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루이스의 변호사 로건 와고너(36)는 지난 봄에 냉장고를 하나 더 장만했다. 1주일에 200달러가 드는 식료품비를 절약하기 위해 고기를 한꺼번에 싸게 사 냉동칸에 쟁여두려는 목적이었다.
그는 “아이들이 고기를 좋아하는 데다 가격이 너무 올랐다”며 이런 자구책을 마련했다. 이렇게 냉동칸에 ‘소 반 마리와 돼지 한 마리’를 채우는데 냉장고 가격을 포함해 2000달러가 들었지만, 1주일 식료품비를 125달러로 줄일 수 있게 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에서 육류를 비롯한 식료품비가 급등하며 고기를 덩어리째 사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지난달 27일 보도했다. 인플레이션과 함께 코로나19 기간 동안 겪은 공급 부족이 만든 새 풍속도다. 소비자들은 이제 소매점을 거치지 않고 산지와 직거래를 시도하고 있다.
몬태나 남동부의 소 목장주이자 미 육우생산자협회(USCA) 수석 고문인 제스 피터슨은 “정육점 소매가가 점점 오르면서 소비자들의 관심이 확실히 높아졌다”며 “우리의 가격은 여전히 소매점보다 저렴하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포트 비드웰의 목장주 다나 캐리는 “목장과 직접 거래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고기의 원산지에 대한 관심보다 가격을 더 걱정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글린 톤서 캔자스주립대 농경제학과 교수는 “많은 미국인이 식비 관련 부담을 느끼고 있으며, 고기를 사는 방법을 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덜 사거나 돼지갈비 대신 햄과 같은 저렴한 가공육을 사는 식이다. 이런 가운데 와고너처럼 통째로 사는 극단적인 방법도 생겨났다. 톤서 교수는 “아직 많지는 않지만, 농장에서 직접 고기를 사는 미국인의 수는 팬데믹 전보다 늘었다”고 했다.
고용통계국 데이터에 따르면 최근 미국의 육류·가금류 가격은 지난해보다 11% 올랐다. 특히 베이컨은 12%, 닭고기는 18% 올랐다. 지난 6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9.1%로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선진국 가운데 물가상승률이 가장 높은 영국은 ‘생활비 위기’가 일상이 됐다. 지난 7월 영국의 물가상승률이 10.5%까지 치솟은 가운데, 식료품비를 아까기 위해 육류를 포기하고 채식으로 돌아선 영국인들이 늘고 있다고 인디펜던트가 지난 1일 보도했다.
회계사인 마야 핀리(24)는 경제적인 이유로 채식을 택한 사람 중 한명이다. 그와 그의 파트너 잭 휴즈(28)는 올해 초 중부 도시 링컨으로 이사한 후 채식주의자가 됐다. 핀리는 “우리는 술을 제외한 일주일 식료품비를 각자 25파운드로 맞췄다”며 “음식값을 아끼기 위해 콩류를 대량으로 사고, 주로 야채와 과일을 산다”고 말했다. 형편이 나아지면 다시 고기를 선택할까. 핀리는 “절대 아니라고 할 순 없지만, 재정적인 관점에서 단기적으론 아니다. 또 지금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브래드퍼드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커스티 퍼거슨도 올해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반채식주의’를 택했다. 그는 12·14세 두 아들이 “더는 콩을 먹지 않으려 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리처드 맥웨인 영국 채식주의자협회 회장은 “여전히 동물 복지 등 전통적인 동기로 채식주의를 택하고 있지만, 평소 채식주의를 고려하지 않은 사람들이 최근 경제적인 이유로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서치기업 칸타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7월 영국의 소고기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7% 감소했다. 또 돼지고기는 10.6%, 닭고기는 9.7%, 양고기는 23.7%, 생선은 11.6% 감소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