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찡그린 얼굴 표정 펴세요.” 찬양 연습할 때 예쁘고 능력 있는 지휘자님이 대원들을 향해 말했다.
엄격한 훈시가 아니라 자신도 웃으며 말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바치는 찬송을 하면서 얼굴 표정이 찌그러져 있으면 듣는 분들에게 은혜가 안되요.”
‘얼굴 표정을 바꿔야지!’ 그런 생각을 나도 전부터하고 있었기에 지휘자의 찡그린 표정을 바꾸라는 말에 동감했다. 그녀가 그 말을 할 때 찡그린 표정, 화가 난 표정, 실망한 말투, 엄격한 훈시의 어조가 아니라, 웃으며 했기에 듣는 감정이 달랐고 더 어필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내 찡그린 얼굴, 화난 얼굴, 심각한 얼굴, 근엄한 얼굴 표정을 바꾸려고 오래전부터 노력했다. 다른 글에서 고백한 적도 있지만, 예쁘게 웃는 첫 손녀의 아기사진을 사무실 내 책상 앞에 붙여 놓고, 출근하자 마자 책상에 앉아 손녀의 귀여운 웃는 얼굴을 보며 나도 따라 웃고 사랑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연습도 했다.
감사하며 웃으며 사람들을 만나고 살자는 기도문을 써서 사무실 책상 머리에 붙여 놓고 매일 아침에 그 기도문을 묵상하며 나 자신을 고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왜 그런 짓을 내가 했을까? 그것은 내 얼굴 표정이 찌그러지고 비판적이고 엄하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자각 하긴 어려워도, 옛 사진들을 보면 그런 표정이 들어 났다. 성장기를 가난, 천대, 기본 필요의 부족속에서 생존하며 비롯된 버릇, 사람을 만나면 위험부터 살피는 눈과 귀, 사람 행동 속에 위험을 빨리 감지하는 버릇이 생기고, 그 버릇이 시간이 흘러 내 천성처럼 굳어졌다.
달라진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살다 보니, 옛 버릇이 도움이 아니라 방해가 되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옛 버릇은 바뀌어야 했다. 그래서 나름으로 노력해보았다.
만나서 기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최소한 공해가 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나 지신을 위해서도 웃으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찡그리며 사는 사람들, 불평하며 사는 사람들, 엄한표정으로 사는 사람들, 자랑하며 사는 사람들 보다는, 겸손한 사람들, 웃으며 사는 사람들,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이 면역력이 강하고, 건강 장수하고 행복하다는 연구들을 많이 읽었다. 나와 나의 이웃을 위해서 나는 변해야 했다.
그렇게 오래전부터 노력했는데, 노력의 결과가 은퇴하고도 지금의 이 상태라면 어떻게 해석해야 될까? 분명한 사실은 웃는 얼굴, 기쁜 얼굴 표정으로 변하기는 쉽지 않다는, 불가능 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렵다는 것은 분명하다.
왜 웃는 얼굴 표정으로 바꾸는 것이 어려울까? 첫째로 웃음이 없는 나 자신의 평소의 얼굴표정이 만들어지기까지 오랜 동안 반복적으로 사용하였기에 짧은 기간 동안 고치려는 노력으론 어려울 것이다. 세 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성장기에 생긴 버릇은 다른 버릇들이 얽혀서 고치기가 어렵다는 이론도 있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다. 내 마음속에 웃음과 기쁨과 감사가 있어야 그것이 얼굴이라는 거울에 비쳐질 것이고, 내 자신이 긍정적인 사람, 기쁜 사람,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람이 바뀐다는 것 얼마나 어려운가?
무지한 촌 구석에서 전쟁을 겪고, 배고픈 보릿고개를 넘고, 병들어도 도움을 받기보다 천대와 박해를 받으며 자란 환경, 그런 조건들 속에서도 살아오며 자연스럽게 생긴 나의 얼굴 표정에 남은 흔적은 당연하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기질, 아주 작은 기회라도 찾아서 살아남으려고 서슴없이 덤벼드는 버릇, 낙담하고 실패를 거듭해도 살려고 다시 도전하는 근성, 나를 여기까지 살린 그런 기질과 버릇들은 모두 가난과 천대와 악조건의 시련을 통해 연단 된 나의 생존의 능력이며 축복이다. 저주스럽던 악조건들이 나의 축복으로 변했다.
여기까지 살아남은 나의 삶을 돌아보니, 불공평하여 불만이었던 어렸을 때 조건들이 내가 연단할 수 있었던 기회를 만들어 홀로 설 수 있는 능력을 만드는 은혜가 되었다. 달이 대낮에는 희미하게 보여도 어두운 밤에는 밝고 환하게 보이듯, 남다른 별난 성공을 거둔 삶도 아닌 평범한 삶을 살게 된 이 시점에서 보니, 어두웠던 과거가 지금의 밝음과 대조를 이루어 선명하게 나의 축복을 조명하고 있다. 받은 은혜와 축복을 찾는 눈으로 보기 시작하니, 전의 불행이 지금의 행복의 원인도 되고, 지하 금광 굴처럼 어둠 속에 숨겨졌던 축복의 광맥들이 보인다.
이젠 내 얼굴에도 내 안에 찾아온 기쁨과 감사와 은혜가 거울에 비치듯이 표현되도록, 찡그리며 사는 낡은 옛 버릇을 꾸준히 노력하면 조금씩 고칠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