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지금 현실감이 없어요. 잘 모르겠어요.”
배우 손석구(39)는 자신의 인기가 정말이지 잘 체감되지 않는 듯했다.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구씨 역할로 명실상부 ‘대세 배우’로 떠오른 그는 차기작 촬영차 한 달 반째 필리핀에 머무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 그가 악역을 연기한 영화 ‘범죄도시2’는 18일 역대 한국영화 사전예매량 4위에 오르며 오랜만의 국내 흥행작 탄생을 예고했다. 정작 이 작품들의 인기를 실시간으로 보지 못하는 손석구는 “해외에 있다 보니 체감이 어려운데, 빨리 한국 가서 그 광경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영화가 아이맥스(IMAX)로도 나온다는데, 못 볼 것 같아서 너무 아쉽다”고 했다.
손석구 [ABO엔터테인먼트 제공]
손석구는 2017년 개봉한 영화 ‘범죄도시’를 5년 만에 잇는 후속편 ‘범죄도시2’에서 베트남을 무대로 무자비한 악행을 일삼는 범죄자 강해상 역을 연기했다.
영화 개봉일이기도 한 이날 화상으로 만난 손석구는 ‘범죄도시2’ 출연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 “원래 거친 액션이나 말에 끌리는 편이 아니다. 그런데도 워낙 악역 제안이 많이 들어와서 ‘들어오는 악역 중에 가장 센 거를 한번 하고, 당분간 그만하자’는 생각에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물론 1편을 너무 좋아하기도 했다. 2편을 찍으면서도 심심할 때마다 볼 정도로 팬이다”라고 덧붙였다.
전편의 ‘빌런’(악역) 장첸(윤계상)이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는 점에서 부담감이 있었을 법도 하지만, 그는 “부담감은 전혀 없었다”며 “촬영 당시 이 작품이 전작의 속편이라는 생각을 이상하리만치 안 했다. 그냥 하나의 독립된 시나리오를 보고, 제 해석을 갖고 연기하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장첸과 어떻게 차별화하려고 했느냐는 물음에도 “차별화하려는 생각 자체를 안했다”며 “‘범죄도시2’에서 제 역할은 딱 하나, 관객들이 형사 마석도(마동석) 뒤에서 안전하게 있으면서 ‘저 나쁜 놈 꼭 잡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게끔 강렬하고 무서운 임팩트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화 ‘범죄도시2’에서 무자비한 범행을 일삼는 강해상 역을 연기한 배우 손석구. [사진 ABO엔터테인먼트]
그는 강해상 캐릭터에 대해 “기본적으로 울분에 차있는, 화가 많은 인물”이라며 “내적으로는 ‘울분’을 키워드로 잡고, 제가 더 혈기왕성할 때 가졌던 울분, 화가 가득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연기했다”고 했다.
외적으로도 거친 악인을 구현하기 위해 살을 10kg 가량 찌우고 태닝을 받기도 했다. “멋있는 몸보다 해외에서 호위호식한 느낌의 몸을 만들고 싶어서 전문 트레이너한테 헬스도 안 받았다. 대신 그냥 무식하게 무거운 걸 많이 드는 등 ‘강해상이라면 이렇게 운동했겠다’ 싶은 것들을 했다. 또 무조건 많이 먹었는데, 자기 전, 촬영 전에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거, 그게 좀 좋았다.(웃음)”
그의 말마따나 “울분에 차있는” 인상을 주는 강해상은 말이 많지 않은 대신 특유의 맹수 같은 눈빛이 인상적이다. ‘범죄도시’ 세계관의 핵심인 형사 마석도 역의 마동석도 앞서 제작발표회에서 “1편의 장첸이 호랑이라면 2편의 강해상은 사자”라고 맹수에 비유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손석구는 “마동석 말의 포인트는 어떤 점이 호랑이, 사자 같은지가 아니라 ‘둘이 다르다’는 것”이라며 “눈빛은 하다 보니 나온 것 같다. 감독님이 엄청난 에너지의 소유자여서 그분의 에너지에 맞추려고 여러 버전을 찍으면서 좀 더 그런 눈빛도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장르 특성상 액션이 중요한 만큼 해당 장면들 리허설과 연습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그는 가장 뿌듯했던 액션 장면으로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액션을 꼽으며 “감독님 오케이 컷이 나온 뒤에도 제가 한번 더 하고 싶다고 해서 찍었는데, 그 컷이 들어가니까 다 같이 만족했었다”며 “액션 연습을 열심히 했던 이유가 제가 한번 더 하고 싶다고 할 때 두말없이 시켜주시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서였는데, 그게 돼서 기분이 좋았다”고 회상했다.
영화 ‘범죄도시2’에서 무자비한 범행을 일삼는 강해상 역을 연기한 배우 손석구. [사진 ABO엔터테인먼트]
그는 ‘범죄도시’ 시리즈의 기획·제작자이기도 한 배우 마동석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그는 “형한테 정말 많이 배웠다. 시간 날때마다 저를 앉혀놓고 ‘너는 나랑 피가 같아. 너도 나중에 연출도 하고, 글도 쓰고, 제작도 하고 영화인으로서 할 수 있는 걸 다 해’라고 하시면서 많은 걸 알려주셨다. 항상 과외 받는 느낌으로 현장에 갔다”며“형은 콘텐트 제작하는 재미에 사시는 것 같은데 저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손석구 본인도 지난해 왓챠 ‘언프레임드’를 통해 단편 영화 ‘재방송’을 연출한 경험이 있는 터. 그는 “연출 도전을 했던 경험은 제 노후 옵션을 하나 만든 것 같았다. 언젠가 연기가 재미없어졌을 때 갈아탈 수 있는 배가 하나 생긴 것”이라며 “앞으로 연출은 무조건 할 생각이다. 사실 금년에 하고 싶었는데 촬영이 바빠서 벌써 5월이 됐다. 빨리 하고 싶다”고 했다.
‘범죄도시2’에서는 극악무도한 악인 강해상,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는 조용히 술만 마시는 구씨 등 상반된 캐릭터로 대중을 동시에 만나게 된 손석구는 “사실 1년 간격을 두고 나왔다면 이런 재미가 없었을 텐데 의도치 않게 재미 포인트가 생긴 것 같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다만 어떤 이미지로 각인되고 싶냐는 질문에는 “그냥 늘 제 거 하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다”고 답했다. “솔직한 배우, 스스로한테 솔직한 배우로 기억되면 좋겠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