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인연으로 시작해서 십여 년이 넘도록 가끔 만나 각자의 재능을 서로 나누며 만났던 사람들이 있었다. 취미가 다르고 나이도 다르며 사는 곳도 30분에서 1시간이 넘는 거리에 떨어져서 사는 여자 다섯이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서 바느질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도 쓰면서 함께 여행도 했다. 그 아름다운 얼굴들이 문득 생각난다.
한 사람, 두 사람 먼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이젠 아주 가끔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지만 그 시절을 떠올리면 풋풋한 싱그러움이다. 오십 전후의 나이가 젊음과는 먼 사람들인 것처럼 생각하며 지나왔는데 지금 생각하니 왜 그런 생각을 했나 싶다. 사는 곳이 아주 멀다면 포기하겠지만 어정쩡한 거리에 맘만 먹으면 볼 수 있는 사람은 늘 이것저것 재다가 오히려 더 소홀해졌다.
보고 싶어도 딱히 시간을 정하지 못하던 어느 날 갑자기 “만나자” 연락하니 무슨 일이 있나? 라며 걱정하는 것 같아 달콤한 수다가 그립다고 했었다. 수다라고 생각하면 쓸데없는 말이나 남의 험담 같은걸 많이 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지 않은 어감으로 느껴질 때가 많지만 적당한 수다는 삶의 활력이 되고 오랜 시간 여운으로 남는 행복을 준다.
그런 수다가 그리웠다. 수다를 준비할 때면 찜찜함이 남지 않는 달콤한 수다가 되도록 상대방의 이야기를 관심 가지고 잘 들어야하고 배려해야 하며 내 말도 절제해야 함을 잊지 말자고 나는 몇 번씩 새김질한다.
오십을 훌쩍 넘은 나이에도 아직 소녀 같은 감성으로 여행을 다니며 글을 쓰는 여인과 바늘 한 땀 한 땀에 행복해하며 퀼트로 많은 사람에게 봉사하는 여인. 그리고 속이 꽉 차서 넘침에도 겸손함과 배움의 자세가 되어있는 소박함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여인. 당당함이 매력적이며 담백하고 솔직한 표현이 멋진 부러운 여인. 그리고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는 삶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은 나.
그런 여인들이 작은 원탁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며 해가 질 무렵까지 긴수다를 떨었던 날들이 꿈처럼 떠올랐다. 공동의 주제를 정해 놓은 것도 없는데 서로의 관심사가 통하였기에 삶을 이야기하고, 여행을 통해서 혹은 음악과 그림을 통해서 느끼는 감정들을 나누며 영화 속의 장면이 되고, 시가 되고, 그림이 되었던 것 같다.
함께여서 더 풍성한 것들이 부족함이 많은 내게 삶의 지혜를 깨우쳐주는 시간이기도 했으며 감사함의 옷을 입은 행복으로 다가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하며 늘 한결같았던 그 아름다운 여인들이 아니었으면 내가 맛볼 수 있는 행복은 결코 아니었을거다.
글로, 그림으로, 퀼트로, 음악으로 함께 했던 환상의 하모니는 오늘 불어오는 무더운 바람도 고운 추억의 향기가 되어 시원함으로 스쳐 지나간다. 이렇듯 사람이 사람과 함께 하며 더불어 나누는 소중한 것들은 큰 것이 아니라 아주 소박한 일상 속에 피어나고 있다는 것을 생각을 하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주하는 남편의 모습과 가족, 이웃들 그리고 우리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내 곁을 무심한 듯 지나가는 일상 중에 머무는 바람의 향기가 비타민처럼 내 속으로 들어와 에너지를 만들고 있다. 수다. 때로는 남아있는 독과 같은 찌꺼기에 후회스럽고 아픈 상처를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렇듯 긴 여운과 함께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기에 가끔 그립고 목마르나 보다.
좋은 사람과의 수다는 무더위에 헉헉거리다가 에어컨 돌아가는 실내로 들어왔을 때에 느껴지는 시원함과 끈적이던 땀이 식은 후의 개운함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더불어 사는 삶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위로 받고, 위로도 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향기 나는 좋은 말의 씨앗들을 뿌려서 맛 좋은 열매가 맺게 하는 달콤한 수다로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기분 좋은 걸음으로 아침 산책을 마치고 마시는 향 좋은 커피 한 잔, 따가운 햇살과 눈조차 뜨기 힘든 눈부심에도 맑고 아름답기만 하늘이 참으로 좋은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