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결정 주로 넘어가자 ‘트리거 조항’ 공방전 격화
진보아성 캘리포니아, 낙태권 보장하려 주헌법 개정 추진
연방대법원이 연방 차원의 낙태권 보장을 폐기한 이후 개별 주(州)에서 소송전이 잇따르고 있다.
보수 성향 주들이 대법원의 낙태권 폐지 시 낙태를 금지·제한하는 법을 발효하도록 한 이른바 ‘트리거 조항’을 시행하자 낙태 옹호단체들이 이를 막기 위해 소송전으로 응수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크리스틴 윔스 텍사스주 해리스카운티 판사는 28일 낙태 옹호단체가 낸 가처분 소송에서 텍사스주가 낙태를 금지하는 법 시행을 일시 중단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보수의 아성’으로 통하는 텍사스는 지난 24일 대법원 판결 전에도 임신 6주 이후 낙태를 사실상 금지하는 가장 강력한 낙태 제한 정책을 시행하던 주였다.
텍사스주는 대법원의 낙태권 폐기 판결이 나오면 낙태를 금지하고 위반 시 징역 5년에 처할 수 있도록 한 1925년 법을 시행할 수 있는 ‘트리거 조항’까지 만들어둔 상태였다.
켄 팩스턴 텍사스주 법무장관은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검사들이 낙태 제공자에 대한 기소를 선택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이날 법원 결정으로 일단 제동이 걸렸다.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지방법원의 로빈 자루소 판사도 27일 루이지애나가 트리거 조항에 근거한 낙태 금지법을 시행하는 것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라고 결정했다.
한 낙태 옹호단체가 루이지애나의 트리거 조항상 법이 언제부터 효력을 내고 정확히 어떤 행위가 금지되는지 알기 어렵다고 소송을 내자 일단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다만 자루소 판사는 사건을 본격적으로 심리하는 다음 달 8일까지 법 시행을 한시적으로 중단시켰다.
대체로 보수적 분위기인 유타주에서도 주법원이 27일 낙태 금지를 잠정 보류했다.
법원은 이날 ‘트리거 조항’에 따라 사실상 낙태 전면 금지가 발효되는 것을 14일 간 보류한 것이다.
보류 기간 트리거 조항과 관련한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취지다.
앤드루 스톤 판사는 “앞으로 발생한 즉각적인 영향이 낙태 금지와 관련한 어떤 정책보다 크다고 본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앞서 플로리다주의 낙태 옹호단체는 지난 26일 임신 15주 이후 낙태를 금지한 주법의 시행을 막아달라는 소송을 냈다.
지난 25일에는 애리조나의 시민단체가 주법이 모든 낙태를 금지할 우려가 있다며 소송을 냈고, 유타주에서도 같은 날 트리거 조항을 문제 삼은 소송이 제기됐다.
오하이오 주 역시 임신 6주 이후 낙태를 금지한 트리거 조항의 발효에 반대하는 소송이 예고돼 있다.
AP는 대법원이 지난 24일 해당 판결을 내린 이후 최소 11개 주에서 주별 법률이나 이 법률에 대한 혼동으로 인해 낙태 시술이 중단된 상태라고 집계했다.
낙태 옹호단체인 생식권센터의 낸시 노섭 회장은 “우리는 내일, 모레, 그리고 그다음 날에도 법정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소송의 계속을 다짐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에 주가 미리 만들어둔 낙태금지법을 현 시점에서 적용할 수 있느냐도 법적 분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AP는 전했다.
일례로 위스콘신주는 1849년에 임산부의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낙태를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민주당 소속인 주 법무장관은 이 법을 집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상황이다.
미시간주의 낙태 옹호단체는 1931년 낙태 금지법을 대상으로 소송을 냈고, 법원은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인 지난 5월 주 헌법 위반을 이유로 집행하면 안된다고 판시하기도 했다.
아이다호, 오클라호마, 텍사스 주는 낙태를 도운 이를 신고할 경우 포상금을 받을 수 있게 했는데, 이 규정이 주를 넘어선 이들에게도 적용될지, 또 시술자 외에 낙태약 전달자에게도 적용될지 등 법률적 쟁점이 있다.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곳 중 하나로 꼽히는 캘리포니아는 주 헌법을 개정해 낙태권을 보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섰다.
캘리포니아는 낙태권을 지지하는 민주당이 대세인 곳으로, 당장 대법원 판결에 따라 낙태가 금지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헌법에서는 낙태권 근거를 프라이버시권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대법원 판결에서 자유롭지 못할 수 있다는 게 민주당의 우려다.
대법원 판결의 골자가 바로 프라이버시권으로 낙태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캘리포니아 의회는 27일 이런 상황을 반영해 11월 낙태권 보장을 주 헌법으로 정할지 여부를 묻는 헌법 개정안을 표결에 부치기로 합의했다.
AP는 “대법원의 판결은 낙태를 둘러싼 싸움터를 미국 전역의 법원으로 번지게 했다”며 “대법원의 결정이 소송의 물결이라는 문을 열어줬다”고 말했다.
다만 AP는 어떤 경우 소송은 단지 시민단체에 시간을 버는 수준에 머물 수 있다며 “법원이 낙태 금지나 제한을 일부 차단하더라도 많은 보수 성향 주의 의회가 결함을 해소하기 위해 신속히 움직일 수 있다”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