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해바라기 꽃이 진열된 것을 보았다. 한여름 햇살을 먹고 자라는 해바라기가 앨라배마에서는 6월의 꽃인가 보다. 어릴 때 해바라기를 보면 이상한 신비감이 느껴졌다. 굵고 단단한 줄기가 뻗어가는 모습이 마치 〈잭과 콩나무〉에 나오는 콩나무처럼 거인나라까지 닿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가을이면 얼굴 가득 무거운 씨앗을 품고 고개를 푹 숙인 해바라기는 갑자기 늙어버린 아이 같았다.
어릴 때 기억은 뒤로 하고 건강에 좋을 거라는 기대를 안고 해바라기씨유를 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해바라기씨유 가격이 폭등했다는 뉴스를 들었지만, 아직 여기는 괜찮구나 하며 안도했다. 우크라이나는 세계시장에 유통되는 해바라기씨유의 50%를 공급한단다. 지평선까지 노란 해바라기가 펼쳐진 밭을 남겨두고 피난길에 오른 우크라이나 농부들의 심정이 어떨지… 솔직히 전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보다 점점 올라가는 물가가 더 걱정되는 소시민이지만, 하루빨리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오길 기도한다.
〈My Freedom Trip〉은 프랜시스 박(Frances Park)과 진저 박(Ginger Park) 자매가 자신들의 어머니가 북한에서 남한으로 피난한 경험을 쓴 그림책이다. 6.25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길 안내자, 한씨 아저씨를 따라 남으로 피난하는 어린 ‘수’의 이야기다. 수는 남으로 먼저 피난한 아버지를 만나러 북에 어머니를 홀로 남겨두고 피난길에 오른다.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들켜서 끌려갈 것 같은 두려움 속에 용기를 내라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되새기며 수는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다 남과 북 경계에 있는 강 앞에서 군인에게 들키고 만다. 그런데 어린아이 혼자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는 한씨 아저씨의 간청과 간절한 수의 눈빛에 군인은 수가 홀로 강을 건너도록 무기를 내려놓는다. 수는 그렇게 홀로 물살을 헤엄쳐서 아버지를 만났지만, 곧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북에 둔 어머니와는 영원히 이별하고 만다.
그림책의 그림은 보는 사람이 주인공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그림에는 수의 가슴 두근거리는 불안과 전쟁으로 영원히 이별하게 된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제대로 담기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도 이 책을 골라잡게 된 이유는 〈나의 자유 여행〉이라는 제목 때문이다.
자유여행이라는 말은 느긋함과 짜릿함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뭔가 찾아 헤매야할 것 같은 노력과 힘겨움도 느껴진다. 이것은 여행을 빼고 ‘자유’만을 생각할 때도 그렇다. 누군가가 만들어준 길을 따라가지 않고, 스스로 길을 선택하고 나아가려면 힘이 든다. 자유는 나만의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연습하고 노력해야하는 고통이 따르는 가치이다.
어떤 국가나 집단의 전쟁으로 개인의 자유가 지켜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피난민은 자유를 위해서 전쟁을 피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언제 폭탄을 맞을지 모를 두려움 속을 걸어 나갈 때, 그들은 자유보다 그저 자신과 가족의 생존과 평안만을 기도하며 걸었을 것이다. 어디에 도착하더라도 두려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우리 삶을 여행이라 생각하면, 자유롭게 여행을 즐기기 위해서는 배낭이 가벼워야 한다. 물건, 일, 관계, 생각 등 무엇이든 소유한 것이 많아질수록 우리 몸은 무거운 짐 때문에 자유와 멀어진다. 우리는 인종, 종교, 문화, 관습, 정치 등으로 경계를 만들고 ‘우리의 것’, ‘나의 것’이라는 소유를 주장하면서 관리하려 한다. 소유하려는 욕망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은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의’ 또는 ‘나의’ 것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다른 사람의 자유를 뺏고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해바라기는 희망과 평화를 상징하는 꽃이라고 한다. 뉴스에서 죽은 사람들 몸 위에 올려 진 해바라기 꽃을 보며 마음 아파 하고 있는데, 또 다른 뉴스가 올라온다.
“전쟁은 무기만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라고 말하는 우크라이나 농부의 인터뷰다. 전쟁으로 인한 식량난과 물가상승으로 세계경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뉴스에 나와 밭을 갈고 있는 농부다. 자유를 찾아 떠나는 피난길이 아니라, 피난길에서 돌아와 언제 미사일이 떨어질지 모르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자유를 선택한 농부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