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루스서 1시간 반 ‘피서명소’
모카신크리크 주립공원 인근
첨벙 발 담그면 어느새 ‘동심’
#. 세찬 물줄기를 온몸으로 맞았다. 우르르 쾅쾅 천둥 한복판에 있는 듯했다. 10초를 버티기 힘들었다. 나왔다가 들어가고, 나왔다가 또 들어갔다. 시원한 계곡 폭포 물맞이다.
조지아에서 이런 물놀이라니. 모처럼 나이를 잊고 추억에 젖었다. 산에 가면 으레 걷기만 하다가 폭포를 만나 뛰어들어 보니 여간 재미난 게 아니다. 모카신 크리크(Moccasin Creek) 계곡의 숨은 보석 헴락폭포(Hemlock Falls)에서다.
폭포는 조지아 북쪽 모카신 크리크 주립공원 입구 인접한 곳에 있다. 헬렌 조지아에서 20마일쯤 북쪽, 동북쪽 산악마을 클레이턴에선 15마일쯤 동쪽이다. 스와니 아씨마켓에서 출발하면 공원 입구까지 한 시간 반쯤 걸린다. 모카신이란 말은 이 지역 원주민들이 신던 부드러운 가죽 신이라는 뜻이다. 영어 발음은 ‘머커슨’에 가깝다. 악센트는 ‘머’에 있다.
모카신주립공원 뱃놀이 선착장.
버튼 호수(Lake Burton) 서쪽 호안에 깃들어 있는 공원은 조지아 주립공원 중 가장 작다.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다. 캠핑장도, 낚시터도, 뱃놀이 즐길 수 있는 선착장도 있다. 블루리지 끝자락이라 이름난 훌륭한 하이킹 코스도 가까이 있다. 특히 헴락폭포로 이어지는 트레일은 계곡과 숲을 끼고 있어 조지아 최고의 하이킹 코스로 꼽힌다.
버튼 호수는 송어 부화 및 양식장으로도 유명하다. 방문객들이 부화장 옆 물속 송어 치어를 내려다보고 있다.
폭포 가는 길에 만나는 버튼 호수는 1920년 무렵 만들어진 인공호수다. 조지아파워가 애틀랜타 전력 공급을 위해 부근에 발전소 댐을 건설하면서 생긴, 이 일대 6개 호수 중 하나다. 호수 면적은 2,775에이커에 이른다. 버튼이라는 이름은 이 지역 최초의 우편 책임자 제레미아 버튼(Jeremiah Burton)에서 유래됐다. 처음엔 송어 부화장이었다가 1966년에 주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지금도 이곳에선 매년 30만 마리의 갈색 송어(Brown Trout)가 부화되고 있다.
#. 연일 90도가 넘는 염천 무더위를 싹 가시게 만드는 곳, 애틀랜타 도심보다 10도 이상 낮은 곳이 바로 헴락폭포다. 조지아에도 물맞이 명소가 있다는 지인의 소개에 마음이 동해 지난 주말 함께 그곳을 찾았다.
헴락폭포 트레일 입구 표지석.
폭포로 가는 트레일은 주립공원 입구 길 건너편에서 시작한다. 공원에서부터 걸어도 되지만 좁은 산길 따라 트레일 입구까지 1마일쯤 더 차로 들어갈 수도 있다. 주차 공간이 많진 않지만 아주 운이 나쁘지 않다면 그럭저럭 차를 댈 수 있다.
본격 하이킹은 헴락폭포 트레일(Hemlock Falls Trail)이란 글자가 새겨진 큼직한 머릿돌에서 시작한다. 폭포까지는 1마일, 그다지 험하지 않은 길이라 20~30분이면 충분하다. 등산로는 제법 수량이 많은 개울을 따라 계속 이어진다.
헴락폭포 트레일은 계곡 따라 이어지는 울창한 숲과 시원한 등산로로 인기를 끈다.
우당탕 콸콸 흘러가는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기분이 상쾌하다. 발아래 땅을 보면 고사리류 풀들이 많고, 고개 위 하늘을 보면 치솟은 나무들이 늠름하다. 숲속 가득 울려 퍼지는 포롱포롱 산새 소리 역시 말할 수 없이 청량하다. 약수처럼 흘러내리는 가는 실 폭포도 지나고, 계곡을 가로질러 놓인 예쁜 나무다리도 건너가며 얼마쯤 걷다 보면 어느새 헴락폭포다.
계곡을 가로질러 놓인 나무다리.
폭포라고는 하지만 어른 키 높이 정도로 그렇게 높지는 않다. 그래도 콰르르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폭포수는 기세가 대단하고 소리 또한 우렁차다. 가까이 갈수록 물소리는 더욱 커져 왁자한 사람 소리는 거의 다 묻힐 지경이다.
옛날 판소리 명창들은 득음(得音)을 위해 이런 폭포 옆에서 독공(獨功-스스로 모질게 노력함)한다고 했는데 여기 서 보니 알 것 같다.(득음이란 성대가 헐고 아물기를 반복하며 굳은살이 박일 때까지 소리 연습을 해서 마침내 힘차고 시원스러운 고음을 얻게 되는 경지를 말한다).
바위에서 떨어진 물은 미끄러지듯 흘러내려 큰 소(沼)를 이룬다. 하늘을 지붕 삼고 바위와 숲을 울타리 삼은 천연 수영장이다.
바닥이 평평하고 물이 깊지 않아서인지 몸을 담근 이들이 제법 있다. 대부분 조무래기 아이들이고 아예 수영복 차림을 한 청춘 남녀들도 보인다. 점잖은 체면에 훌러덩 벗고 물에 들어간다는 게 쉽지 않아서인지 어른들은 대부분 멀찍이서 구경만 한다.
그나마 계곡물에 발이라도 담근 사람은 탁족(濯足)의 즐거움을 아는 것 같다. 하긴 흐르는 물에 발 담그고, 재잘거리는 아이들 소리 들어가며 동심에 젖고 옛 추억에 잠겨 본다면 그만한 행복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헴락폭포 아래는 천연 수영장이다. 물이 얕아 아이들 놀기에도 있다.
#. 탁족도 좋고 물놀이도 좋지만 폭포의 제맛은 역시 물맞이다. 거센 물줄기 앞에서 섰다가 잠시 주춤했지만 용기를 냈다. 쏟아지는 물줄기를 향해 한 걸음씩 발을 내디뎠다. 온몸에 튀겨 오는 물방울이 묵직하고 차가웠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폭포수 아래로 몸을 밀어 넣었다. ‘으악’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어깨 위로, 등짝으로, 세찬 물줄기가 사정없이 떨어진다. 몸을 가눌 수가 없다. 다시 중심을 잡고 몸을 돌려세웠다. 이번에는 머리까지 들이밀었다. 하나, 둘, 셋, 넷…그렇게 겨우 열을 세고, 더는 못 버티고 머리를 들었다. 그러기를 몇 차례.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했지만 이상하게 머리가 맑아지고 기운이 솟았다.
폭포 물맞이는 신경통·어깨 뭉침·허리병·산후통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우리 선조들도 즐겨 하던 놀이였다.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으면 여름 질병과 더위를 이겨낼 수 있다고도 믿었다. 음력 6월 보름, 유두(流頭)의 세시 풍속 중 하나였다. 유두는 흐를 류(流), 머리 두(頭), 곧 흐르는 폭포에 머리를 감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요즘 다른 유둣날 풍속은 거의 사라졌다. 그래도 폭포 물맞이는 한국인의 여름 피서법으로 꿋꿋이 남아있다는 게 가상하다.
폭포 물맞이는 여름을 이기는 우리 조상들의 세시 풍습이기도 했다. 헴락폭포에서 쏟아지는 폭포수를 맞으며 즐거워 하는 한인들.
애틀랜타는 위도로 북위 34도쯤 된다. 한국의 목포(북위 34)와는 거의 같고, 부산(35도)보다는 조금 남쪽, 제주(33도)보다는 살짝 위다. 기후가 비슷할 법한데 조지아에서 두 번째 여름을 보내면서 보니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확실히 한국보다 무덥고 습도도 높다. 요즘도 연일 90도 넘는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이럴 때 불현듯 시원한 뭔가가 생각난다면, 이런 폭포 물맞이에 한 번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넓은 바위를 적시며 계곡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 메모: 물맞이는 몇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첫째는 적당한 폭포다. 폭포수를 맞으며 서거나 앉을 공간이 있어야 하고, 물아래 소(沼)가 너무 깊어도 위험하다. 수량도 중요하다. 너무 물이 많으면 세찬 물줄기를 맞을 엄두를 낼 수 없고, 너무 적다면 싱거울 것이다. 물이 너무 차가워도 마사지 효과가 반감된다고 한다. 이런 것을 고려하면 헴락폭포 만한 곳이 없다.
물맞이 할 요량이면 수영복을 챙기는 것이 좋겠다. 바위 바닥이 거칠고 미끄러우므로 물신발도 같이 준비하자. 물을 맞을 땐 세찬 물살에 수영복이 훌러덩 벗겨질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주립공원 주소 : 3655 Highway 197, Clarkesville, GA 30523
글·사진=이종호 애틀랜타중앙일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