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북서쪽 끝 테네시 접경지
산 좋고 계곡 깊은 ‘리틀 스모키’
체로키·헴락 폭포도 안보면 후회
#. 문제는 위치다. 부동산 가치는 첫째도 로케이션, 둘째도 로케이션이라고 한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전국구 명성을 가질 정도의 명소라면 어디에 있든 상관없다. 오지 말라고 해도 알아서들 찾아갈 거니까.
그 정도가 아니라면 위치 때문에 아까운 곳이 있다. 클라우드랜드캐년이 그런 곳이다. 조금만 더 애틀랜타에 가까웠다면 조지아 최고 명소가 되고도 남았을 풍광을 갖고 있어서다.
클라우드랜드캐년은 조지아 북서쪽 끝 데이드카운티(Dade County)에 있는 주립공원이다. 유명한 락시티 가든이 위치한 룩아웃 마운틴 서쪽 끝자락이기도 하다.
공원에서 30분만 북쪽으로 올라가면 테네시주 채터누가다. 서쪽으로는 10여분만 달리면 앨라배마 땅이다. 1939년 공원 입구를 지나는 GA-136번 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테네시나 앨라배마 쪽에서 들어가야 했다.
새로 난 길 덕분에 대공황 끝 무렵인 1939년 주립공원이 됐다. 지금은 애틀랜타에서도 2시간이면 갈 수 있다. 한인 밀집지역인 둘루스에선 약 130마일, 2시간 30분쯤 걸린다.
클라우드랜드캐년은 조지아 북서쪽 끝에 위치한 주립공원이다. 바위와 계곡이 어우러진 명소다.
클라우드랜드캐년은 사암 절벽이 아득히 이어진 수직 골짜기다. 자연 동굴과 폭포, 울창한 삼림이 어우러져 있어 조지아 주립공원 중 산세가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면적은 3538에이커에 이르고 계곡 깊은 곳은 1000피트(약 305m)나 된다. 다른 주립공원들처럼 캠핑, 디스크 골프, 승마, 낚시를 즐길 수 있고 걷기 좋은 하이킹 트레일도 많다.
#. 좋다는 소문 듣고 주말 클라우드랜드캐년을 찾아가 걸었다. 두 시간 넘게 차를 운전해 갔지만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메인 전망대에 들어선 순간부터 탄성을 질렀다. 전에 갔던 탈룰라 협곡과 언뜻 비슷했지만, 시야를 넓혀보니 훨씬 깊고 웅장했다. 멀리 북쪽으로 너울너울 뻗어나간 애팔래치안 산맥도 가슴 벅찼다.
언뜻 보면 영락없는 조지아판 그랜드 캐년이다. 하지만 조지아주에서 그랜드 캐년이란 별명은 콜럼버스 인근 프로비던스캐년이 먼저 차지해 버렸다. 그렇다고 이렇게 풍광 좋은 곳을 그냥 두었을 리 없다. 아니나 다를까 여긴 여기대로 다른 멋진 별명이 있다. ‘리틀 스모키’.
미국 동부 최고의 명산이자 단풍으로 유명한 스모키 마운틴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장엄한 산세도 그렇고 무성한 활엽수도 그렇고, 늦가을 단풍철이면 스모키 산자락 어떤 멋진 곳에 견줘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공원 입구
방문자센터 내부. 티셔츠나 마그네틱 등 기념품을 판다.
이곳 방문자들이 주로 걷는 하이킹 코스는 오버룩 트레일(Overlook Trail)과 웨스트 림 루프 트레일(West Rim Loop Trail), 워터폴스 트레일(Waterfalls Trail) 세 개다. 나는 오버룩 트레일을 가볍게 조망한 뒤, 계곡 건너 웨스트 림 루프 트레일을 3시간 정도 걸었다. 돌아오는 길에 폭포를 보기 위해 한 시간을 더 걸었다.
오버룩 트레일은 이름 그대로 계곡 전망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코스다. 주차장에서 시작해 왕복 1마일, 누구나 가볍게 산책 삼아 다녀올 수 있다. 전망대 바로 아래는 오금 저리는 수직 절벽이다. 양쪽 절벽 사이 계곡은 무성한 숲으로 그 끝이 보이지 않고, 그 아래로는 두 개의 큰 물줄기가 흘러 만난다. 베어 크리크와 대니얼 크리크다.
오버룩 트레일 전망대에서 바라본 클라우드랜드캐년.
웨스트 림 루프 트레일은 클라우드랜드캐년에 다녀왔다는 말을 하려면 반드시 걸어야 할 코스다. 왕복 5마일. 하이킹 잡지 백패커매거진(Backpacker Magazine) 선정 미국 최고 하이킹 코스 톱10에 들었을 정도로 전망과 경치가 좋다.
웨스트 림으로 건너가는 길엔 이런 다리도 건넌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계곡을 건너기 위해 내려갔다 올라가는 초입 일부 외에는 대체로 평탄해 걷기에 부담스럽지도 않다. 보통은 3시간, 사진도 찍고 바위에 앉아 쉬기도 하면서 여유롭게 걸으면 30~40분 더하면 된다.
웨스트 림으로 올라가는 길에 만난 자연동굴.
등산로에서 루프(loop)는 올가미 모양의 둥근 코스를 뜻한다. 어느 쪽으로 가도 한 바퀴 돌아 처음 자리로 돌아온다는 말이다. 지도를 살피면 왼쪽은 밋밋한 숲길이 먼저, 오른쪽은 계곡 가장자리부터 돌게 되어 있다.
나는 루프 초입에서 잠시 망설이다 왼쪽을 택했다. 예상대로 처음은 숲과 땅만 보고 걸었다. 대신 돌아올 땐 숨 막히는 경치에 연신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오른쪽을 선택했더라면 처음에는 좋았겠지만 돌아올 때가 지루했을 것이다.
깎아지른 절벽 바위 위로 이어진 웨스트 림 루프 트레일.
워터폴스 트레일은 폭포 두 곳을 찾아 가는 길이다. 왕복 1.5마일, 1시간이면 두 폭포 모두 다녀올 수 있다. 트레일은 웨스트 림 루프 트레일 초입에서 시작된다.
폭포로 가는 길. 왼쪽은 체로키 폭포, 오른쪽은 헴락폭포다.
체로키폭포(Cherokee Falls)가 조금 더 가깝고 헴락폭포(Hemlock Falls)는 조금 더 멀다. 계곡이 깊어 600개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폭포 물줄기는 강우량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비가 많은 겨울부터 이른 봄철이 더 볼만하다고 한다.
워터폴스트레일의 가파른 계단.
#. 웨스트 림 트레일 하이킹을 끝내고 폭포로 향할 때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굵은 소나기였다. 배낭에 챙겨 넣은 접이식 우산이 요긴했지만 겨우 머리와 윗몸만 가릴 뿐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등산객들이 갑자기 쏟아진 비를 피해 큰 바위 아래서 쉬고 있다.
우중(雨中)의 체로키폭포는 운치가 더했다. 60피트(18m) 둥그런 암벽 아래로 떨어지는 물의 낙하가 장관이었다. 빗물인지 폭포 물인지, 쉴 새 없이 얼굴로 물방울이 날아들었다.
비류직하 삼천척, 의시은하낙구천(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 날리며 떨어지는 물줄기 삼천 척에 이르니, 마치 하늘 가득 은하수가 쏟아지는 것 같구나.
중국의 시선(詩仙) 이백이 여산폭포를 바라보며 읊었다는 시 구절이다. 과장 심한 시인이었지만 이곳에 와 보았더라도 필경 비슷한 시를 남겼을 것 같았다.
체로키폭포. 60피트 높이다.
발길을 돌려 헴락폭포까지 내쳐 둘러봤다. 전에 물맞이를 했던 모카신주립공원 인근 헴락폭포와 이름이 같은 곳이다. 높이는 90피트(27m). 체로키폭포보다 조금 더 높지만 가까이 못 가게 막아 놓아 전망대에서 봐야 했다.
헴락폭포. 높이가 90피트에 이른다.
비는 더욱 굵어졌다. 홀딱 젖은 두 젊은이가 세찬 비를 맞으며 고행하는 수도승처럼 앉아 있었다. 나도 그 옆에 서서 한참을 넋 놓고 폭포만 바라보았다. 빗소리, 폭포 소리가 맹렬히 귓전을 두들겼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씻기고 머리가 맑아졌다. 참 좋았다. 이런 경험을 못 해 보고 그냥 갔더라면 어떡했을까 싶었다.
# 메모
애틀랜타에서 75번 고속도로를 타고 올라가다 리사카(Resaca) 부근 320번 출구에서 빠져 GA-136번 서쪽으로 45마일, 1시간 가량 가면 공원 입구가 나온다. 선착순 캠프사이트가 30개 있다. 숙박 취사가 가능한 산장(cottage)이나 유르트(Yirt)를 예약한다면 더 멋진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캠핑 장비가 모두 구비되어 있는 유르트(Yurt). 이 밖에도 몇 명씩 묵을 수 있는 산장(cottage)과 예약 없이 선착순 받는 캠프사이트도 30개 있다.
주소: 122 Cloudland Canyon Park Rd., Rising Fawn, GA 30738 (Dade County). 입장료는 차 한 대당 5달러.
글·사진=이종호 애틀랜타중앙일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