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고해”라는 부처님의 말을 어려 서부터 들어왔다. 스콧 팩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좁은 길〉 (The Road Less Traveled) 첫 장에서, 산다는 것은 끊이지 않는 문제를 만나, 문제를 풀어가는 고통의 과정이라고 같은 내용의 말을 한다. 삶이 누구에게나 고해라는 걸 일단 인정하면, 왜 나만 하고 비교하는 억울함이 없이, 문제를 만나서 해결하고 풀어가는 과정속에 성공과 성취가 행복을 만든다고 한다.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 괴로움, 억울함, 고통 때문에 피하며 사는 사람들, ‘정신병환자는 자신이 치러야만 할 고통을 피하는 사람들이다’라는 칼 융의 말을 인용하면서 스콧 팩도 문제 해결에 따르는 고통을 여러 방법으로 피하는 버릇이 진실이 아닌 허상으로 사는 정신병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문제를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자신이 책임지기, 사실을 왜곡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진실은 확실하게 그대로 받아들이기, 기쁨을 수고 뒤로 미루기, 분노와 감정 표현의 균형잡기, 이 4가지 원칙들이 문제를 풀어가는데 중요하기에 누구나 훈련해야 된다고 스콧 팩은 그의 책의 여러 장을 통하여 강조한다.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용의 단계는 사랑의 단계로 이어지는 성숙의 통로가 된다고 한다. 내 이웃을 배려하고 사랑할 수 있으려면, 먼저 내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나의 문제와 고통과 굴욕을 내 것으로 맞아 해결하는 수고와 아픔을 견뎌낼 수 있는 단계를 거쳐야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한국의 여류시인 신달자씨가 EBS 초대석에서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다가 감동했다. 그녀는 삶의 고통, 상처, 굴욕을 보통 사람들처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애인 받아들이듯이 수용하고 어루만지고 쓰다듬으며 살겠다고 했다.
그녀의 ‘열애’ 라는 시가 있다.
손을 베었다 /붉은 피가 오래 참았다는 듯/ 세상의 동맥 속으로 뚝뚝 흘러내렸다/ 잘 되었다 /며칠 그 상처와 놀겠다/ 일회용 밴드를 묶다 다시 풀고 상처를 혀로 쓰다듬고 /딱지를 떼어 다시 덧나게 하고/ 군것질하듯 야금야금 상처를 화나게 하겠다 /그래 그렇게 사랑하면 열흘은 거뜬히 지나가겠다 /피 흘리는 사랑도 며칠은 잘 나가겠다/ 내 몸에 그런 흉터 많아/ 상처가지고 노는 일로 늙어 버려/ 고질병 류마티스 손가락통증도 심해/ 오늘 밤 그 고통과 엎치락뒤치락 뒹굴겠다/ 연인 몫을 하겠다/ 입술 꼭꼭 물어뜯어/ 내 사랑의 입 툭 터지고 허물어져/누가 봐도 나 열애에 빠졌다고 말 하겠다/ 작살나겠다.
“아프게 하는 것엔 교훈이 있다.” (Those things that hurt, instruct.) 미국 독립선언문 공동 저자이며, 정치가 발명가 과학자인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손을 베인 아픔을 애인처럼 열애한 시인, 신달자씨는 어떻게 아픔을 끌어안아 수용하는 그런 경지까지 가게 되었을까?
신달자 교수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나 대학 4학년때 시인으로 등단했다. 결혼하고 아이들도 3명 낳을 때까지 평범한 주부였다. 남편이 중풍으로 쓰러졌다. 그 당시 산소호흡기 사용료가 하루에 백만원, 시어머님도 아팠다. 35살에 가족생계를 책임지고 돈이 될 물건도 팔고, 장사를 했다. 아는 사람들이 그녀가 팔려는 상품을 트집잡았다. 24년동안 남편의 병수발, 9년 동안의 시어머니 병수발, 삶이 고달파 성당에 가서 밤 늦게까지 기도하고 통곡하고, 자살도 생각했다.
그녀는 결단하고 어려움 가운데 대학원에 등록했다. 석사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었다.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라는 본인의 실화 에세이를 썼다. 독자의 고생 이야기에 공감해 〈물위를 걷는 여자〉 라는 소설도 썼다. 시집도 여러 권 나왔다. 독자들과 공감하는 글들, 그녀가 살아오며 만난 상처와 고통을 어루만지고 껴안는 과정의 생생한 경험들이 독자들과 공감 소재가 되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시인으로 등단할 정도로 글 쓰는 준비가 된 후에, 굴욕과 고통이 찾아와 시인의 정신력과 시의 소재를 강화했다고, 굴욕이 집 앞에서 노크한다면 기꺼이 문을 열어 환영하고 대접할 것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나에게 아픔과 굴욕을 주는 나의 이웃들, 특히 가족들을 생각했다. 문제와 아픔이 그들 탓으로만 돌렸던 나의 어리석고 비겁한 핑계들이 생각나 눈물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