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 정계의 이번 여름의 뜨거운 감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대선 결과에 불복했고 이듬해 1월6일 지지자들을 의회 폭동으로 몰아갔고, 조지아 주 등 일부 지역 개표 조작에 관여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 본인은 물론 그의 핵심 측근들의 이름이 속속 수사와 관련해 언급되고 있다. 21일 뉴욕타임스(NYT)ㆍ워싱턴포스트(WP)가 모두 톱기사로 올린 인물은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이다.
그레이엄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그는 외교ㆍ안보 경험이 풍부하지 않았던 사업가 출신 대통령에게 멘토 역할을 해줬다. 급한 성정에 남의 말을 듣기 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는 트럼프가 조언을 구하는 몇 안 되는 측근이었다.
주한미군 철수와 관련해서도 트럼프에게 조언했다. 미국 베테랑 언론인 밥 우드워드의 저서 『공포』에 따르면 트럼프는 2017년 초, 주한미군 가족 소개(疏開) 명령을 트윗하려다 그레이엄의 제지로 그만뒀다고 한다. 주한미군 가족 소개령은 전쟁이 임박했을 정도로 긴장이 고조됐다는 신호탄과도 같다.
당시는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을 하는 등 긴장이 높아가던 때였다.
그레이엄은 트럼프의 전화를 받고 “(소개령을 내린다는 트윗을 올린다면) 한국의 주식시장과 일본 경제를 뒤흔드는 일”이라며 “전쟁을 할 준비가 돼있는 게 아니라면 시작조차 해선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트럼프는 그레이엄의 말을 따랐다. 하루에 최소 10건의 트윗을 올리던 트럼프로서는 참기 어려운 유혹이었을 터다. 그레이엄 의원은 그러나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선 “주한미군을 유지하기를 나는 원하지만, 철수 여부는 대통령이 결정할 일”이라며 그의 면을 세워줬다.
대북 및 대중 강경파인 그는 한국인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사실 확인이 필요하긴 하지만 우드워드의 저서에 따르면 그는 트럼프에게 대북 강경책의 필요성을 설파하면서 “(북한에 대해 강하게 나간다면) 한국엔 폭탄이 떨어져 몇백만명이 죽을 수 있겠지만 한국에서 한국인들이 죽는 것이지 미국인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랬던 그레이엄이 이제 트럼프와의 인연으로 인해 법정에 서야할 처지가 됐다. 그러나 그의 의원 자격 등으로 인해 연방 항소법원이 20일, 증언 심문 중지를 결정했다.
NYT와 WP는 일제히 “그레이엄이 연방 의원으로 갖는 지위를 감안할 때, 그가 증언 과정에서 받게될 일부 질문에 답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WP는 “그레이엄의 변호인들은 그가 만약 출석을 하게 된다고 해도 참고인 신분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와의 은근한 선긋기로도 풀이될 수 있는 언급이다.
그는 여전히 외교 무대에서 논쟁적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지난 4월엔 동료 상원의원들과 함께 대만을 전격 방문해 중국의 속을 긁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이달 3일 대만을 방문하기 이전이다. 그레이엄과 동행한 로버트 메넨데즈 민주당 소속 상원 외교위원장은 대만을 “국가(country)”라고 칭하기도 했다.
전수진(chun.s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