 어디나 나무가 울창하다.
간단한 점심 요기를 하고 차를 옮겨 찾아간 곳은 아잘리아보울(Callaway Brothers Azalea Bowl)이었다. 캘러웨이 골프 용품 회사 설립자(Ely Callaway Jr.)가 아버지와 삼촌(가든 설립자의 아버지) 형제를 위해 기부한 돈으로 만든 철쭉 동산이다. 그다지 길지 않은 주변 트레일이 아주 예쁘다. 꽃과 호수, 앞서 말한 예쁜 예배당이 있어 가든을 찾는 사람은 꼭 들르는 길이기도 하다. 4월 초·중순까지는 수천 그루 아잘리아가 장관이라는데 아쉽게도 나는 한발 늦었다. 그나마 그늘진 곳에서 뒤늦게 핀 꽃 앞에서 사진 몇장은 남겼다.
봄이면 수천 그루 철쭉이 피어나는 아잘리아보울 입구.
참고로 아잘리아(Azalea)는 진달랫과 진달래속 식물의 총칭이다. 진달래, 철쭉, 영산홍이 모두 아잘리아다. 진달래와 철쭉은 비슷하지만 다르다. 진달래는 잎보다 먼저 꽃이 피고, 철쭉은 잎이 먼저 나고 나중에 꽃이 핀다.
우리 조상들은 진달래를 참꽃, 철쭉을 개꽃이라고 불렀다. 참은 진짜라는 뜻, 개는 개소리, 개꿈, 개떡처럼 별로 좋은 게 아니라는 뜻의 접두어다. 꽃만 보면 철쭉이 훨씬 짙고 탐스러운데도 참꽃, 개꽃으로 구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추측건대 진달래는 먹을 수 있고 철쭉은 못 먹는다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모두가 허기졌던 시절 먹을 수 있다는 것만큼 소중한 것은 없었을 테니까.
가든이 워낙 크다보니 얼추 5시간을 보냈는데도 절반도 못 본 것 같다. 아쉬움이 남았지만 오늘은 이 정도로 끝내기로 했다.
나비 한 마리가 꼬마 아가씨 손끝에 앉았다.
불가에선 사람 마음을 어지럽히는 세 가지 를 탐진치라 했다. 탐욕(貪欲)과 진에(瞋恚), 우치(愚癡)의 머리 글자로 욕심과 성냄, 어리석음을 말한다. 불가의 수행이란 이 세 가지 삿된 마음을 걷어내기 위한 노력이다.
걷기 좋아하는 사람은 힘들여 따로 고행 수도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걷는다는 것 자체가 내 안의 욕심과 분노를 덜어내고 비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간다, 애팔래치안 트레일을 종주한다, 하며 많은 사람이 일부러 힘든 길을 나서는 이유도 나 아닌 나를 비우기 위해서일 것이다. 나만 해도 주말 하루 걷는 것과, 빈둥거리며 보낸 것과는 다음 한 주가 확연히 차이가 난다. 그래서 주말이면 기대와 설렘으로 또 신발 끈을 묶는 것이다.
# 메모
캘러웨이 가든이 있는 파인마운틴은 이 지역 도시 이름이자 산 이름이다. 파인마운틴 산자락 일부가 미국 31대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이름을 딴 F.D. 루스벨트 주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캘러웨이가든에선 10여분 거리다. 가든 입장료 24.95달러 ▶웹사이트:www.Callawaygardens.com ▶주소:17617 US-27. Pine Mountain, GA 31822.
가든 안내 지도.
글·사진=이종호 애틀랜타중앙일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