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등을 발표하며 1970년대 저항문학의 상징과도 같았던 시인 김지하씨가 8일 오후 강원도 원주 자택에서 별세했다. 81세.
고인은 최근 1년여 동안 투병생활을 해왔다고 토지문화재단 측은 전했다.
고인은 한국의 70년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74년 민청학련 사건 가담, 이듬해인 75년 인혁당 사건이 조작됐음을 폭로하는 신문 연재 글로 무기징역을 선고받는 등 고초를 겪었다.
이 시기 고인의 삶은 도피, 유랑, 체포, 투옥, 고문, 사형선고, 감형, 사면, 석방으로 점철됐다. 그런 와중에도 75년 창비에서 출간한 저항시집 『타는 목마름으로』가 대학가 주변 서점에서 리어카에 싣고 교내에 들어가 팔았는데도 이틀 만에 2만 권이 팔릴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의 사면을 촉구하기 위해 결성된 ‘김지하를 구원하는 국제위원회’에 세계적인 참여 작가 사르트르와 미국의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 등이 가담해 한국의 민주화를 국제적인 관심사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91년 명지대생 강경대가 경찰 진압 과정에서 사망한 이후 대학생들의 분신, 투신이 잇따르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제목의 신문 칼럼을 게재해 큰 반향을 불렀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생명사상으로 돌아섰고, 율려와 후천개벽 같은 민족사상을 설파하는 책들을 출간했다.
2012년 대선에 출마한 박근혜 후보 지지 선언을 해 자신의 문학적 출발점인 진보문학 진영으로부터 변절자 소리를 듣기도 했다. 만년에는 수묵화전을 여는 등 예술가로서의 행보를 보였다.
8일 타계한 김지하 시인은 소설가 박경리의 사위였다. 2008년 박경리씨가 세상을 떠났을 때 빈소를 지킨 생전의 김지하 시인. [중앙포토]
극단을 오간 사상 궤적으로 인해 고인은 진보문학 진영과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현대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시인이었다는 점에는 이론이 없다. 출판사 창비를 설립한 문학평론가 백낙청씨는 “우리 문단의 굉장한 존재였다.
문화예술운동에 있어 선동적인 발상을 많이 했고, 저항정신뿐 아니라 선구안을 가졌던 분”이라고 했고, 소설가 황석영씨는 “70, 80년대 전국적인 문화운동의 배후랄까, 사령탑 같은 존재였다”고 회고했다. 진보 문인단체 작가회의 이사장을 지낸 이시영 시인도 “70년대 참여시에 아주 큰 족적을 남긴 분, 한국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분으로 기록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고인은 아홉 살 때 한국전쟁을 맞았다. 본명은 영일(永一), 지하(芝河)는 지하(地下)에서 따온 필명이다. 아버지는 전기 기술자, 할아버지는 동학운동을 하다 일본으로 피신했다. 원주로 이주했다가 서울 중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59년 서울대 미학과에 진학했다. 64년 한·일 회담 반대 투쟁의 일환으로 서울 문리대에서 열린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의 조사를 쓰는 등 활동을 하다가 4개월간 투옥됐다.
69년 시인 조태일이 발행하는 시 전문지 ‘시인’에 작품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듬해인 70년 사상계 5월호에 국회의원·장차관 등을 비판한 유명한 담시(이야기 시) ‘오적(五賊)’을 발표하며 일약 저항 문인으로 떠올랐다. 쫓기던 신세였던 고인이 소설가 박경리(2008년 타계)와 딸 김영주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던 일이 계기가 돼 73년 명동성당 반지하 묘역에서 김수환 추기경의 주례로 김영주와 결혼했다. 김영주 전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은 2019년 별세했다.
1975년 민청학련 관련 옥고를 치르고 나오는 김지하 시인을 마중 나온 사람들이 환영하고 있다. [중앙포토]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고인은 60년대 후반 서울 문리대 연극회에서 후배들을 키웠다. 그림의 오윤, 노래의 김민기, 춤 이애주, 창작판소리 임진택, 탈춤 최의환, 국악하는 김영동까지 민족예술 1세대가 곧 김지하 사단이었다”고 했다. 80년대 미학과 예술론의 성대한 성과가 고인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취재 기자로 고인을 겪은 소설가 김훈은 “73년 무렵 고인의 장남 원보가 태어난 직후 검거돼 재판을 받을 때 소설가 김승옥씨가 법정에 나가 ‘이 사람 빨갱이 아니다’는 증언을 했던 게 기억난다”고 했다. 문학평론가 임우기씨는 “동학을 널리 알린 게 사실상 고인의 공적”이라고 했다.
1970년대 대표적인 저항시인이었던 김지하 시인. 8일 오후 별세했다. 81세. [중앙포토]
시집으로 『황토』 『대설 1~4권』 『애린』 『중심의 괴로움』 『예감에 가득 찬 숲 그늘』, 수운 최제우를 다룬 장시 『가문 날에 비구름』, 이야기 모음 『밥』과 산문집 『남녘땅 뱃노래』, 문학적 회고록 『흰 그늘의 길』(전 3권) 등이 있다. 아시아·아프리카 작가회의 로터스 특별상, 국제시인회 위대한 시인상, 브루노 크라이스키상, 정지용문학상, 대산문학상, 만해문학상, 공초문학상, 시와 시학상 작품상, 만해대상, 민세상 등을 받았고 노벨문학상·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장남 김원보(작가)씨와 차남 세희(토지문화재단 이사장 겸 토지문화관 관장)씨가 있다. 빈소는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에 차려질 예정이다.
신준봉·김호정·남수현 기자 infor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