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들의 고민을 털어놓는 카카오톡 채팅방이나 페이스북 그룹방에 보면, 배우자의 언어폭력에 대해 고민하는 한인들이 종종 보인다. 배우자가 한인이건, 백인이나 흑인 등 타인종이건 구분이 없었다.
남편이 부인에게, 또는 부인이 남편에게 “당신은 살이 너무 쪘어. 살림은 제대로 하는거야”라는 조그만 말부터 시작해서 “내 말 안들으면 영주권 스폰서 안해줘”라는 은근한 협박, “넌 내가 없으면 미국에서 못살아” 등의 폭언을 하는 것이다.
배우자에게 생활비를 전혀 주지 않고 집안일에 신경쓰지 않고 사실상 방치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폭언이 물리적 폭력을 동반하지 않고 교묘하게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폭력이 없는 말만 갖고는 경찰이 출동하거나 사법 당국이 개입할 수가 없다. 필자가 로스쿨에 다닐 때도 형법 강의 내용 중 하나가 “부적절한 말이나 정신적 학대는 범죄가 아니다”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공공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의회는 2020년 가정폭력방지법가족법을 통과시키고, 강압적 지배를 가정폭력의 증거로 인정하기로 했다.
법률 전문가들에 따르면 강압적인 지배란 배우자를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조종하는 행위를 뜻한다. 예를 들어 배우자를 친구 및 친척으로부터 고립시키기,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빼앗기, 의사소통, 일상생활 및 경제적 지원을 통제하는 행위다.
뉴욕 시립대 존 제이 형사행정대학의 심리학자 치트라 라가반씨는 “강압적 지배의 핵심은 잔혹하고 강압적이며 사람을 조종하는 행위를 통한 힘의 불균형”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캘리포니아주 이외에도 하와이, 코네티컷 주가 강압적 지배 금지법을 통과시켰다.뉴욕, 사우스캐롤라이나, 메릴랜드 주의회에도 비슷한 법이 계류중이다.
산타클라라 로스쿨 겸임교수로 가정폭력에 대해 강의하는 줄리 사프렌 교수는 “여러 주에서 강압적 지배를 법률로 규정하려는 것은 법적으로 규제해야 할 정도로 그 피해가 심각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는 에밀리 세자르씨의 사례는 강압적 지배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그녀에 따르면 남편 트레버는 자신이 이 가족의 가장임을 강조하며, 그녀의 복장, 대화 상대, 식사량, 그녀의 행선지 모든 것을 통제하려 했다. 세자르 씨는 결국 민티 시우-쿠트니코프 변호사를 선임해 2021년 2월 임시 접근금지 명령 및 6살 아들의 양육권을 신청했다.
그는 남편이 얼마나 그녀를 반복해서 괴롭혔는지 증명하는 녹음자료와 서면 자료를 법원에 제출했다. 반면 남편 트레버측 변호인 매튜 J. 정은 “그날 트레버에게 대든 사람은 바로 에밀리였다. 에밀리야말로 아들에게 소리를 쳤다”라고 변호했다. 결국 콘베이 판사는 결정문에서 에밀리에게 전남편이 3년동안 접근하지 않도록 명령하는 한편, 에밀리에게만 아들 양육권을 주었다.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는 블랑카씨는 남편의 정신적 학대 때문에 20년간의 결혼생활을 끝내기로 결정했다. 남편은 블랑카 씨의 웨딩드레스를 찢고, 외모를 비하하고 스패니쉬 액센트가 섞인 영어를 비웃었다. 또한 정비소에서 제공하는 직장 의료보험에 블랑카 씨와 두 아들을 수혜자로 넣기를 거부했다. 블랑카 씨는 법원에서 “마치 내 자신이 아무 쓸모없고 추악한 존재처럼 여겨지면서 우울증에 빠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압적 지배법이 적용된다고 해도 배우자가 감옥에 가거나 처벌받는 것도 아니다. 이 법은 어디까지나 가족법 차원에서 민사로 다뤄진다. 이 법을 입안한 수잔 루비오 상원의원은 강압적 지배를 범죄화할 경우 법안이 통과되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고 지적한다.
워싱턴DC 인근 전국 여성법률센터에서 여성문화 및 정책활동가로 일하는 시왈리 파텔씨는 “강압적 폭력을 형사재판으로 범죄화하면 신고하기가 쉽지 않다”며 “반면 민사재판으로 대응할 경우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좀더 법적 과정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지아주의 경우 강압적 지배법이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 1980년대에는 남편의 언어폭력에 시달린 베트남인 여성이 남편을 살해한데 대해 조지아주 대법원이 중형을 내린 사례도 있다. 아직 논의 단계인 강압적 지배법이 조지아주에 도입될지 관심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