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둘루스 멕다니엘 공원을 걷는데, 무성한 초록 잎들의 숲 속에 빨간 구슬알들 같은 열매들이 초롱초롱 빛났다. 저게 뭐지?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하! 어려서 시골서 많이 따먹은 나무 열매다. 손을 뻗어 열매를 몇개 따서 입에 넣고 맛을 보니, 달콤새콤한 맛, 직통으로 옛날 산꼴에서 배고플 때 따먹던 그때 그 맛으로 연결된다.
저 열매 이름이 뭐였더라? 머리를 굴려도 생각나지 않아 등산 팀 카톡 방에 열매 사진을 올리고 이름을 아시는 분 알려 달라고 했다. “Autumn Olive 이것이 바로 보리수랍니다.” 보리수 열매 사진과 함께 한 분이 카톡에 올렸다. “내 어릴 때 보리똥이라 부르던 열매 갔습니다. 물론 충청도 말인데, 보리수는 표준어인지도 모르지만, 저는 그냥 보리똥. 먹고 싶네요.” 다른 답신도 올랐다. 고맙다고 답신도하고 멕다니엘 공원에 많다고 알렸다. 인터넷에 보리수 열매를 찾아보니, 열매 사진들이 내가 보고 맛본 바로 그 열매가 맞다.
공원을 걸으며 몇 분과 보리수 열매에 대한 추억을 나눴다. 보리수 열매들은 자세히 보면 열매 표면에 파리똥 같은 잡티들이 보이는데, 그래서 파리똥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보리수 열매라고 불리기도 하고 보리똥이라고 부른 것 같다는 이야기, 멕다니엘 공원에서 동양인 부부가 보리스 열매를 열심히 따는 모습을 목격한 이야기도 나눴다.
멕다니엘 공원이 집 가까이 있어서 자주 걷다 보면, 어려서 고국에서 배고프던 시절 산과 들에서 막 따먹던 열매들을 만나는 즐거움과 반가움이 있다. 길바닥에 떨어진 밤송이와 커다란 알밤을 주었을 때, 길가에 떨어진 고욤들을 보고 나무 곁에 선 감나무를 올려다볼 때 주렁주렁 달린 고욤들, 빨갛게 익은 산딸기들, 검게 익은 멍덕 딸기들, 길바닥에 떨어진 머스카다인이라 부르는 산 포도알들, 미국에선 피칸이라 부르지만 한국 시골에서 가래추자라 부르던 열매들, 자주색으로 익은 뽕나무 열매 오디, 그리고 보리수 열매. 한국 산골마을에서 어려서 따먹고 주어 먹던 야생 열매들을 지구의 반대편에 와서 살며 다시 만나니 배고프던 시절의 친구들을 여기서 만난 것 같이 반갑다.
멕다니엘 공원을 걷다가 내가 만난 너무 반가운 식물 중에 달래도 있다. 달래는 무더기로 많이 자리고 여름엔 줄기가 50센치나 커서 그 끝에 열매가 달리고 꽃이 피는 모습은 옛날에는 보지 못했다. 공원에서 만나 반가운 식물 중에 달개비 꽃도 있다. 잡초들 사이에 삼빡한 보라색의 작은 꽃, 달개비, 민들레처럼 작아 잡풀과 경쟁력도 없고, 씨를 전하는 방법도 민들레만 못해 번성하지 못하는 달개비를 공원에서 봤을 때 고향친구 만난듯이 반가웠다.
보리수 나무 열매는 비타민 A, C, 와 마그네슘, 칼슘, 칼륨, 인, 철, 리코팬등 영양분이 있어 건강에 좋고 항 산하성분들이 늙음을 막아 준다고 한다. 배고파서 산과 들에서 열매들과 나물들 먹던 그 시절에는 고픈 배를 채우려고만 했는데, 그래도 배고픈 보릿고개를 넘을 때 야생의 열매들과 나물들 속에 필수 비타민과 미네랄이 건강을 지켜준 것 같아 더욱 고마운 생각이 든다.
공원을 다시 걸으며 보리수 열매들을 찾아보니 초록색 잎사귀들 속에 빨간 열매들이 무더기로 여기 저기 보인다. 옛날 시골에 가면, 김씨 촌, 조씨 촌, 박씨 촌 하던 집성 촌처럼, 보리수는 무더기로 자란다. 다 자란 보리수는 키가 2미터 정도인데 어떻게 키가 큰 나무들이 무성한 공원에서 생존할까? 살펴보니, 보리수들은 오래된 포장 도로를 따라 옆으로 연이어 무더기로 있다. 키가 큰 숲속에선 생존할 수 없어, 오래된 포장 도로 가장자리, 사람들이 나무를 자른 가장자리, 높은 나무 밑이지만 부부적으로 햇빛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만 생존한다. 그 많은 열매들로 해마다 새싹들을 피워 영토를 넓히다 보니 숲 속으로는 못 가고 포장도로 옆으로만 퍼져 있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했기에 키가 작은 나도 생존할 수 있다오.” 보리수가 속삭인다. 7월 초순에만 빨간 열매들이 보이더니 월말에 가니 열매들은 보이지 않아도 보리수들이 여기저기 많이 보인다.
슈베르트의 성문 앞 우물 가에 서 있는 보리수’의 보리수는 다른 종류의 나무(독일 이름은Lindenbaum이고 미국이름은 Linden tree)라고 한다. 부처님이 보리수 나무아래서 득도했다는 그 보리수는 인도에서 성스럽게 생각하는 아열대 식물로 한국에는 없다고 한다. 키가 작은 보리수 군락이 키가 큰 숲 속에서 미국의 원주민 이전부터 생존한 것을 보니, 다르고 다양해도 조화를 이루며 생존하는 자연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