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여왕 5월. 날씨가 스산한 탓인가? 유난히 부고 소식이 많다.
가까이는 부x 친구 어머니의 소천부터, 여배우 강수연 씨, 저항시인 김지하 선생 등 젊은 시절 우상이었던 분들까지 연이어 저 세상의 별이 됐다.
박기성 전 애틀랜타 한인세탁협회장(전 애틀랜타 한인회 부회장)도 간암으로 투병 생활을 해 오다 지난 8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불과 60대 중반의 나이에 너무나 일찍 우리 곁을 떠나간 그의 부고 소식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인생은 60부터란 말이 무색하다. 100세 인생시대라 하지 않는가?
기독실업인회(CBMC) 둘루스지회 단체카톡방에 올라온 내용에 따르면, 그는 병상에서 아들 결혼식 영상을 보며 축복해 주고는 눈을 감았다고 한다.
박 회장을 마지막 만난 것은 지난 12월 초순 한 망연회에서다. 박화실 당시 CBMC중부회장과 나란히 참석한 그의 모습은 온화했다. 치료 덕분에 다소 차도가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 모습이 될 줄이야.
박 회장은 이후 미국에서의 치료를 중단하고, 기 치료를 위해 한국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호전될 줄 알았던 간암은 더욱 악화됐고, 그는 끝내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어찌 보면 죽음이란 별것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열었었 때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미 고인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나간 김경상 사장, 이승남 회장, 송준희 회장 등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전화를 드리면 “권 회장!”하고 반가이 받으실 것만 같다. 하지만 응답이 없다.
이젠 박 회장과도 더 이상 전화통화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한다.
그와의 첫 만남은 31대 애틀랜타 한인회(회장 오영록) 이사회에서였다. 당시 필자는 총무이사와 부이사장으로, 박회장은 애틀랜타 한인 세탁협회회장 자격으로 이사회 멤버가 됐다.
한인회관 건립 등 현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숙의했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후 그는 제33대 애틀랜타한인회 수석부회장, 애틀랜타한인회 자원봉사단장 등을 역임하며, 봉사를 통해 한인 사회 발전에 계속 기여했다.
박 회장의 한인회 사랑은 각별하다. 한 에피소드가 이를 증명한다. 자원봉사단장을 맡고 있을 당시 어느 날 봉사단 사업계획 발표를 위해 한인회를 찾았다. 한인회 사무처로부터 “잔디 깎는 기계(Lawnmower)가 없어 주변 잔디관리에 애를 먹고 있다”는 말을 듣고, 즉석에서 800달러 상당의 기계를 기증한 것이다.
애틀랜타 한인 세탁협회 발전을 위해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19대 애틀랜타 한인 세탁협회 회장(2013-2014), 애틀랜타 한인 세탁협회 명예회장,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협회 발전을 위해 그야말로 헌신했다. 명예직이 아니라 직접 본인이 각종 프로젝트 TF팀에 참가했다.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조지아 주정부에 코로나 19회생 그랜트 청원을 위한 모임을 주관하기도 했다.
이전에도 세탁협회 총무, 상조회장, 사무총장 등을 역임하며 회원들의 권익과 협회 발전을 위한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언젠가 박 회장이 사적으로 전화를 걸어온 적이 있다. 부인인 박화실 사장의 CBMC 애틀랜타지회장 출마건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안사람의 단체장 출마를 반대했다. 그렇지만 그는 이내 마음을 바꿔 박화실 회장이 충분히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조용히 외조를 했다. 덕분에 박 회장은 애틀랜타 지회장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이어 중부연합회장의 중책도 훌륭히 수행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박화실 회장은 올 초 부군의 간병을 위해 ‘섬김의 자리’를 내려 놓았다.
그 보람도 없이 박 회장은 우리 마음을 울리며 곁을 떠났다.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어도 갈 때는 순서가 없다는 옛말이 있다. 하나님은 익은 곡식을 먼저 거둬 간다는 성경 말씀으로 애써 자위해 본다. 영면하기를 기도하며, 남은 유족들에게도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