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머리와 한복 차림을 한 소녀가 의자에 앉아 두 손을 움켜쥔 채 앞을 응시하고 있다. 높이 130cm 평화의 소녀상(이하 소녀상) 건립 뉴스가 다시 지역사회 뿐만 아니라 지구촌 한인사회에서 화제다.
애틀랜타 한인회에서 두 번째 소녀상 건립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다 준비된 듯하다. 한국에서 제작된 이 소녀상은 이미 조지아 사바나 항에 도착했고, 오는 8월 15일 광복절 애틀랜타 한인회관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위안부 조형물로는 기림비를 포함해 미국내 11번째, 소녀상으로는 5번째이다.
후세에게 남길 역사적 유물을 건립하는 데 반대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제2 소녀상은 후세 한인들과 현지인들에게 평화의 중요성을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한인회의 행사 추진에는 몇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역사적 논란은 접어두자. 위안부 문제에 대한 시각은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훗날 역사가들이 판단할 문제다.
우선 ‘과연 애틀랜타에 2개의 소녀상이 필요한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2017년 브룩헤이븐 소재 블랙번 공원에 이미 소녀상이 설립된 바 있다.
이후 시나브로 지역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유적지가 됐다. 지난 애틀랜타 총격사건 희생자 추모식 및 헌화식이 열리는 등 현지 여성 인권 상징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또 다시 소녀상을 건립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선 낭비적 요소가 강하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동일한 동상을 우후죽순처럼 세우는 사례는 없다.
시사 평론가인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표현대로 “운동의 필요에서 생긴 정치적 수요에 가깝다.” 자발적 욕구에 의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
절차 과정도 다소 거슬린다.
한인회 집행부는 이 같은 중요한 문제를 지역한인들을 대상으로 공청회도 한번 거치지 않고 주요 사업으로 채택했다. 최근 이사회에 보고하고 승인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주요 안건 결정은 주민투표에 부친다.
한인회 집행부와 건립위원회 측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다.
5년전 조지아주 첫 번째 소녀상 건립 당시 일본 총영사관의 집요한 방해와 로비를 겪은 바 있다. 이를 현지 한인사회와 지역사회의 노력으로 극복했다.
건립위원회는 예상되는 일본의 반대를 막기 위해 제2 소녀상 건립을 뒤늦게 공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십분 이해하나, 졸속 과정을 정당화하는 설명으로 충분하지 않다.
제작자도 문제다. 하필이면 조각가 김운성· 김서경 씨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한국에서 소녀상 건립비용을 과다하게 청구하고, 자체적으로 소녀상을 건립하려한 지방자치단체 등과 저작권 분쟁을 벌여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 부부작가는 이 단체에서 이사직을 맡고 있다.
대사관이나 총영사관도 사실 여부를 떠나 조금이라도 논란이 있는 단체는 초청이나 지원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수월치 않은 제작비도 문제다. 정의연에서 제작하는 이 소녀상은 3300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운송 및 설치비용까지 합치면 꽤 많은 금액이다.
설치 장소는 더 큰 논란거리다. 한인회관이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이곳에 역사적으로 민감한 의미를 지닌 소녀상이 설립된다면, 지역 한인들의 동의를 물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한인회관의 주인은 지역 한인들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충남대학교의 소녀상 건립 추진 과정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대학본부는 당초 국립대 가운데 선례가 없고, 학내 구성원 전체의 동의가 전제되지 않은 것 등을 이유로 학내 소녀상 건립을 반대했다. 소녀상 건립을 강행하려는 추진위원회측과의 마찰과 갈등은 불가피 했다.
양측은 그러나 갈등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오랜 기간 끈질기게 서로를 설득했다. 무려 4년여의 ‘밀당’ 끝에 대학본부가 ‘위원회를 구성, 의견 수렴을 위한 공식 절차를 밟자’고 제안했고, 추진위원회도 이에 응하면서 본격 협상과정에 들어갔다. 서로가 한발씩 양보하고 타협한 것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한인회관 내 소녀상 설치는 적어도 공청회는 열어 지역사회의 의견을 수렴하고 동의를 구하자. 설득과정이 없으면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지지를 받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