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없는 3000만명 우려
연방정부가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무상공급을 중단하는 걸 검토하고 있다. 팬데믹이 3년째 이어지면서 관련 예산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보건복지부가 오는 30일 제약사, 약국, 주 보건국 대표 등과 함께 코로나19 백신·치료제 유료화 전환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8일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조 바이든 행정부 모두 장기적으로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관련 비용을 연방정부에서 개인이 부담하는 것으로 바꾸는 걸 고려해왔다. 하지만 구체적인 시기와 방안을 논의하는 등 실질적인 계획 단계에 돌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자금 부족이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WSJ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의 공중보건 및 사회복지 비상사태 기금은 이미 지난 2월 중순에 동이 났다.
이에 따라 미 전역 보건소에 관련 지원이 끊겨 진료소가 문을 닫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2월부터 코로나19 항바이러스제, 진단키트, 개량형 백신 접종을 위한 최대 300억 달러의 추가 예산배정을 의회에 요청했지만, 공화당은 “기존 코로나19 예산을 다 쓰기 전까지 추가 예산은 없다”는 입장이다.
돈 오코넬 보건복지부 차관은 WSJ에 “우리는 언젠간 이 (유료화)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이제 그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며 “(30일 회의에서) 백신 및 치료제 공급, 건강보험 미가입자에 대한 보장, 규제 문제 등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오코넬 차관은 “유료화 완전 전환까지는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당장 이번 가을부터 개인이 예방접종 비용을 부담할 가능성이 있다. 아시시 자 백악관 코로나19 대응 조정관은 최근 CNN과 인터뷰에서 “2023년에는 모든 코로나19 관련 의약품이 유료화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일부는 올해 가을, 몇 주 후부터 유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다음 달 출시될 것으로 보이는 오미크론 변이 ‘BA.5 표적’ 백신부터 유료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자 조정관이 18일 NBC 인터뷰에서 “BA.5 개량형 백신이 9월 초에서 중순 사이에 출시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문제는 건강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약 3000만명의 미국인이 어떻게 비용을 부담하냐는 것이다. WSJ는 “연방정부가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를 제약사들로부터 구매해 팬데믹 기간 무상으로 개인에게 지원했다”며 “유료화 전환은 보험 혜택을 못 보는 인구 3000만명에게 도전을 제기한다”고 지적했다.
보험에 가입돼 있더라도 민간 보험 회사가 장악한 미국 의료시스템 특성상 보험료 상승 가능성도 크다. 그동안은 연방정부가 팬데믹 기간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를 제약사들로부터 직접 사들여 개인에게 제공했다. 하지만 유료화가 이뤄질 경우 앞으론 보험사들이 제약사들과 각자 협상을 벌여 백신 등을 사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백신 계약 가격이 높아져 건강보험료가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백신 접종률 하락도 우려된다.
비영리단체 카이저가족재단의 래리 레빗 부회장은 “보험사들은 연방정부보다 비싼 가격에 백신 계약을 체결할 것이고 보험료가 인상될 가능성이 크다”며 “이로 인해 미국의 부스터샷(추가접종)과 개량형 백신 접종률이 다른 국가보다 뒤처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료화 전환이 이미 수백억 달러 규모의 기록적 매출을 기록한 제약사들의 배만 더 불리게 될 거란 비판도 나온다. WSJ에 따르면 백신 접종이 활발하게 이뤄지던 지난해 화이자와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매출은 790억 달러에 달했다. WSJ은 “정부의 유료화 전환 방침은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의 가격 및 공급에 대한 통제권을 제약사 등 의료 산업계로 넘기겠다는 의도”라며 “이로 인해 화이자와 모더나 등이 수십억 달러의 추가 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