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지나온 발자취를 따라서 추억하며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다. 오랫동안 모은 사진들을 뒤적이다 몇 년 전 엘에이 살면서 맛보았던 여행을 회상했다. 엘에이는 아름다운 바다와 형형색색의 꽃들과 높은 산, 복잡하고 숨 막히는 도시와 사막까지 가진 매력 넘치는 도시다. 그 도시에 살았던 삼 년 반은 내가 여행가가 되었던 시간이었다.
좋아하는 자동차 여행을 하며 만나는 예상치 못한 풍경에 감사함과 겸손함을 배우기도 했던 시간들은 어느 날부터 내 작품 속 이야기로 고개를 내밀었다. 자동차 여행은 때로 스크린의 멋진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영화관이었고, 음악 감상실이기도 하며, 언제든 멈춰서 스케치할 수 있는 작업실이 되어서 자주 즐겼다. 그런 내가 우연히 등산가를 따라 산행길에 올랐다.
등산은 나와 다른 세상처럼 생각해도 산속의 신비가 늘 궁금했었다. 그 궁금함에 현실적인 도전은 묵살하고 지인이 조금 난이도가 있는 산이라 했어도 용감하게 따라나섰다. 이번에 안 가면 언제 해볼지 모른다는 생각에 등산화와 스틱을 사고, 가벼운 배낭을 구입한 후 몸과 마음을 무장했다. 출발 전 날은 잠을 설치며 소풍을 떠나는 어린이처럼 기대와 설렘도 컸고 그만큼 걱정도 했다.
다음날 올라갈 산을 보며 용감하게 파이팅을 외치며 용기를 냈다. 풀풀 날리는 흙먼지로 얼굴과 온몸은 분칠을 했고 산을 오르는 동안 내 심장 박동은 일행에게 들릴 정도였지만 그 힘겨움이 내게 가르침을 주고 많은 것을 깨우치게 했다. 평소에 징그럽게 느꼈던 도마뱀이 오히려 반가웠고 문득 지금 내가 밟고 있는 땅은 내 것이 아니라 그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나는 꽃들과 풀 나무들 그리고 수많은 개미와 날파리에게도 감사인사를 했으니 자연에서 겸손을 배웠다. 내 것은 하나도 없음을 알게되고 허락없이 들어와 내 것 인양 즐기니 욕심을 버리라는 가르침도 있었다.
걷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숨이 차고, 다리가 아프고, 쉬고 싶고, 앉고 싶은 유혹이 끝없이 나를 괴롭혔지만 동행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으려고 젖 먹던 힘까지 냈다. 또한 내게 감사함을 느끼게 해준 아름다운 자연의 품에 더 깊이 안기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한 병씩 줄어드는 물병의 무게가 가벼운 발걸음이 될 거란 용기를 주었고 내려가며 즐길 풍경들에 대한 기대가 에너지를 주었고 지금 포기하면 앞으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은 생각에 힘을 냈다. 주먹밥 한 입이, 물 한 모금에 감사하며 발걸음 따라서 변하는 풍경들에 가슴 뭉클했고 짧았지만 호사롭게 느꼈던 휴식은 일상의 작은 것들에 감사함을 가르쳐줬다.
내려오는 길에 오르며 배웠던 겸손한 마음은 잊어버리고 정상에 올랐다는 교만에 빠졌다가 발가락이 아파오고 발목, 종아리, 허벅지 등 온몸의 아우성에 정신을 차렸다. 아직 내려가려면 까마득해서 “조금만 더 가면 되고 난 여전히 잘하고 있어. 잘할 수 있어” 주문을 외우며 걸었다. 그리고 나를 스쳐 지나가는 나무와 풀과 꽃들 그리고 발 밑의 돌덩이에게도 봐 달라며 도움을 청했다. 멋지게 보였던 풍경이 점점 흐려지고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내려오니 주차장이 보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힘이 들어도 사람들이 더 힘들게 높은 산을 오르는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첫 시작인 험난했던 왕복 11마일 산행은 내게 새로운 도전이었고 큰 가르침이었다.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거란 막연한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나는 첫 산행에서 달콤하고 쌉싸름한 맛을 본 행운을 얻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캘리포니아의 산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고 인간들이 멋지게 만들어 놓은 풍경들도 천연자연과는 비교가 안된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그후 매주 힘겨운 산길을 오르며 자연과 소통하려 애썼고 내가 내려놓은 어수선한 마음을 받아준 자연에 감사하며 발톱 8개를 바치기도 했다. 아름다운 자연의 품속에서 받은 위로와 행복이 또 다른 색으로 마음을 정화시켜 줬다. 그런 내 체험을 하얀 캔버스에 물을 들이며 하나씩 펼쳐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