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한국에서 사돈 부부가 백일이 되어가는 손녀딸을 보러 왔다. 아들과 며느리는 양가 부모님 다 계실 때 조금 이른 백일 사진을 찍기 위한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에 맞춰서 우리도 입을 옷과 사진에 들어갈 소품들을 사거나 만들었다.
내 아이들의 백일 준비할 때는 손님 상차릴 음식 준비에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요즘은 콘셉트를 잡아서 아기에게 남겨줄 사진을 찍고 색다른 이벤트를 하니 많이 바뀌었다. 아기는 기억 못하겠지만 나중에 들려주고 보여주기 위해서 동영상으로 찍고 사진을 남기면서 백일을 준비하니 색다른 재미와 즐거움에 또 다른 행복을 맛봤다.
할머니 된 내가 특별한 걸 준비하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 고민했다. 다들 돈이 최고라며 간단하고 편하게 주고받는 것에 익숙하지만 그래도 난 특별한 날에는 정성 가득한 선물을 하고 싶었다. 선물 받을 사람을 생각하는 시간 그 자체가 사람 사는 냄새가 나서 좋고 돈으로 모든 것을 간단하게 해결하는 요즘이 서글프고 정 없게 느껴져서 이기도 하다.
고민 끝에 선물을 하고도 잘 못한 것 같아 후회하지만 가능하면 마음과 정성이 들어간 선물을 하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가끔 내가 좋아하고 귀한 사람에게 정성과 시간이 많이 들어간 그림을 그려서 선물한다. 선물은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받는 사람이 좋아할 것을 하는 것이라지만 결국은 내 기준에서 고민하고 결정한 것이니 잘했다고 생각한다.
신달자 님의 ‘선물’ 시가 생각이 났다. ‘피아노 소리일까/ 바이올린 소리일까/ 가깝게 맑은 악기 소리 울린다/ 너의 선물을 생각하는 나는 감미로운 악기인가 봐/ 거리로 나갔다. 시장, 백화점 / 선물을 고르기 위해 다리가 휘청거리도록/ 종일 기웃거렸다 /
왜 선물이 그렇게 정해지지 않았을까/ 그러나 내 마음을 나는 잘 알지/ 뭘 살까 생각하는 그 마음을 즐기기 위해/ 나는 오래 선물을 정하지 않고 행복해한 거야/ 선물은 물건이 아니라 마음이란 걸/ 선물을 사면서 나는 알았어 / 이 행복한 마음 / 바로 네가 준 선물임을 그때 나는 알았어.’
선물은 물건이 아니라 마음이란 걸 느낄 수 있는 가슴이 우리에게 아직 남아있는 걸까? 이런저런 잡다한 고민들을 뒤로하고 요즘 젊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팝아트 초상화를 그리려고 결정했다. 한국에서 ‘행복한 눈물(Happy Tears)’ 팝아트 작품이 모 재벌 기업의 비자금 의혹 사건으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팝아트 (Pop Art)는 Popular Art의 줄임말로 대중예술의 뜻을 담고 있는데 그 사건을 계기로 선명한 색과 색상들이 그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친숙하게 다가가 널리 알려지며 팝아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팝아트 초상화를 의뢰받아서 전문적으로 그려주는 곳들과 직접 배우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다고 한다. 선물을 하기 위해서, 혹은 직접 자신의 초상화 한 점을 그리고 싶은 많은 사람들이 일회성으로 배우고 여전히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걸로 안다.
한참 지난 뒤에서야 나는 알게 되었지만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을 거라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붓을 들었다. 사실 인물을 그리는 것 그것도 선물하기 위한다면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내 작품 속의 인물들은 내 이야기 속 필요한 형상들을 그리면 되지만 누군가에게 줄 인물을 그린다는 건 그 사람의 취향이나 대중성을 생각해야 하니 고민과 부담이 많다. 또한 닮았다 안 닮았다가 대부분 사람들의 기준이며 조금만 잘못 그려도 딴사람이 되는 어려운 작업이다.
똑같은 모습으로 정교하게 그리려면 그냥 사진이 나을 것이다. 요즘 그림보다 더 그림처럼 입맛대로 현상할 수 있는 최첨단 사진 기술이 발달했으니 더더욱 선물로 초상화를 그리려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런 무거운 사실을 감수하며 내 마음이 움직여서 아이들이 좋아하도록 침침한 눈을 비벼가며 돋보기 너머로 열심히 그렸다. 내 기대와 정성만큼 반응은 없었지만 선물을 준비하면서 내 마음은 행복했고 그게 바로 내가 되돌려 받은 선물이란 걸 알았으니 나는 이미 큰 선물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