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스엔 한국의 맛, 서비스엔 한국의 정 녹여
“하고 싶은 일을 성실히, 정직하게 해왔을 뿐”
‘아메리칸 델리’ 설립자인 김정춘 회장(79)은 어린 시절 매우 가난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청년시절 베트남으로 떠나 비즈니스를 하기도 하고 1979년 미국으로 건너와 다양한 잡(job)을 거쳤다.
미국에 온 뒤 시애틀에서 식품가게, 구두가게를 열었고 뉴욕에서는 델리가게를 운영했다. 그러다 미국 생활 10년만인 1989년 애틀랜타로 이주해 사우스 디캡 몰에 있는 ‘치킨 윙’ 가게를 인수했다. 이 곳은 전국 ‘베스트 윙’ 가게로 선정되었고, 미 전역에 220개 매장을 갖춘 ‘아메리칸 델리’의 첫 시작이었다.
김 회장은 지난 25일 애틀랜타의 ‘아메리칸델리’ 본사에서 기자에게 자신의 성공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김 회장과 그의 아내 노현숙 여사와 인터뷰를 가진 뒤 본사 내부를 둘러봤다.
아메리칸델리 본사 매장
김 회장이 첫 윙가게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요인은 ‘성실함’이었지만 운도 따랐다. 1980~90년대 당시 사우스 디캡 몰에는 고객들이 많이 몰렸다.
아메리칸 델리는 신선한 닭날개를 바삭하게 튀겼다. 닭고기 속은 쫄깃하고 튀김은 바삭해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튀김에 쓰는 기름도 품질 좋은 것으로 수시로 바꿨다.
김 회장과 노 여사는 맛을 연구하면서 BBQ, 마늘 파마산, 달콤한 칠리소스, 레몬 페퍼 웨트소스 등 아메리칸 델리 특유의 소스들을 개발할 수 있었다. 소스에 한국적인 맛도 가미했다. 노 여사는 공장 곳곳을 보여주면서 소스에 고추장을 쓰기도 하고, 밀을 ‘막걸리’ 방식으로 제조해 넣는다고 설명했다.
아메리칸델리 본사에서 직원들이 소스를 만들고 있다.
고객 서비스에도 한국인 특유의 ‘정’을 녹였다. 가게를 찾은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과자와 감자튀김을 서비스로 주기도 했고, 형편이 어려운 손님에겐 싼 가격에 음식을 내주기도 했다.
그러나 성공의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첫 가게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때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카페를 열었으나 처참하게 실패했다. 김 회장은 사업 확장의 꿈을 접을 뻔도 했지만 노 여사의 응원과 모아둔 자금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김 회장은 첫 가게를 성공시킨 노하우로 프렌차이즈를 하나 둘 씩 늘려 갈 수 있었다. 맛과 서비스를 겸비한 현재의 ‘아메리칸 델리’로 확장을 거듭했다. 특히 아메리칸 델리 고객 대부분은 흑인이라는 점을 중시해 사업을 흑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남쪽으로 확장했다. I-20 고속도로와 I-285 고속도로 사이 곳곳에 프랜차이즈 지점이 들어섰다.
김 회장은 “하고 싶은 일을 했던 게 성공의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특별한 노하우는 없다”라며 “정직하고 성실하게 또 꾸준히 노력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아메리칸델리 가맹점에 판매하는 주방용품
김 회장의 모습은 지금도 소박하다. 본사 회장 사무실은 단촐했고, 부부가 작업복을 입고 프렌차이즈 매장에 보낼 소스와 재료를 직접 손질하고 있었다.
성공적인 프랜차이즈 창업주로 우뚝 선 김 회장은 지역사회에도 봉사하고 있다.
노숙자를 위한 봉사단체 미션아가페는 2년째 매주 400개의 샌드위치를 홈리스 쉘터에 제공하고 있는데 김 회장의 후원으로 가능했다.
아울러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도 매주 노숙자들에게 줄 수프를 만들고 나눠주는 데 앞장서고 있다.
아메리칸 델리는 미션아가페의 노숙자 샌드위치 사역을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미션아가페 제공]
글 사진 / 박재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