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상 살고 떠나면서 할아버지가 손주들에게 남길 수 있는 선물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책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자료를 정리하여 〈너의 시를 쓰라〉는 제목으로 전자출판하여 손주들에게 한 부씩 나눠 주었다.
세상을 살아가며 우뚝 선 사람들이 이야기 즉, 위인전기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며 평생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세상을 살아가며 우뚝 선 사람들이 있다. 화려한 성공 뒤에 그들이 겪어야 했던 험난한 인생역정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그 길에서 수많은 고초와 시련을 겪었으며,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닫기 위해 노력했다. 먼 훗날 우리가 인생을 돌아보며 우리 스스로에게 삶이 화려하지 않았어도 존재감이 있었다고 말한다면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세상에는 부와 명성을 가졌어도 사람의 마음을 사지 못한 사람이 많다. 그들은 결코 인생이란 길에 좋은 이름을 새기지 못했다. 명심하자. 오늘은 비록 내가 제대로 안 보이는 미미한 존재일지라도 나는 내 길을 갈 것이며, 내 길에 이름을 새길 것이라고.”
많은 심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세상의 수많은 일들이 성공은 설명되고, 실패는 기술된다”는 의견을 보인다. 성공사례들은 그 성공이 어떻게 가능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들로 각색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성공 스토리’라는 말이 들어간 제목의 프로그램과 책을 수없이 봐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위인전이다.
반면에 ‘실패 스토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실패 사례는 대부분 그때 어떤 상황이 있었고, 어떤 환경 혹은 불가항력적 요인이 그런 실패를 만들어냈는가와 같은 정황변수를 나열하는 것으로 대부분 마무리된다. 성공이 있는 그대로 기술되고 실패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는 경우들은 별로 없다.
성공이나 좋은 결과를 가뒀을 때 사람들은 그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 두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실패를 하면 그 이유를 외부 요인에 두기 십상이다. 쉽게 말하자면 ‘잘 되면 내 덕분’, ‘잘못하면 남 탓’이다.
물론 이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로 인해 그 다음의 말과 행동이 설명과 기술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이 문제다, 이것이 바로 꼰대와 위인전의 공통점이다. 이런 책을 만나면 사실 배울 것이 별로 없다.
첫째로 자기 이야기만 하니 성공에 어떤 시대적 변수와 상황 요인이 작용했는지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 더욱 중요한 건 둘째다. 실패에 대한 자신의 책임과 원인을 말하지 않으니 어떻게 자기단련을 해야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지 교훈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잘’ 그리고 ‘좋은 방향으로’ 위인전을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태어나서 부모에게 버림을 받은 사생아였으며, 다른 가족에게 입양되었다. 그는 대학교도 중퇴를 하고 자신의 친구들과 창업을 하였다. 그의 사업방식은 대단히 독선적이었다. 타인과의 소통이나 교류에 관심이 없었으며 자신의 독특한 주장을 철저하게 고집했다. 그는 자신에게 맞추는 사람들과만 일을 했다. 이 정도의 사람이라면, 과연 좋은 리더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다. 그가 세상의 변화를 주도했으며, IT업계의 미친 비견할 수 없는 업적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업무파트너나 리더로서는 다른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아마도 현재라면 그는 어떠했을까. 그는 1955년생이었으며 현재 생존하고 있었다면 67세 정도의 나이였을 것이다. 그가 한참 활동할 시기에는 구성원에 대한 존중이나 감정적 배려는 가당치도 않던 시기였다. 그러나 사람관리자로서의 리더라는 정의에 기초해 보면 훌륭한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이렇듯 위인전이라는 것은 한 사람에 대한 성공-중심적인 편향된 정보일 뿐인 것이며, 그에게만 맞는 얘기이지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편적으로 적용되기는 어려운 얘기들이 많다. 만약 당신의 리더나 주변 사람이 스티브 잡스처럼 행동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응하겠는가. 위인의 자질이 있는 훌륭한 잠재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상대도 안 하겠는가.
그래서 위인전은 결과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편향된 우상화라고 하는 것이다. 위인 중의 위인은 당연히 에디슨이다. 에디슨의 위인전은 그 어머니의 훌륭한 교육방식으로도 더욱 그 가치를 더한다. 꼭 학교 교육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건강한 문제의식을 자극하기도 하며, 누구나 개인에게 최적화된 교육이나 노력을 통해 성공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학교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녀를 보면서도 희망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릴 적 플루타코스 영웅전에서 만난 알렉산더 대왕은 흠잡을 데 없는 영웅이었다. 성인이 되어 읽은 알렉산더는 사뭇 달랐다. 동방원정길에서 자주 취했고, 직언하는 장군을 술김에 살해했다. 부왕을 시해한 패륜 의혹도 받고 있다.
이렇듯 위인전은 특성상 인물의 장점만 강조하기 십상이다. 그러다가 자주 왜곡의 함정에 빠진다. 부풀려졌던 위인전이 퇴출당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탐험가 로버트 피어리는 북극 탐험 기록이 훗날 허위로 밝혀지고 이누이트족 여아를 임신시킨 사실이 드러나 위인전 시장에서 사라졌다. 고환암을 이긴 랜스 암스트롱은 약물을 복용했다는 사실이 들통난 뒤 자서전을 읽은 독자들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김원웅 전 광복회장 재임시절 광복회가 〈독립운동가 100인 만화위인전〉을 만들었다. 위인전 목록에 김 전 회장 모친 전월선 여사가 포함된 사실이 드러났다. 분량이 430쪽으로 김구(290쪽)보다 두껍고, 김 전 회장이 태어나는 장면도 포함돼 있어 “대놓고 집안 미화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이 만화 시리즈에는 김원봉도 포함돼 있다.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하고 6.25 때 인민군으로 대한민국을 없애려 했던 인물이다. 정작 초대 대통령이자 건국 대통령이니 이승만을 제외했다. 애국가를 만든 인익태도,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해낸 백선엽 장군도 없다. 아이들에게 읽히고 싶은 인물이 빠진 자리를 우리 청소년이 본받아서는 안 될 인물이 차지했다. 위인전의 타락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이 어떤 위인전을 읽는지 감시라도 해야 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