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본산인 이탈리아에서 사상 처음으로 합법적인 조력자살이 실행됐다.
안사(ANSA) 통신 등 이탈리아 현지 언론에 따르면 12년 전 발생한 교통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44세 남성이 16일(현지시간) 가족이 보는 앞에서 독극물 주입 기계 장치를 통한 조력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눈을 감기 전 유언에서 “내 삶을 이렇게 마치는 것이 유감스럽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인생은 위대하며 단 한 번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삶을 이어가고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고 내 장애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밧줄의 끝자락에 있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 남성은 2020년 8월 중부 마르케주(州) 보건당국에 조력자살 요청했고 당국은 작년 11월 환자의 상태가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조력자살 허용 기준에 부합한다며 이를 승인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를 죄악시하는 가톨릭 전통이 뿌리 깊은 이탈리아에서는 그동안 타인의 극단적 선택을 돕거나 방조하는 행위를 형법으로 엄격히 금지해왔다. 1930년 도입된 관련 법 규정에 따라 이러한 행위는 최장 12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2019년 9월 헌재가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 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돕는 일이 항상 범죄는 아니라는 취지의 결정을 내리면서 조건부 합법화의 길을 텄다.
헌재는 당시 조력자살 허용 기준으로 치료가 불가능하거나 기계 장치로 연명하는 환자, 신체·정신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환자 등을 제시했다.
당사자가 완전한 자유의지로 이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결과를 분명하게 인지해야 한다는 조건도 붙었다.
헌재는 지역 보건당국이 조력자살 희망자의 신청을 받아 이러한 기준을 토대로 엄격히 심사한 뒤 승인 여부를 판단하도록 했다.
헌재는 다만, 올해 2월 ‘죽을 권리’를 옹호하는 시민단체가 일반 시민 100만 명의 서명을 받아 제출한 ‘조력자살 또는 안락사 완전 합법화 국민투표’ 청원서는 ‘약자를 보호할 장치가 아직 부족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럽에서는 스위스·네덜란드·벨기에·스페인 등이 조력자살 또는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