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글에 썼듯이, ‘상처받은 마음’을 다시 읽으며 나의 어린 시절 상처를 돌아보았다. 어릴 때 받은 상처 때문에 나 자신도 사회생활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로버트는 그의 다중인격장애를 정신과 의사의 도움으로 발견하고 치유 받았지만, 나는 그럴 여유가 없어 나름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는데, 치유과정에 공통적인 점이 있는 것 같아 다소 위안이 된다.
내 문제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나도 모르게 술에 취해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현상이었다. 고등학생 때 처음으로 친구의 하숙집에서 둘이서 술을 마셨는데, 잠을 깨어보니, 토한 오물이 있고, 처음 마신 기억밖에는 없었다. 그 후 가끔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 결혼 초에 “오늘 하루 술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운다.” 책상 머리에 붙은 맹세를 매일 읽고 다짐하고 학교로 출근했다.
‘오늘 하루 술 안 마신다’ 맹세를 만들기까지 술 취해 뻗은 경험 속에 지갑도 털리고, 싸움에 연결되고, 친구들이 송장 같은 나를 집까지 운반하기도 했다. 그 병 고치지 않으면 성공의 공든 탑을 아무리 힘들게 쌓아도 무너질 것은 틀림없었다. 고쳐야 했다.
“내 속 깊은 굴 속에 이무기 탓이야! 굴속 깊이 숨어 잠든 이무기가 술기운에 깨어나 술을 퍼 마시게 하는 거야.” 그런 생각이 반복되었다. 수련이 모자라 용이 못된 구렁이가 이무기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구렁이 신랑이 옥골 선풍의 선비가 된 ‘구렁 덩덩 신 선비’이야기도 배경이 되었다. 내가 살던 산골마을엔 집집마다 집 지키는 구렁이가 있다고 했다. 구렁이들은 위험하면 신비하게 땅굴 속으로 숨어 자신을 살렸다. 술 취해 뻗은 다음날이면, 내 속에 구렁이가 숨어 있다는 생각은 굳어졌다. 어떻게 하면 내 속의 구렁이를 길들여 용으로 날려보낼 수 있을까?
1940년대, 충청도 시골, 가정도 없이, 신발을 고치거나 노동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던 떠돌이 홀아비와 그의 어린 아들이 있었다. 아버지가 싸우거나 매를 맞을 때, 나쁜 놈의 새끼라고 애들이 덤빌 때, 어린 아들은 구렁이같이 재빠르게 숨어 위험을 피했다. 아버지는 일 나가고, 아픈 아들은 목로방에서 아파 신음한다고 눈 쌓인 문밖으로 쫓겨나는 등 상처가 많았다. 그 아들도 오줌을 싸서, 싸워서, 다쳐서, 좀도둑질하다 들켜서, 죄를 지어서 구렁이처럼 숨어 자신을 보호했다.
‘상처받은 마음’에서 치유과정 중에 어려운 점은, 상처가 아플 수록 깊이 묻어두어 찾아내기 어려운 점, 상처를 찾아가서 아픔을 제거하는 과정, 그리고 상처로 생긴 분신들을 통합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치유의 과정은 어렵고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내 속에 숨은 이무기를 찾아가 보니, 거기 숨긴 나의 상처들이 보였다. 그 상처들의 아픔이 변하게 된 것은 아픔들이 나에게 준 보상들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선 자신이 뭔가 해야 했다. 원해서 노력하니 이룬 것도 있었고, 무언가 스스로 해야만 생존이 가능 했고, 그것이 삶의 방식이자 버릇이 되었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내가 바라고 노력한 결과보다 더 큰 은혜를 느꼈다. 대낮보다 어두운 밤에 달빛 별빛이 찬란하듯, 어릴 때의 초라한 배경때문에 회복된 평범한 일상이 감사로 이어졌다. 큰 성공이 아니라 회복된 평범한 일상들이 감사로 느껴졌다. 술 취해 송장처럼 뻗는 빈도도 줄어들다 없어졌다.
출생에서부터 깨진 달걀인 아버지가, 나를 살리려 최선을 다한 사랑과 헌신을 알고 나서는 아버지가 고맙고, 나를 살린 영웅으로 바뀌었다. 미국 대학에서 첫 안식년을 받아, 한국의 아버지 고향을 찾아갔다. 그를 아는 사람들을 만났다. 평범한 농가의 장남으로 그가 태어나자 생모가 죽었다. 그는 동냥 젖으로 살아났다. 새엄마와 이복형제들, 또래들과 싸움, 가정과 마을에서 문제아로 자랐다. 첫 부인 사망후에 그는 떠도는 홀아비, 그러다 40 가까이 되어서 아들 하나를 얻고, 가정폭력에 애 엄마는 도망갔다. 자신도 돌보지 못할 불구의 상이 용사 같은 병들고 깨진 아버지가 아들 하나는 살려보겠다고 최선을 다한 눈물겨운 수많은 사건들을 나는 기억한다. 그런 아버지가 고맙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은밀하게 숨긴 나의 죄들도 다 찾아가 보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죄의 장면들도 있다. 화산 폭발, 태풍, 화재, 지진, 홍수, 전쟁, 가족의 사망이나 불구, 개인이 조정할 수 없이 우리는 재난을 당하기도 한다. 세상에 태어나자 마자 상처투성이로 담벼락도 올라보지 못한 채 껍질이 산산조각난 달걀이 된 아버지, 그의 업보를 나눈 나의 상처들, 어느 누가, 아버지나 나와 같은 조건들, 유전자, 시대, 현실 환경의 조건에서 태어난다면 다르게 살 수 있을까?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씀의 의미가 확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