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풀이된 법안 좌초에 “얼마나 더 큰 참사 받아들일 셈이냐”
2일 조 바이든대통령은 최근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총기 참사와 관련해, 의회에 총기 규제법 통과를 촉구하는 대국민 연설을 했다. 백악관 크로스홀에서 진행된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은 황금시간대인 오후 7시30분 미 전역에 생중계됐다.
“이제 그만, 충분하다”…총기규제 역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21명이 희생된 텍사스주 롭초등학교의 총기 참사를 포함해, 코네티컷주의 샌디훅 초등학교(2012년, 28명 사망), 플로리다주의 파크랜드 고등학교(2018년, 17명 사망), 텍사스주 산타페 고등학교(2018년, 10명 사망) 등 지난 10년 간 벌어진 총기 사건을 일일이 열거했다. 이어 “얼마나 더 많은 학살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냐”고 반문한 뒤, “이제 그만, 충분하다(Enough, enough)”고 거듭 외쳤다.
바이든 대통령은 총기 규제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총기 규제법은 누군가로부터 총기를 빼앗는 것이 아니다”면서 “아이들과 가족 그리고 지역 사회를 보호하고, 총에 맞아 죽지 않고 학교와 식료품점·교회에 갈 우리의 자유를 지키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가 직면한 이 사안은, 양심과 상식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공격형 무기와 대용량 탄창 판매에 대한 전면 금지를 요구했다. 만약 전면 금지가 불가능하다면, 이러한 무기의 구입 연령을 현행 18세에서 21세로 올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총기 구매시 범죄전력·정신보건 문제 등 신원조회 강화하고,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는 위험인물의 총기 소지를 금지하는 ‘적기법(Red Flag Laws)’ 역시 통과시켜야 한다고도 촉구했다.
“상원 공화당 의원, 비양심적” 비판도
총기 규제법을 통과시키지 않는 공화당 상원 의원들도 압박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다수 상원 공화당원은 이런 제안들이 토론되거나 표결에 오르는 것조차 원치 않는다”면서 “이는 비양심적인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는 총기구매 시 신원 조회를 강화하는 연방 법안이 2019년 이후 두차례 하원을 통과했지만, 민주당과 공화당이 50석씩 점유한 상원에서는 공화당의 반대에 부닥쳐 계류 중인 상황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뉴욕타임스(NYT)는 “공화당 상원의원은 만장일치로 총기규제에 반대하고 있다”면서 “필리버스터를 깨기 위해서는 공화당 의원 10명의 찬성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의회를 통과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국민들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원들이 행동하지 않으면, 유권자들은 이 분노를 11월 중간선거에 핵심 쟁점으로 전환하기 위해 행동할 것”이라고 의회를 거듭 압박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이 진행되는 시간, 민주당은 하원에서 ‘우리 아이 지킴이(Protecting Our Kids)’ 법안을 상정했다.
쉴라 잭슨 리 하원의원(D-TX)이 6월 2일 열린 ”리 아이 보호법’ 법안 상정을 위한 하원 법사위 청문회 에서 우발데 총기 난사 사건으로 사망한 어린이들의 사진 앞에서 미국 헌법 사본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 로이터
지난달 24일 텍사스주 롭 초등학교에서 21명이 사망한 총기 참사에 대한 대응으로, 21세 미만인 사람에게는 반자동 소총과 탄창 판매를 금지하는 광범위한 총기규제 법안이다.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민주당 의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해당 법안을 거론하며 “다음 주에 표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대국민 연설 시간과 장소에 주목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주요 정책 결정을 알리는 연설을 할 때 주로 늦은 오후 시간을 활용해왔다. 이번처럼 황금시간대(prime time)인 오후 7시30분에 대국민 연설을 한 것은, 지난해 3월 11일 ‘코로나19 대유행 선언’ 1주년을 맞아 그간 미국이 치른 큰 희생에 따른 위안을 전하고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강조했을 때 뿐이었다.
그간 대국민 연설을 주로 백악관 집무실이나 로즈가든에서 진행했던 것과 달리, 이날은 긴 레드카펫이 깔린 크로스홀에서 진행됐다. 특히 미국 모든 주(州)와 영토에서 총기 참사로 희생된 이들을 상징하는 56개의 촛불까지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이 6월2일 총기규제법 촉구를 위한 백악관 생방송 연설을 위해 56개의 촛불이 세워진 크로스홀을 걸어가고 있다. 사진 / 로이터
크로스홀은 2003년 3월 17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에게 “48시간 내 이라크를 떠나지 않으면 군사공격에 직면할 것”이라고 최후통첩한 곳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1년 이곳에서 빈 라덴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이곳에서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를 발표했다.
WP는 “총기규제 강화 의제를 바이든 대통령이 얼마나 중대하게 다루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전미총기협회는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 직후 성명을 내고 “(총기 규제는)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며 진정한 리더십도 아니고 미국이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다”면서 “권리만 침해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