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들 똘똘 뭉쳐 종잣돈 모으고 불려
“살기 좋고 인정 넘쳐” 지역사랑도 한마음
# 세계 곳곳에 한인 없는 곳이 없다. 공통점이 있다. 다들 부지런하고 억척같아 어디서나 굳건히 뿌리를 내린다는 것이다. 함께 모이고, 정을 나누고, 지역사회 섬김 봉사에 열심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중심에 한인회가 있고 한인회관은 또 그런 활동의 중심이었다.
한인회관 마련 스토리를 들어보면 어디에나 뭉클함이 있다. 누군가가 처음 깃발을 들었고, 거기에 다른 누군가가 힘을 보태고, 다음엔 지역 한인 모두가 십시일반 정성을 모았기 때문이다. 조지아주 어거스타도 다르지 않았다.
지난 6월 어거스타 한인들이 한인회관을 마련했다는 보도를 본 이후 한 번은 가보고 싶었다. 같은 조지아지만 애틀랜타와는 또 다른 한인들 살아가는 모습도 궁금했다. 애틀랜타에서 2시간 반 거리, 지난 주말 마침내 어거스타로 달려갔다.
가기 전 어거스타한인회 장영진 회장과는 미리 약속을 해 두었다. 주말 세찬 비를 뚫고 찾아간 새 한인회관, 약속 장소엔 뜻밖에도 장영진 회장 외에 한인회관 구입 주역들도 함께 나와 있었다. 이용근 한인회 이사장, 김찬곤 첫 건축위원회 감사, 이순환 7대 한인회장, 김기환 14, 15대 한인회장(현 건축위원장), 송형섭 17대 회장, 임용섭 18대 회장이었다.
새로 구입한 회관은 한창 내부 리모델링 공사 중이었다. 그들과 함께 회관 안팎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20년 전 첫 건축위 출범부터 모금 과정, 회관 부지를 사고 팔았던 이야기, 그리고 최종 건물 매입까지의 과정도 들었다.
어거스타 새 한인회관 전경. 딘스브리지로드에 있는 단독 건물이다. [송형섭 전회장 제공]
이야기가 길어져 5분여 거리에 있는 한인회 사무실 겸 봉사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기다란 상가의 한 공간을 임대해 쓰고 있다고 했다. 입구 유리창에 큼지막하게 내걸린 ‘어거스타 문화봉사센터’라는 한글 붓글씨가 인상적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뜻밖의 장면이 펼쳐졌다. 노인회 어르신들을 위한 추석 경로잔치가 한창이었다. 올해 7월 창립된 어거스타 호남향우회(회장 양해솔)가 주최하는 행사였다. 양해솔 회장은 간호사(RN) 출신으로 애틀랜타 에모리대학 암 병동에서 디렉터로 근무했다고 했다. 여러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김승환 한인회 사무총장과 최은숙 부회장이 바쁜 일손을 거들고 있었다.
어거스타호남향우회가 마련한 추석 경로잔치.
봉사자가 건네준 음식 접시를 받아들고 한쪽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음식이 깔끔하고 맛있었다. 어거스타에도 한인 식당이 4곳이나 있어 한인들 모임이나 행사 음식 준비에는 큰 불편이 없다고 했다.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장영진 회장과 김기환 건축위원장이 한인회와 회관 건립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순환 전 회장과 김찬곤 전 감사도 한인사회 초창기 만남 이야기로 좌중을 추억에 젖게 했다.
어거스타 동네 자랑은 모두가 한마음이었다. 송형섭 전 회장은 나중에 한인회관 관련 사진을 따로 보내줬다. 이날 만난 분들과의 대화를 하나로 묶어 문답식으로 정리해 보았다.
-어거스타는 어떤 곳인가요?
“사실상 조지아 제2의 도시입니다. 센서스 인구수는 콜럼버스에 조금 못 미치지만 경제 규모나 대외 인지도 등으로 보면 애틀랜타 다음이 어거스타입니다. 매년 PGA 매스터스 골프대회가 열리는 곳이라 골프팬은 물론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포트 고든(Fort. Gordon)같은 군부대가 있고 사바나 리버 사이트(Savannah River Site)라는 원자력발전소도 있습니다. 종합병원 5개에 조지아 주립 의과대학 등 대학도 많지요. 그만큼 일자리도 많은 곳입니다. 여긴 불황을 모르는 동네라고 보면 됩니다.”
어거스타 자랑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럴 만도 했다. US 뉴스&월드 리포트가 지난 5월 조사 발표한, 살기 좋은 도시 순위에서 어거스타는 애틀랜타와 사바나를 제치고 조지아 1위에 올랐다. 전국 150개 메트로 도시의 최근 고용 환경, 집값, 삶의 질 등을 종합 평가해 분석한 결과다.
이에 따르면 어거스타는 전국 76위였지만 조지아주에서는 단연 1위였다. 2위는 애틀랜타(전국 95위)였고 사바나(전국 102위)는 3위를 차지했다. 은퇴하고 싶은 도시 조사 역시 조지아 1,2,3위가어거스타(전국 79위)-애틀랜타(전국 90위)-사바나(전국 102위) 순이었다.
어거스타는 영국 식민지 시대였던 1736년에 설립됐다. 도시 이름은 영국 국왕 조지 3세의 어머니이자 웨일스 왕자 프레더릭의 신부였던 어거스타 공주(1719~1772) 이름에서 유래했다. 인구 구성을 보면 인접한 리치먼드 카운티까지 합쳐 백인이 54.1%로 가장 많고, 흑인 34.8%, 히스패닉 6.4% 순이며 아시안은 약 1.9%로 나와 있다.
– 한인사회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센서스 인구는 2000명 선이지만 실제는 5000~6000명으로 추산합니다. 주유소, 리커 스토어, 편의점, 세탁소 등 다양한 자영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많고요, 군 부대와 조지아 보건과학대학, 조지아덴탈칼리지 등 학교에 관계된 사람도 꽤 있습니다. 한인 교회가 9곳이 있어서 신앙생활 하기도 편하죠. 갈 만한 한인 식당도 몇 곳 있고 작지만 한인 마켓도 있어요. 큰 장을 보기 위해 애틀랜타로 가기도 하지만 큰 불편 없이 살 수 있는 곳이 어거스타입니다.”
얘기대로 새 한인회관에서 봉사센터로 오는 길에 한글 간판의 한식당이 보였다. 봉사센터 바로 인근엔 작은 한인마켓도 있었고, 한인 교회도 연달아 두 곳이 보였다. 도심과는 조금 떨어진 이곳이 어거스타 한인사회 중심인 듯싶었다.
한인 마켓과 교회들
– 한인사회 분위기가 궁금합니다.
“30~40년 이상 살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다들 모두가 가족 같고 정이 넘치고 단합도 잘됩니다. 젊었을 때는 어거스타가 너무 시골이고 모든 것이 느리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다른 곳 가면 못살 것 같다는 분들이 많아요. 자식들 나가 있는 애틀랜타나 다른 큰 도시에 가보기도 하지만 결국 어거스타가 편하고 좋다며 돌아들 오니까요.”
이날 어르신들 초청 추석 잔치를 주최한 호남향우회 양해솔 회장도 비슷한 취지로 인사말을 했다. “오늘 행사는 호남향우회 주최지만 우린 모두 같은 대한민국 출신입니다. 모두가 동향이고 모두가 친구입니다.”
양해솔 어거스타 호남향우회장
– 한인회관 마련 이야기도 들어보겠습니다.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어거스타 한인회가 처음 만들어진 게 1980년입니다. 그때부터 한인들의 구심점이 될 공간이 있었으면 했겠죠. 그러다 2002년 3월에 처음으로 건축위원회가 출범했습니다. 당시 위원장은 최세낙, 부회장 김애희, 감사 김찬곤, 총무 지난희씨였습니다. 모두 뜨거운 마음으로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 지금 한인회관 마련의 종자돈은 그렇게 시작한 겁니다.”
– 먼저 땅부터 샀다고 들었습니다.
“어느 정도 기금이 모이자 땅을 사서 회관을 지으려고 했습니다. 부지를 물색하고 2011년과 2013년에 걸쳐 14만 달러로 4에이커의 땅을 매입했습니다. 건축위가 모은 돈만으로는 모자라 노인회와 한인회에서도 힘을 보탰죠. 당시 노인회장은 기은주, 한인회장은 김기환 회장이었습니다.”
기은주 전 어거스타노인회장
– 그 다음은 어떻게 됐나요?
“한인회관 추진위원회를 다시 구성했습니다. 말하자면 2기 건축위원회였죠. 전직 한인회장단과 한인회 이사, 임원 등 모두 11명이 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위원장은 김기환 전 한인회장이 맡았고요. 활동을 하면서 회관 신축 계획을 재검토하게 됐습니다. 사 둔 부지 값이 많이 올라 직접 건물을 짓는 것보다 그 땅을 팔아 건물을 사는 것이 더 낫겠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인 거지요. 그래서 2021년 3월에 땅을 팔았습니다. 40만불을 받았죠. 처음 구입 때보다 몇 배나 오른 금액이었습니다. 그 돈으로 올해 6월 딘스브리지 로드 선상의 단독 건물 매입한 겁니다.”
건물은 은행이 있었던 자리로 큰 길가에 반듯하게 들어서 있었다. 앞뒤로 주차장이 있고 내부도 깨끗했다. 주소는 3109 Deans Bridge Rd. Augusta, GA이다.
전현직 임원들이 직접 실내 공사를 하고 있다. [송형섭 전 회장 제공]
– 회관 마련의 기쁨이 컸겠습니다.
“감격스러웠습니다. 조지아에선 애틀랜타에 이어 두 번째 자체 한인회관을 가지게 된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한국 정부나 총영사관 등 어떤 외부 지원도 없이, 그것도 은행 융자 하나 받지 않고 100% 우리 돈으로 장만한 것입니다. 어찌 감격스럽지 않았겠습니까. 어거스타 한인들이 자랑스럽습니다”
– 앞으로 어떻게 활용할 건가요?
“교육장으로도 쓰고 어르신들 모임도 하고, 간단한 행사나 문화 활동, 모임 장소 등으로 두루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매달 페이먼트 걱정도 없습니다. 운영만 잘하면 되는 거지요. 회관 관리에 어려움을 겪어 힘들어하는 지역도 있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 초심을 지켜갈 것입니다. 우린 모두 어거스타 한인들이니까요.”
– 말씀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군요. 준공식은 언제 하나요?
“보시다시피 지금 한창 리모델링 중입니다. 건축위원들이 틈틈이 직접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바닥도 그렇게 다 깔았습니다. 11월 중에 모든 공사를 마치겠다는 목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성대하게 준공식을 할 겁니다. 꼭 축하해주러 오세요.”
한인회 전현직 임원들이 봉사세터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김승환 사무총장, 이순환 전 회장, 장영진 회장, 김찬곤 전 건축위 감사, 최은숙 부회장, 김기환 건축위원장.
짧은 만남이었지만 여운은 길었다. 그날 만난 분들에게 한인회관 마련의 주역들이라며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우리가 다가 아닌데”라며 함께하지 못한 분들에게 미안해했다. 이런 마음가 곧 어거스타 한인사회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은 추석잔치 봉사자들이 인정스럽게 챙겨준 송편으로 대신했다. 입안 가득 머금은 떡에도 어거스타 향기가 짙게 배어 있었다.
글·사진=이종호 애틀랜타중앙일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