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관(L. A. Fitness)에서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 저쪽에서 “드르륵, 드르륵” 소리가 들렸다. 벽에 달린 상자 안에 둘둘 말린 페이퍼 타월뭉치에서 한 장을 밑에서 끌어내면 드르륵 하고 종이 마리가 돌아가며 내는 소리다. 사람들은 체육관 안에서 필요한 만큼만 서너 장 빼며 드르륵 소리도 서너 번으로 끝난다. 그런데 이번엔 끝이 없이 드르륵 소리가 계속된다. 저렇게 많이 페이퍼 타월을 빼는 이유가 뭘까?
내가 탈의실에서 옷을 거의 다 갈아 입었을 때 바로 내 옆에 와서 옷을 갈아 입는 사람이 드르륵 드르륵 페이퍼 타월을 꺼내던 사람이다. 한국 사람 같다. 40대정도로 젊어 보인다. 그는 페이퍼 타월 반듯하게 접은 두루마리를 가방 속에 넣는다. 그리고는 옷을 입는다. 나는 그에게 말을 하고 싶은데 뭐라고 말을 할까 망설여진다. “그렇게 가져가면 도움이 되지요?” 그렇게 그의 입장에서 말을 시작하면 시작이 쉬울까? 말을 못 하고 망서리는 사이 그는 옷을 갈아 입고 벌떡 일어나 탈의실을 나갔다.
그 체육관에 다닌 여러 해 동안 4번 보았다. 사람들이 탈의실에 많지 않는 시간에만 드르륵 드르륵 페이퍼 타월을 상자에서 꺼내서 차곡차곡 개어 가방 속에 넣어 가지고 갔다. 네 사람 중 세사람이 동양인이었다. 탈의실에 사람들이 적은 시간에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으로 봐서 그런 일이 잘못이라는 것을 그들 자신도 알고 있는 것 같다.
체육관 청소하는 여자에게 물어보니, 탈의 실이나 화장실엔 CCTV를 설치 못하는 규율 때문에 증거는 없어도, 페이퍼 타월, 화장지, 물 비누까지 새로 갈아 놓으면 빨리 없어지는 것으로 봐서 사람들이 가져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한다. 물비누까지? 여자는 작은 병에다 물비누 짜 넣는 흉내를 낸다.
코로나 펜데믹 동안 페이퍼 타월이나 화장지를 마구 사서 마켓에서 공급이 부족하다는 뉴스도 인터넷에 보인다. 중국의 한 도시에서는 공중화장실에 배치된 휴지들을 일부 주민들이 관리자들의 눈을 피해 통째로 훔치거나 수백 장씩 몰래 챙겨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기사도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화장실에는 들어가지도 않은 채 휴지를 몰래 뽑아가려고 줄은 서는데, 그 중 누구도 좀도둑질을 말리지 않고, 질서 있게 줄을 서서 차례로 휴지를 몰래 빼 간다고 하는 기사도 있다. 브라질에서는 한 공무원이 화장실 휴지 1000 두루마리를 도둑질한 것이 발각되어 형을 받은 기사도 있다. 그 외에도 많은 후진국에서 화장지 도둑맞는 기사가 있다.
공원을 걷고나서 일행이 맥도날드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때 체육관에서 페이퍼 타월 빼 가던 젊은이의 이야기를 했다. 5 남자중에 1명만이 그런 좀도둑질은 말라고 말해야 된다고 하고 다른 분들은 말로 나쁜 버릇 고치기는 어렵다는 듯이 웃기만 한다. 하지만 여론을 만들어 주위에 알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월남 파병들이 타고 가던 배 속에서 화장실의 화장지, 비누, 타월이 없어지자 병사들 소지품 검사가 실시되고 꾸겨 넣었던 화장지를 모두 제자리에 가져다 놓은 이야기도 나왔다.
미국에 일찍 와서 한국을 다녀온 경험 중에, 전에는 공중 화장실에서 휴지가 없어 당황한 경험들도 이야기 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옛날 지나간 이야기고, 언제부터 인가 공중 화장실 휴지가 제대로 있을 뿐 아니라 화장실도 너무 깨끗한 것에 놀란 경험들을 이야기했다. 역시 빨리빨리 대한 민국국민은 나쁜 버릇도 빨리빨리 고치는 대단한 민족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늙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어려운 환경에서 살 때 생긴 나쁜 버릇들은 고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노인들이 많은 지금은 공중화장실의 휴지 도둑질과, 서울역 참사 (귀향길에 먼저 자리 잡으려 밀치다가 일어난 대형 참사)나 기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탈 때 먼저 자리잡으려고 뒤엉키는 일은 옛이야기가 되었다.
어떻게 한국 사람들, 특히 노인들까지 그런 버릇을 고쳤을까? 아마도 1988 여름 올림픽을 시작으로 한일 월드컵, 세계육상 선수권대회, 평창 올림픽 등 세계적인 행사와 많은 외국 관광객을 맞았기 때문에, 국민 모두가 세계의 무대에 서기위한 교육과 체면유지를 위한 노력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미국에 사는 한국 사람들 중에 페이퍼 타월 꿍치 는 버릇을 못 고치는 적은 수의 사람들도, 사람들이 적은 시간에만 그러는 걸로 봐서 이미 잘못이라는 걸 아는데, 쓸데없는 꼰대의 잔소리는 감정만 상할지 모른다. 노인인구가 많은 고국에서 공공 화장실 휴지 도둑이 없어졌는데, 미국에 사는 한국사람들 중에 그런 버릇 가진 분들도 변하실 것으로 기대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