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세계민속예술제전(세민제)’이 있었다. 각 학과와 관련된 민속춤을 공연하는 행사이다. 세민제는 당시 한국외국어대학 뿐 아니라 서울 소재 여러 대학에서도 관심거리였다. 1970-80년대만 해도 대학생들에게 문턱이 한참 높았던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됐기 때문이다.
공연 참가 학생들은 방과 후 운동장이나 강당에 모여 꼬박2-3개월 동안 열정을 쏟았다.
무대 위에서 예정에 없던 프리마돈나가 탄생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마추어 행사 치고는 꽤 인기를 끌었다. 특히 프랑스어과의 캉캉과 포르투칼어과의 삼바는 인구에 회자됐다.
이후 오락위주의 축제라는 일부 학생들의 항의로 잠시 중단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이 행사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오히려 해가 갈수록 수준이 더욱 격상된 듯하다.
예전엔 각 과에서 신청만 하면 참가했으나, 지금은 치열하다. 예선전을 거쳐 12개 팀만이 본선 무대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행사를 담당할 상설 전문 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예술성과 전문성을 격상시켰다.
돌이켜 보면 세민제는 개인적으로 글로벌 시대에 세계 각국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는 데 적잖이 도움이 됐다. 생활과 언어는 달라도 음악과 춤으로 서로가 교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각 나라의 문화 공유를 통해 서로 다른 점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시나브로 “다양성 안에서 우리는 하나”라는 인식을 심었다고 할까?
시간은 흘러 2022년 6월 9일 애틀랜타 한인문화회관. 제40회 미주동남부 한인체육대회는 다문화축제 행사를 시작으로 막을 올렸다.
이 행사에는 한국을 포함한 8개 국가의 전통 문화 공연팀들이 고유한 문화를 선보이며, 어우러졌다. 특히 파키스탄 팀은 무대 아래로 내려와 관객들과 함께 퍼포먼스를 펼쳐,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현지인도 참가한 K-POP컨테스트로 인해 동남부체전은 이전 대회보다 더 큰 의미를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인들만의 내부행사로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제한적이긴 했지만 아시아 민족들이 함께 동참함으로써 서로 교류와 친목의 지평을 넓힌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본격적인 아시아계 초청 문화행사는 지역 한인사회에서는 처음으로 시도하는 행사였다.
흔히 미국 사회는 샐러드 문화로 대변된다. 그럼에도 한인사회는 그동안 함께 몸을 비비고 사는 이웃 이민자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다문화축제는 한인들이 주류사회에 자연스럽게 동화하고, 또 지역에 함께 거주하는 소수계 민족과 하나될 수 있는 길을 보여줬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앞으로 크레그 뉴턴(Craig Newton) 노크로스 시장과 최병일 동남부연합회 회장의 축사처럼, 다문화 축제와 같은 ‘우리는 하나(we are the world)’행사를 통해 한인뿐 아니라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과의 교류가 더욱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말처럼 쉽지는 않다. 애로사항도 많았다. 공연을 책임진 미쉘 강 동남부 연합회 운영위원장은 공연자들을 섭외, 초청하고, 진행과 무대감독까지 일인 다역을 해야 했다.
첫 행사라 보기에 따라서는 부족하고 아쉬운 점도 많다. 특히 주중인 탓인지 한인회관을 찾은 관객들은 생각보다 적었다. 저녁시간대에 3시간 가까이 행사를 하면서 주최측이 참석자들에게 먹을 거리를 제공하지 않은 것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사족으로 이왕이면 좀 더 범위를 넓혀 미국사회의 큰 줄기 가운데 하나인 중남미를 비롯해 동유럽과 아프리카 문화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동남부연합회에서 계속 주최하기가 부담이 된다면 애틀랜타 한인회에서 이어받아 가을 축제의 한 장르로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애틀랜타 지역에는 한인 예술가들이 많이 거주한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했을 뿐이다. 하지만 중요한 첫 걸음이다. 다문화축제가 단순한 부속행사에서 벗어나 애틀랜타 한인사회가 주최하는 대표 축제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