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계 이민자인 프라밀라 자야팔(Pramila Jayapal)은 미국 워싱턴주로 이민온 후 첫째를 낳았다.
하지만 첫 아이가 미숙아로 태어나 난산을 했고, 태어나서도 치료를 받느라 큰 고통을 겪었다.
자야팔은 그 이후 피임을 했지만 둘째를 임신하게 되었다. 의사는 두번째 출산은 첫번째보다 더 힘들고 생명을 위협할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결국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는 채로 낙태를 선택했다. 보수적인 인도계 이민사회에서 낙태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온갖 구설수에 오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자야팔이 낙태를 공개적으로 고백한 것은 30년 후 연방하원의원으로 선출된 후였다.
연방의원쯤 되는 인물도 주변이 창피하고 남사스러워서 숨기는 것이 임신과 낙태 문제다.
자야팔 의원이 수십년간 숨겨운 비밀을 고백한 데는 계기가 있다.
연방 대법원에서 최근 유출된 ‘돕스 대 잭슨’(Dobbs vs. Jackson) 판결문 초안 때문이다. 사무엘 알리토 대법관이 초안을 잡은 이 문서에는 1973년 연방대법원 판결인 ‘로 대 웨이드’ (Roe vs. Wade) 판결을 뒤집는 내용을 담고 있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은 태아가 자궁밖에서 생존할 수 있는 임신 22-24주 이전에는 낙태를 허용하는 판례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50년 가까이 임신 초기에 한해 낙태를 합법화했다.
그러나 가톨릭, 기독교 보수단체는 태아도 생명이며, 생명을 존중해야 하므로 낙태는 안된다는 법정투쟁을 해왔다.
반면 진보, 여성단체는 여성에게 낙태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줘야 하며, 낙태를 불법화하면 불법시술등이 성행하여 여성의 목숨이 위태로워질수 있다고 주장한다.
보수 우위의 연방대법원이 유출된 판결문대로 ‘돕스 대 잭슨’에 합헌판결을 내릴 경우, 50년을 이어온 ‘로 대 웨이드’는 사실상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한인사회도 이 소송에 대해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한사람의 부모로서 종교적으로도 낙태에 반대하며, 낙태보다는 아기를 낳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변호사로서는 ‘로 대 웨이드’는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로 대 웨이드’는 연방대법원 판결 이후 50년동안 법률로 굳어졌으며, 미국민 대다수가 이에 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50년 이상 계속 이어진 법, 여론조사 결과 미국인 과반수 이상이 지지하는 법이 하룻밤에 뒤집어질 경우 그 혼란은 법조계 뿐만 아니라 정치권까지 확산될 것이다.
법적 안정성이 무너져 각 주마다 서로 다른 법률을 통과시켜 혼란이 커질 것이고, 정치권은 보수 대 진보로 더욱 분열돼 미국이 단합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둘째, 낙태는 임산부 및 전문의사가 결정해야 결정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연방하원에 제출된 여성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법(Women’s Health Protection Act)의 대표발의자인 주디추(Judy Chu) 하원의원은 “낙태는 권리이며 개인이 내려야 할 결정이다.
그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임신한 여성과 그를 담당한 의사”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로 대 웨이드’이 뒤집어질 경우 개인의 기본권이 침해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유출된 판결문에서 알리토 대법관은 “헌법에는 낙태권에 대해 단 한마디도 적혀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1960-70년대에 판결을 통해 수많은 개인 기본권을 보장했다.
흑백분리수업 폐지, 사생활 보장, 인종차별 금지 등은 헌법에는 한줄도 적혀있지 않지만, 연방대법원이 판결을 통해 보장한 인권이며 ‘로 대 웨이드’가 그 판례 가운데 하나이다.
1970년대에 아시안의 이민을 불법화한 ‘중국인 배제법’이 폐지되고 한인들의 미국이민이 시작된 것도 기본권 판결의 여파다.
만약 ‘로 대 웨이드’가 뒤집어지면, 1960-70년대에 내려진 기본권 관련 판례들도 위협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결국 한인들도 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필자는 이같은 이유로 ‘로 대 웨이드’는 뒤집어지면 안되며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 문제에 대해 한인사회의 건전한 토론과 의견 교환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