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인 지인의 집에서 잠시 지내다 나온 아이가 들고 온 그림을 보여줬다. 푸른 하늘과 초록빛 땅 사이에 하늘과 땅 색깔을 섞은 둥근 그림을 중앙에 두고 양쪽에 아름다운 꽃이 두 송이 그려져 있었다. 태양을 닮은 강렬한 오렌지 빛으로 이글거리는 원형이 무엇을 뜻하느냐고 물었더니 미래의 거울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이의 다음 설명을 듣다가 그만 기절할 뻔했다.
거울 양쪽의 두 꽃은 공동묘지에 묻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묘지에 심은 꽃이라는 아이의 당당한 말에 눈이 확 떠졌다. “엥? 내 무덤?” 했더니 자신이 성인이 되면 할머니는 천국에 계실 것이니 당연한 일이라며 나를 빤히 쳐다보는 아이의 반짝이는 둥근 눈이 갑자기 낯설었다. 도무지 어떻게 이런 기이한 발상의 그림을 그렸을까? 궁금했다. 옆에 앉은 남편은 처음부터 우리의 대화를 묵살했다. 죽음과 마주서고 싶지 않은 그에게 아이의 당돌한 그림은 도전이었다. 훗날 묘지에 찾아와 꽃을 심어준다는 아이의 고마운 약속이 현재의 우리에게는 사실 즐거운 일이 아니다.
그러잖아도 자기와 공을 차며 놀 적에는 날 더러 젊은 할머니라 부르고 할아버지와 이야기하면 늙은 할머니 라며 나를 “반은 젊고 반은 늙은 할머니” 라 불러서 기분이 묘했는데 아이가 벌써 우리 부부의 죽음을 봤다는 사실에 섬칫했다. 삶의 순환은 당연지사지만 천진난만하게 뛰어노는 5살짜리 아이가 죽음을 받아들이고 쉽게 표현하는 사실이 놀라워서 아이와 뭐든 스스럼없이 나누던 대화를 이젠 조심한다.
그 며칠 후 인도에 출장중인 딸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인 타지마할을 방문했다며 사진을 보냈다. 17세기에 제작된 아름다운 궁전같은 묘의 사진을 아이와 함께 보면서 딸이 첨부한 무굴제국의 황제 샤 자한과 먼저 세상을 떠난 그의 사랑하는 아내 뭄타즈 마할의 스토리를 읽었다. 완벽한 사랑인지 아니면 애절한 사랑인지 그들이 남긴 유적은 힌두, 무슬림, 그리고 기독교의 요소를 고루 갖춘 진실로 멋진 건축물로 시선을 잡는다.
내 무덤에 꽃을 심어주겠다는 아이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타지마할을 지은 샤 자한 황제의 마음이 나에게 따스함을 줬다고 인도계 친구인 나피샤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녀는 깔깔 웃었다. 사귄 지 30년이 되어가는 나와 동갑인 나피샤는 인도에 있는 많은 가족을 만나러 인도를 자주 방문한다. 타지마할의 마법 같은 영향을 받고 자란 그녀에게 내가 보여준 관심은 물꼬를 튼 계기가 됐다. 그녀는 타지마할의 하얀 대리석이 감싸안고 있는 신비로움을 마치 천일야화처럼 흥미진진하게 풀었다. 아무튼 14번째의 아이를 출산하다가 38세로 세상을 떠난 뭄타즈 마할과 샤 자한의 사랑은 나에게는 영원한 비밀이다.
우리는 인도의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1861-1941)의 시를 좋아하는 또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타고르와 같은 지역인 캘커타에서 성장한 어머니가 자신이 어렸을 적부터 타고르의 시를 많이 읽어주어서 자연히 타고르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는 나피샤는 어렸을 적에 한국을 위해 타고르가 쓴 시 ‘동방의 등불’을 외우며 희망을 키운 나와 죽이 잘 맞는다. 특히 ‘기탄잘리 1’은 좋아서 외운다 했더니 그녀는 무척 기뻐했다.
‘당신은 나를 무한케 하셨으니/ 그것은 당신의 기쁨입니다./ 이 연약한 그릇을 당신은 비우고 또 비우시고/ 끊임없이 이 그릇을 싱싱한 생명으로 채우십니다./ 이 가냘픈 갈대 피리를/ 당신은 언덕과 골짜기 넘어 지니고 다니셨고/ 이 피리로 영원히 새로운 노래를 부르십니다…세월은 흐르고 당신은 여전히 채우시고/ 그러나 여전히 채울 자리는 남아 있습니다.’ 얼마나 멋진 기도인가.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은 고향을 지키는 사람인데 특히 태어난 집에서 80년 후에 세상을 떠난 타고르 같은 사람이 부럽다고 했더니 나피샤는 말했다. 그것은 인도에서는 흔한 일이고 자신의 가족도 대대로 같은 집에서 태어나고 죽는다니 복 받은 사람들이다.
자기 엄마가 인도에서 무사히 귀국하기를 바란다며 작은 분수에 동전을 던져 넣은 아이의 소원은 이루어져서 지난 주말에 딸은 귀국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왜 장난감을 사주지?” 물으면 “할머니가 저를 사랑하시니까요” 하던 아이가 이제는 “제가 할머니를 사랑하니까요”로 태도를 바꾼 현실과 마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