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 아이들이 성장하여 수녀원에 들어가겠다고 나서면 나는 어떻게 받아들이나? 아주 오래전에 한 생각이었다. 믿음이 약하고 이기적이었던 그때 나는 그런 생각은 상상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후 아이들을 성장시켜 세상에 내 보내놓고 내 생각은 조금 달라졌다. 무엇엔가 헌신하는 삶의 가치를 느낄 때였다.
아들을 신학대학에 보낸 지인들이 존경스러웠다. 그녀들과 대화하면 나도 은혜를 받는듯 행복했다. 한 지인의 아들이 오랜 교육을 끝내고 사제로 서품을 받았을 적에는 아들의 선택을 후원한 부모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리고 교육 중에 신학교를 탈퇴한 아들을 가진 친구의 당혹함을 본 것은 마음 아픈 일이었다. 그렇게 사제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하느님이 선택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굳혔다.
내가 가톨릭 신자가 되는 것을 도운 아일랜드 출신 필립 맥키나 신부님은 이민 1세다. 오래전 아일랜드를 떠나서 남미 볼리비아에서 25년 봉사하시고 미국으로 오셨다. 그분이 몽고메리 근교 프랫빌에 있는 성당에 봉직하실 적에 그분을 찾아가서 나의 첫 고해성사를 봤다.
가톨릭에 정식으로 입문하기 전에 꼭 거쳐야하는 고해성사를 내가 다니는 성당의 낯익은 신부님이 아닌 낯선 교회의 낯선 신부님을 선택한 것은 내 속을 들어내는 것이 부끄러워서 였다.
그때 맥키나 신부님의 방을 찾아서 그분과 책상을 사이에 두고 나의 과거 죄목들을 일일이 열거하며 사죄를 구했을 적에 그분은 나를 편안하게 받아주셨다. 어떤 죄도 놀라지 않으셨다. 그분은 지나간 세월보다 앞으로 다가오는 세월에 나를 세우셨다. 그것이 우리의 인연 첫 단추였다. 그리고 몇 년 후에 그분이 내가 다니는 성당으로 부임받아 오셨다. 나를 기억하지 못하셨지만 나는 평생 그분을 잊지 못하는데 같은 성당에서 자주 뵙게 되어서 좋았다.
특히 내가 아일랜드를 좋아하고 켈틱노래를 좋아하니 아일랜드 출신 신부님께 친근감이 갔다. 그리고 아일랜드 여행중에 신부님의 고향에서 그분이 다니셨던 신학교를 방문했다. 사제 지망생들이 없어서 폐쇄된 신학교의 썰렁하던 건물과 정원을 돌면서 나는 맥키나 신부님의 젊은 세월을 상상했다.
지난 13년, 그분이 집전하시는 미사를 보고 그리고 그분의 축복을 받은 것은 기쁨이었다. 특히 어머니날 주말에 맥키나 신부님이 아일랜드 자장가를 부르시고 강론을 시작하시면 나는 아일랜드의 푸른 들판에 흩어진 하얀 양떼들 사이에 선 신부님을 봤다.
신부님은 해마다 여름이면 아일랜드로 가족들을 만나러 가셨고 돌아오시면 아일랜드의 바람을 가져다 주셨다. 항암치료를 받으시면서도 고향을 찾으시던 신부님이 몇 년 전부터 아일랜드 방문을 그만두셨다. 고국에 살던 형제자매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고 나니 고향을 찾는 것이 힘든다고 하셨다. 그때부터 신부님의 어깨가 허전하고 걸음걸이가 위태로웠다. 특히 코비드 팬데믹으로 사람과의 거리감을 두었을 적에는 그저 멀리서 인사만 했다.
지난 6월 초 미사를 보고 성전을 나서다가 한쪽 가려진 공간의 의자에 앉아계신 신부님을 봤다. 인사하고 싶었지만 그분의 고요를 방해하고 싶지 앉아서 집으로 왔다. 그리고 그 다음주 미사를 보러 가서 맥키나 신부님이 코비드19과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인사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병원 방문을 못하니 기도만 하다가 신부님이 퇴원하셨다는 소식에 감사했다. 그리고 그분이 방문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을 기다리다가 모빌에 있는 수녀님들이 운영하시는 양로원으로 떠나셨다는 뉴스를 들었다.
신부님은 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내셨다. 성직자로서 “What can I do for them?” 자세로 헌신한 자신의 삶이 의미 있었음을 알려주셨다. 신부님을 돌보고 계시는 엘렌 수녀님과 연락해서 근황을 듣고 모빌로 갔다.
그동안 많이 변하신 신부님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마른 잎 같이 허약한 신부님의 연초록 눈동자에 순간순간 빛이 발했다.
무엇인가 말씀을 하시려고 애써도 제대로 되지 않아 힘들어 하셨지만 “I know you” 그리고 “You are special” 분명히 말씀하시고 신부님의 묵주를 나에게 주셨다.
강인한 의지로 버티시면서 사제의 사랑을 주신 신부님께 나는 작별인사를 드리고 평화를 빌었다. 이제 당신의 소명 의식을 충실히 실행하신 80대 중반인 맥키나 신부님은 하느님의 부름을 기다리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