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한·미정상회담은 두 나라의 윈-윈으로 귀결됐다. 일부에선 현찰을 주고 어음으로 받았다는 비판도 있지만, 방정식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바둑으로 치면 실리를 조금 내주고 세력을 쌓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우선 한국이 문재인 정부시절 가속화 한 미·중 사이에서의 등거리 및 전략적 모호성 외교에서 다시 한·미동맹 우위로 복귀했다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있다.
한국-미국-일본의 3각 동맹의 복원은 북한-중국-러시아로 이어지는 대륙세력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할 것이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세계 최대시장인 미국에서 확고한 발판을 굳힐 수 있는 입지를 마련했다. 원자력 산업의 경우 미국과 협력해 세계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주목할 것은 미국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것이다. 바이든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불과 12일 만에 서울로 달려왔다. 그동안 한국 대통령이 취임 후 미국을 먼저 방문하는 것이 관례였다. 의전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외교에서 파격적인 조치다.
게다가 이번 윤-바이든 회담은 두나라 동맹을 기술·경제 분야까지 확대하면서, 외연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동안 두나라 정상회담은 북핵 등 국방·안보 분야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에 대해 미국 정·재계는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있다. 지난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당시 미국 조야에서 극렬히 반대한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어떻게 이같은 상전벽해가 일어날 수 있을까?
물론 미국은 지정학적으로 대중국 견제를 위해 한국이 필요하다. 한반도는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린치핀(Linchpin)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충분치 않다.
미국은 이미 쿼드와 오커스(AUKUS: 호주, 영국, 미국의 삼각동맹) 등으로 중국을 충분히 포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중국을 제압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손자병법에 따르면 적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5배의 힘이, 포위하기 위해서는 10배의 힘이 필요하다. 미국은 중국보다 군사력이 압도적이긴 하나 그 정도는 아니다. 따라서 군사력 +α의 힘이 필요하다. 이 α는 바로 경제력과 기술력이다.
미국은 이미 오래전에 탈제조업 사회에 들어가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부터 해외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의 복귀를 호소했지만 아직까지 지지부진하다.
이런 가운데 삼성, 현대, LG, SK, 한화 등의 대미 투자는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였다. 특히 한국 기업들은 미국이 필요로 하는 첨단분야의 제조기술을 가지고 있다. 고용효과는 물론, 대 중국 견제에 필수품들이다. 어쩌면 한국기업이 있었기에 미 연방정부가 최근 과감하게 중국기업 제재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실제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 반도체 전략회의에 삼성전자를 초청했다. 그리고 대미투자에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했다. 이례적이다.
각 주끼리 한국기업 유치경쟁도 치열하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미군 역할을 현재 미국에서 한국기업이 하고 있다면 지나친 비유일까? 이 밑거름이 있었기에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는 가능했다.
미국이 한국 기업에 거는 기대는 바이든의 방한 일정에서도 잘 나타난다. 첫날 도착하자마자 삼성반도체 공장을 찾았고, 마지막날 현대자동차 정의선회장을 만났다.
이제 외교의 첨병이 된 기업들을 돕기 위해 한국정부가 나설 차례다. 기업들이 미국은 물론, 지구촌 시장에서 신나게 비즈니스를 할 수 있게 실질적인 지원을 해야할 것이다.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규제는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
글로벌화 시대에선 경제가 외교의 최우선이다. 정부와 기업이 이인삼각으로 발을 맞춰 뛰어야 한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은 즉시 단행하는 것이 마땅하다. 글로벌 기업의 리더가 매주 법원에 출두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더 이상 소모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가 정치 희생양이라는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노파심이지만 한덕수 총리를 비롯한 새 정부의 경제팀은 좀 더 기업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를 기대한다. 경제관료들의 위기관리 능력에다 기업인들의 창조와 혁신 정신이 요구되는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