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전체에서 광범위하고 대담한 불법 행위가 이뤄졌다는 의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 중 한명으로 꼽히는 앨런 와이셀버그 트럼프그룹 전 최고재무책임자(CFO)가 18일 세금 사기 혐의 등을 모두 시인했다. 외신은 와이셀버그가 유죄를 인정함에 따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연루된 수많은 법적 문제들이 더욱 꼬이게 됐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워싱턴포스트(WP)·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이날 와이셀버그는 뉴욕시 맨해튼 법정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해 자신에게 적용된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가족기업에서 중역으로 일하면서 세금 사기 등 15건의 중범죄를 저질렀다는 게 골자다.
유죄 판결시 와이셀버그에게는 최대 15년 징역형과 200만 달러의 벌금 부과가 가능하다. 하지만 검찰과의 플리 바겐(유죄 인정 조건부 감형 협상)에 따라 본인의 기소 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트럼프 일가의 회사가 직접 연루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다는 조건으로 형량을 최대 5개월, 최소 100일로 줄였다.
와이셀버그는 1973년부터 50년간 트럼프 가족기업에서 일했고, 트럼프 일가를 제외하면 가족기업 업무를 가장 깊이 알고 있는 핵심 측근이다. 와이셀버그의 전 며느리는 “트럼프 일가와 와이셀버그는 배트맨(주력)과 로빈(조력)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날 검찰은 와이셀버그가 회사로부터 메르세데스 벤츠 차량, 맨해튼 소재 고급 주택가의 아파트, 손주들을 위한 사립학교 등록금, 새 가구 등 176만 달러 상당의 특혜를 15년간 제공받고도 이를 은폐하고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사실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또 트럼프 전 대통령의 회사는 와이셀버그뿐 아니라 고위 간부 여러 명에게 이같은 비과세 부가 혜택을 제공했다면서, “결국 회사 전체에서 광범위하고 대담한 불법 행위가 이뤄졌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NYT는 와이셀버그의 유죄 인정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직접 연루된 민사소송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뉴욕주 검찰은 트럼프 일가가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부동산 가치를 축소하면서도 은행 대출을 받는 과정에선 자산 가치를 부풀렸다는 혐의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탈세 혐의를 받고 있는 트럼프의 전 CFO 앨런 하워드 와이셀버그가 출석한 뉴욕주 법원 앞에 시위대가 모였다. 로이터
해당 수사를 맡은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검찰총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와이셀버그는 수년간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기 위해 법을 어겼고, 오늘로 그 부정행위가 끝났다”면서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공공의 이익을 훔치는 사람은 단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와이셀버그의 변호인은 성명을 통해 “75세의 고령, 악화된 건강 상태에서, 지난 수년간 그와 그의 가족이 겪어온 법적·개인적 악몽을 끝내기 위해 유죄를 인정하기로 했다”면서 “그의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트럼프 측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검찰의 수사에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그룹의 대변인은 “검찰이 우리를 표적으로 삼고 있지만, 잘못한 것이 없다는 단순한 이유로 유죄를 인정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이어 “이제 우리는 세금 관련 혐의로 법정에 설 날을 고대하고 있으며, 상당히 흥미롭게도 재판은 중간선거를 며칠 앞둔 10월 24일로 예정됐다”고 비꼬았다. 공화당 역시 “트럼프 회사의 행동은 부동산 사업의 일반적 관행이며, 결코 범죄가 아니다”면서 “정치적 마녀사냥”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가디언은 와이셀버그의 유죄 인정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둘러싼 법적 문제의 혼란을 가중시켰다고 분석했다. 2024년 대선 출마를 계획 중인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플로리다 자택인 마러라고를 압수수색 당한 뒤 문서보관법은 물론, 방첩법 등 여러 중대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지난 2020년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수사로 트럼프의 전 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가 특별 대배심에 출석해 증언했다. 오는 9월엔 지난해 1월6일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에 대한 미국 하원 위원회의 추가 청문회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