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프로팀서 방출 때 좌절대신 동기부여 삼아…아메리칸 드림 이루었지만 끝 아닌 시작일 뿐…미국에서 큰 기회 주신 부모님 항상 고마워”
구글에 ‘풋볼 키커’를 검색하면 ‘구영회'(Young Hoe Koo)라는 이름이 같이 뜬다. 애틀랜타 팰컨스의 28세 한인 구영회 선수는 내셔널 풋볼리그(NFL)의 대표적인 키커이면서 검색 엔진에서까지 키커의 대명사로 자리매김 했다. 풋볼팬들에게는 한 경기에서 3번 연속 온사이드킥을 성공시킨 ‘온사이드킥 장인’으로 더 유명하다.
그는 영어 이름을 쓰지 않고 한국 이름 ‘구영회’로 뛰고 있다. 최근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도 한국말보다 영어가 더 편하다고 말하면서도 모든 질문에 한국말로 대답했다. 눈부신 성취에 대한 소감을 밝힐 때도 “팀원들이 잘 해줬고 운이 따라줘서 성공할 수 있었다”며 시종일관 ‘한국인 특유의’ 겸손한 표정을 지었다.
구영회 선수는 서울에서 태어나 상봉동 중화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뉴저지로 이민했다. 중학교부터 미국에서 다니기 시작했지만 그 때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언어 때문에 엄청 힘들었습니다. 영어를 하나도 못해서 ESL반에 2년을 있었다”며 “첫 1년 동안은 한국 학생이 내 수업에 들어와 수업 내용을 다 번역해줬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스포츠팀에 들어가 친구들을 사귀면서 영어가 빠르게 늘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한국에서의 축구 경험을 살려 7학년 때부터 풋볼을 시작했다. 중학교 풋볼 코치는 그를 보고 “킥을 잘하니까 풋볼로 대학도 갈 수 있다”고 조언하며 키커의 꿈을 키워주었다. 구 선수는 “그때 나는 규칙도 모르고 그냥 운동하면서 놀았지만 지금은 나를 알아봐 준 코치에게 감사하다”고 회상했다.
그는 2017년 로스앤젤레스 차저스로 프로리그에 발을 들여놓았다. 고등학교에 이어 조지아 서던대학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차저스에서도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부진을 면치 못해 한 달 만에 방출당했다. 좌절한 그는 취업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풋볼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고 다짐하며 2019년 애틀랜타 팰컨스로 옮겼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것은 ‘고집’ 덕분이다. 전에는 고집 센 것이 단점이라고 생각했지만, 훈련하면서 마음을 강하게 다잡을 수 있었다. 특히 LA 차저스에서 잘렸을 때 흔들리지 않고 내 갈 길을 가자고 마음을 굳게 먹었고,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때의 경험을 “단순히 좌절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동기부여로 삼았다”고 한다. “다시는 그렇게 되기 싫다”라는 생각에 열심히 노력했다.
그의 또 다른 동기부여는 부모님이다. 자신을 위해 미국에 와 큰 기회를 주신 것에 항상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
구영회 선수의 포지션은 ‘키커’다. 미식축구에서 키커 혹은 플레이스키커(placekicker)는 말 그대로 공을 차는 선수로, 특수한 포지션 중 하나다.
흔히 미식축구를 ‘공을 들고 뛰는 스포츠’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키커들은 공중에 보이는 골 포스트 안으로 공을 차 넣어야 한다.
키커는 공격의 마무리를 맡는 만큼 팀 득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키커는 터치다운 후 보너스킥을 하거나 터치다운이 힘들다고 판단되면 필드골을 시도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강한 정신력과 빠른 판단력으로, 상대 팀 선수들이 달려들어 공을 막기 전에 득점을 올려야 한다. 하지만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선수들이 많은 프로풋볼 무대에서 키커의 몸값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그럼에도 구 선수는 올해 초 애틀랜타 팰컨스와 5년 2천425만 달러 규모의 재계약을 체결하며 대박을 터뜨렸다. 평균 연봉 485만 달러로, 리그 전체 키커 포지션 중 3위다.
그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이건 끝이 아닌 시작일 뿐”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현재 애틀랜타에서 거주하고 있는 구 선수는 계약 체결 후 아파트에서 나와 살 집을 제일 먼저 구했다고 말했다. 한식을 좋아해 일주일에 한 번씩은 고깃집을 가며, 집에서 요리할 때는 한국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해 물어본다. “얼마 전에는 잔치국수 레시피를 어머니께 받아 해먹었다”고 말했다.
구 선수는 현재 NFL에서 뛰는 선수 중 유일하게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선수다. 그는 어린 선수들이 자신을 보고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불편하고 힘든 상황이 오더라도 무조건 도전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자신의 어린이 팬들을 위한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애틀랜타 팰컨스는 지난 11일 뉴올리언스 세인츠와의 경기로 시즌을 시작했다. 구 선수는 “시즌마다 목표는 전 시즌보다 잘하는 것”이라며 “이번에는 한 골도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포부를 전했다.
팰컨스는 오는 18일 LA 램스와 시즌 두번째 경기를 펼친다.
윤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