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땐 총기규제법 제정 앞장서다 돌변
막강 자금력으로 공화당 의원 집중 지원
“총은 총으로 막아야” 논리 확산 이끌어
조 바이든 대통령의 말대로 전국이 킬링필드(Killing Fieldsㆍ대학살 현장)가 되고 있다. 지난 주말 무려 133건의 총격 사건이 잇따라 발생, 전국적으로 열 명이 훌쩍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9일에는 메릴랜드 서부에서도 총격사건이 발생, 최소 3명이 숨졌다.
이런 상황에서 총기 규제에 대한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당장 실현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가장 큰 걸림돌로 미국총기협회(The National Rifle AssociationㆍNRA)가 지목된다. NRA가 어떤 단체인지, 과연 미국이 앞으로 총기 규제가 가능할지 문답식으로 정리한다.
– NRA는 어떤 단체인가?
민간인 총기 소지자와 관련 사업자들의 권익을 도모하는 단체다. 1871년에 남북전쟁 당시 북군 장교인 윌리엄 처치와 조지 윈게이트가 창립했다. 현재 회원 수는 500만명에 이른다.
– 어떻게 만들어졌나?
북군 군인들이 남군에 비해 사격 실력이 너무 형편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미국 남북 간의 사격 실력 격차를 따라잡기 위해 NRA를 창설했다. 민간인들이 총기를 위험하게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교육하는 것도 또다른 목표였다.
– NRA는 총기 옹호단체인데 위험한 사용을 막는다니?
NRA는 지금과 달리 원래는 총기규제를 매우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단체였다. 현재 NRA가 폐지를 위해 앞장서고 있는 1934년의 ‘전국총포법(National Firearms ActㆍNFA)’과 1938년의 ‘총포관리법(Gun Control ActㆍGCA)’ 역시 NRA가 발 벗고 나서서 통과시킨 법이다.
– 어떤 법인가?
현재 총기규제법들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법으로 전과자는 총을 소유할 수 없고, 총포상과 총포 소유자는 정부에 등록을 해야 하며, 총과 관련된 세금을 부과하는 법안이었다. NRA는 또 GCA법안에 총기 구매 제한 연령, 총포 및 탄약의 수송에 대한 제한, 정신병자와 약물중독자의 총기 구매 제한 등의 규정이 신설되도록 노력했다고 한다.
– 그런데 어쩌다가 반대편으로 돌아섰나?
1977년 신시내티에서 열린 연례 총회 때 그때까지 교육 계몽에 주력하던 NRA 수뇌부가 전원 축출되고 과격파들이 NRA를 장악했다. 새로운 지도부는 정반대 노선을 천명했는데 중심 인물이 할론 카터(1913~1991)이다. 그는 현재 NRA의 영향력 토대를 닦은 인물로 평가된다.
– 어떤 사람인가?
텍사스 출신의 카터는 17세였던 1931년 15세 멕시칸 소년을 총격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전력이 있다. 조지아 에모리대학을 나와 국경수비대에서 근무하다 이민국 남서부국장까지 진급, 1970년에 은퇴했다. 1975년 NRA 하부 조직인 ‘입법행동기구(Institute for Legislative ActionㆍILA) 수장이 됐다. ILA는 미국 총기제작회사 및 관련 기업들로부터 엄청난 규모의 활동자금을 기부받는 알짜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래서 NRA 노선이 어떻게 바뀌었나?
이전까지 NRA는 총기소유권을 행사하기 앞서 ‘책임’을 강조하고 교육해왔다면 새 집행부의 NRA는 그런 책임에서 발을 빼는 대신 총기를 소유할 권리에만 중점을 둔 로비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막강한 로비력과 조직력을 동원해 공화당의 당론을 총기 옹호로 바꾸는데 일조했다. 이후 폭스뉴스가 총기규제 폐지론자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면서 총기 규제는 민주, 총기 옹호는 공화라는 지금의 구도가 자리잡게 된 것이다.
-NRA의 로비력이 엄청나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인가?
총기사고가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규제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것에는 NRA의 로비가 큰 몫을 하고 있다. 일례로 1994년 중간선거 때는 하원의원 276명에게 정치자금을 대서 이 중 211명을 당선시키는 데 공헌했다.
– 도대체 돈을 얼마나 쓰고 있나?
지난 5일 중립적 비영리 연구단체 ‘오픈시크릿(OpenSecrets)’의 발표에 따르면 NRA 등 총기 옹호단체가 1998년 이후 로비 활동에 쓴 돈은 1억9000만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같은 기간 총기규제 옹호단체들이 사용한 2890만 달러의 6배가 넘는 금액이다. 1989년 이후 올해까지 연방 공직 후보자와 정당에 기부한 돈은 모두 5050만 달러로 이중 99%가 공화당에 쏠렸다고 한다. 특히 총기 옹호단체들의 정치 후원 1순위는 총기 소지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텍사스주 의원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텍사스주는 지난달 19명의 초등학생 등 21명의 목숨을 앗아간 유밸디의 롭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곳이기도 하다.
– NRA가 아무리 영향력이 있다 해도 여론이 원하면 규제법을 만들어야 하지 않나?
이론적으로는 맞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우선 헌법이 첫 관문이다. 수정헌법 2조에 총기 소유권을 보장하는 내용이 있다.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의 치안에 필수적이다. 따라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국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는 내용이다. 또 현재 미국의 민간 총기 개수는 3억 9330만 여개로 전 세계에서 압도적 1위다. 이 총기들을 다 수거하고 없애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총은 총으로 막아야 한다는 NRA의 이론이 설득력을 얻을 수밖에 없다.
– 현재 추진 중인 총기 규제법은 없나?
현재 상원에 계류 중인 총기 규제 관련 법안이 2건 있다. 하나는 무기 판매 시 신원 조회 기간을 현재 3일에서 최소 10일로 연장하는 내용이다. 또 다른 하나는 모든 총기 거래 때 신원 조회를 의무화하는 것이 골자다. 현재 온라인에서는 신원 조회 없이 총기를 살 수 있다.
– 통과될 가능성은?
공화당이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쉽지가 않다. 공화당에서 총기 규제에 반대하는 의원이 나오기는 사실상 어렵다. 공화당은 최소한 지난 50여 년간 총기 옹호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총기 단체의 후원금의 99%를 받고 있어서다. 슬프지만, 이번에도 총기 규제의 목소리는 양은 냄비 속 물처럼 빨리 끓고 빨리 식을 것으로 보인다. 정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