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은 현 대통령 딸은 부통령 당선
‘마르코스-이멜다’ 악명 부활 촉각
정치 유력가문 권력 나눠먹기 비판도
지난 주 가장 화제가 된 국제뉴스는 지난 9일 치러진 필리핀 대선이었다. 세계에서 2번째로 섬이 많은 나라인 필리핀 대통령 선거에서 부정축재로 쫓겨난 독재자의 아들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강력한 철권정치로 ‘폭군’으로 불리는 현 대통령의 딸이 부통령에 뽑혔기 때문이다. 필리핀의 선택과 그 파장을 문답식으로 정리해 본다.
– 대통령 선거 결과는?
필리핀 독재자 마르코스(1989년 사망)의 장남인 ‘페르디난드 봉봉 로무알데스 마르코스 주니어’(64·이하 봉봉) 전 상원의원이 차기 17대 대통령에 사실상 당선됐다. 부통령엔 로드리고 두테르테(77) 현 대통령의 딸 사라 두테르테(43) 다바오 시장이 선출됐다.
– 독재자 마르코스는?
1965년부터 1986년까지 21년간 장기집권하면서 독재자로 악명을 떨친 인물이다. 재임 기간 일가족의 공직 나눠먹기와 부정부패, 필리핀 경제 파탄 등으로 인권 단체와 국제 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특히 1972년부터 10년간 계엄령을 선포해 수천 명의 반대파를 체포해 고문하고 살해하면서 독재자로서 악명을 떨쳤다. 이에 시민들이 1986년 ‘피플 파워’를 일으켜 항거하자 하야한 뒤 하와이로 망명했고, 3년 뒤 사망했다.
– 그의 아내 이멜다는?
이멜다 로무알데스 마르코스(92)는 ‘사치의 여왕’으로 불릴 정도로 부패한 정치인으로 기록되고 있다. 필리핀 국민들이 “마르코스는 용서할 수 있어도 이멜다는 용서 못한다”고 할 정도로 그녀의 사치향락은 ‘전설적’이었다고 한다. 마르코스와 이멜다가 하와이로 망명을 떠났을 때 대통령궁 지하에는 가로 21m. 세로 21m의 방이 발견됐는데 명품 브랜드 구두 3000켤레였다. 뿐만 아니라 수백벌의 디자이너 드레스, 수백개의 명품 핸드백, 보석들이 산처럼 쌓여있었다고 한다. 당시 마르코스와 이멜다 부부가 해외로 빼돌린 재산은 국가 전체 외채 규모와 맞먹는 100억 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이멜다 마르코스. 사진 / 로이터
– 부모가 독재자와 사치의 여왕인데 어떻게 그 아들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나?
가장 큰 요인은 사라 두테르테(43) 부통령 당선자와의 협력 덕분이라는 게 정치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사라는 원래 대선 후보로까지 거론됐던 인물로 그녀의 유명세는 당연히 아버지인 현 두테르테 대통령의 후광에서 나왔다.
– 현 대통령 두테르테도 독재자 아닌가?
마르코스를 ‘부패를 일삼은 독재자’라고 한다면 두테르테는 ‘부패ㆍ악과 싸우는 독재자’라고 할 수 있다. 두테르테는 필리핀에 만연한 범죄와 부패, 빈곤을 근절하기 위해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다는 여론에 힘입어 2016년 1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의 취임 후 5개월간 경찰에 사살된 마약 관련 범죄자가 2000명이 넘었다. 그 중에는 무고한 인물도 당연히 섞여 있었기 때문에 인권 탄압으로 세계의 지탄을 받았다. 그럼에도 두테르테는 여전히 필리핀 내에서 80%가 넘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 그의 딸은 어떻게 부통령이 됐나?
한때 대선 출마까지 점쳐졌던 사라는 지난해 11월 부통령 후보로 깜짝 등록하면서 반전이 시작됐다. 사라 시장의 발표 직후 두테르테 대통령은 한 인터뷰에서 “딸의 부통령 출마는 전혀 몰랐던 일이다. 여권 대선 주자 중 사라의 지지율은 27%였던 반면 봉봉은 17%에 그쳤는데 그런 사라가 갑자기 부통령 후보에 등록한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며 그 배후로 봉봉을 지목했다. 이 발언으로 봉봉과 사라가 두테르테 뒤에서 ‘권력 나눠먹기’로 야합을 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정치 분석가인 로만 카시플은 “마르코스 2세와 두테르테 2세가 뒤에서 손을 잡고 6년의 대통령 임기 가운데 각각 3년씩 집권하는 방안을 협상하고 있다. 두 독재자 가문의 권력 나눠 먹기”라고 비판했다.
– 그럼에도 국민들은 왜 이들을 선택했나?
시민 권력에 의해 쫓겨난 전 대통령의 아들이 다시 대통령 후보로 나설 수 있는 배경엔 일부 유력한 가문이 국가의 정치, 행정 권력을 독점하는 필리핀의 대물림 정치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필리핀 지방 관료의 약 80%, 국회의원의 약 67%가 필리핀 내 유력 가문 출신이다.
또 다른 이유는 유권자의 과반수가 마르코스 독재를 경험하지 않은 청년층이기 때문이다. 봉봉의 지지자 다수는 30세 미만의 젊은 유권자다. 봉봉은 아버지 마르코스의 철권정치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 소셜미디어를 통해 다가가는 전략을 취했고, 주효했다는 평가다.
– 아무리 그래도 과거 아버지의 잘못이 그냥 없던 일로 되진 않을 텐데?
그 때문에 필리핀은 앞으로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봉봉을 반대하는 진보 단체들은 마르코스 치하의 암울한 과거 및 권력형 비리를 떠올리면서 “독재자의 아들은 출마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며 소송까지 불사하고 있다. 봉봉이 아버지의 전철을 따른다면 시민들이 다시 들고 일어나 사회가 극심한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 외교 관계 변화가 있을까?
미국 입장에서는 환영하기 어려운 결과다. CNN과 홍콩 일간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은 봉봉이 현 두테르테 대통령의 외교 정책인 반미친중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동맹인 미국과 상의하지 않고 중국과의 관계를 독자적으로 설정하겠다는 의미다. 필리핀이 친중국 정책을 펼칠 경우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하는 미국의 ‘중국 해상 포위망’에 구멍이 날 수 있다고 CNN은 전했다.
– 끝으로 필리핀은 왜 필리핀이라고 부르게 됐나?
16세기 스페인의 국왕이었던 펠리페 2세의 이름을 딴 국호다. 필리핀을 처음으로 찾은 유럽인인 스페인인 루이 로페스 데 비얄로보스가 이 지역의 이름을 ‘이슬라스 펠리피나스(Islas Filipinas)’라고 불렀는데 필리핀의 타갈로그 말에는 F 발음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스페인어 ‘Filipinas’를 ‘Pilipinas’로 받아들였고, 영어로는 ‘Philippines’로 부르게 되었다.
한국 언론들이 종종 필리핀의 약칭을 한문으로 ‘比(비)’로 쓰는데 이는 일본이 만든 필리핀의 한자 표현인 ‘비율빈(比律賓)’에서 온 것이다. 중국어로는 ‘菲律濱’으로 표기한다.
정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