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인구 70만 조지아 2번째 도시
PGA 매스터스 골프 개최지로 친숙해
어거스타 수로, 모리스 미술관도 유명
#. 골프, 입문은 15년이 넘었지만 타수는 늘 제자리다. 연습 안 하고, 필드 나가는 것도 1년에 손꼽을 정도이니 당연한 결과다. 그럼에도 골프 이야기는 즐겨 읽고 듣는다. 어거스타에 대한 관심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매년 4월이면 세계를 들썩이게 만드는 도시, 미국 프로골프(PGA) 매스터스의 본거지를 조지아 살면서 어떻게 외면하겠는가.
매스터스 골프대회가 열리는 내셔널 골프클럽. 외부와 철저히 차단돼 있다.
어거스타, 한 번은 가 걸어보고 싶었다. 그런데도 조지아 생활 2년이 가까워 오는 동안 여태 가보지 못했다. 어거스타에 가겠다고 하면 “거기 뭐 볼 게 있어요?”라는 얘기를 자꾸 들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마침 그곳 한인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안 내려갈 이유가 없었다.
간 김에 주말 하루를 더 머물며 어거스타리버워크(Augusta Riverwalk)를 걸었다. 기대 이상이었다. 인접한 미술관도 관람하고 다운타운 도심도 구경했다. 들어가진 못했지만 그 유명한 내셔널 골프 클럽(Augusta National Golf Club) 주변도 배회했다.
리버워크 입구에 있는 호텔.
국립유산지역으로 유명한 어거스타 수로(Augusta Canal)도 찾아갔다. 애틀랜타서 약 140마일. 두 시간 남짓 거리다. 서두르면 당일로 다녀와도 충분하고, 하루를 더하면 좀 더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이색 여행지, 어거스타 이야기다.
어거스타 다운타운.
#. 어거스타는 조지아 중부 동쪽 끝, 사바나 강변에 자리 잡고 있다. 강을 건너면 바로 사우스캐롤라이나 땅이다. 어거스타는 영국 식민지 시대였던 1736년에 설립됐다. 1733년에 건설된 사바나에 이어 조지아에선 두 번째로 오래된 도시다.
어거스타라는 이름은 영국 국왕 조지 3세의 어머니이자 웨일스 왕자 프레드릭의 신부였던 어거스타 공주(1719~1772)에게서 유래했다. (동북부 메인주에도 어거스타가 있다. Augusta, 철자도 같다. 메인주 주도로 관광객이 제법 찾는 곳이다.)
어거스타-리치먼드 카운티 시청.
어거스타는 조지아 세 번째 큰 도시다. 2020년 센서스에 따르면 인구순으로 조지아 4대 도시는 애틀랜타(514,457명)-콜럼버스(210,330명)-어거스타(203,329명)-사바나(150,078명)순이다. 리치먼드, 콜럼비아 등 주변 카운티까지 포함하면 메트로 어거스타 인구는 70만 명에 이른다. 사실상 조지아 ‘넘버 2’다.
애틀랜타를 비롯한 조지아의 많은 도시들이 남북전쟁 때 파괴됐지만 어거스타는 무사했다. 남부 면화 산업의 중심이라는 전략적 위치 덕분이었다. 지금도 19세기 초중반 고풍스러운 옛 건물을 꽤 많이 볼 수 있다.
어거스타는 식민지 시대 교통, 산업의 요충지로 번성했지만 수송수단이 철도, 항공으로 이전하면서 옛 명성을 잃어갔다. 잦은 사바나강 범람으로 제방을 쌓았음에도 홍수피해가 끊이질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1970년에는 흑인 차별에 항의한 폭동까지 일어나면서 도시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사바나강을 가로지르는 녹슨 철교. 아래로 보트나 카약 등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대여소가 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각성이 일어났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도시 되살리기 운동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다운타운 6가에서 11가 사이 강변에 개발된 어거스타 리버워크(Augusta Riverwalk)는 어거스타 부흥을 위한 야심찬 프로젝트의 산물이었다.
어거스타리버워크는 시민들의 휴식처다. 주민들이 강가에 나와 휴식을 취하고 있다.
1986년부터 공사가 시작됐다. 사바나 강변에 공원을 만들고 제방 위아래로 산책로도 조성했다. 트레일은 왕복 3.4마일, 느긋하게 1시간 정도면 다 돌아볼 수 있는 거리다.
1989년에는 1800석 규모의 야외 극장(Amphitheater)도 착공됐다. 지금 주말이면 각종 공연이 펼쳐지는 제시 노먼 원형극장이다. 이어 리버프론트 센터와 모리스 미술관(Morris Museum of Art)도 들어섰다. 이제 리버워크는 명실상부한 어거스타의 관광 레저 문화 중심이 됐다.
리버워크 강변 산책로.
#. 9월 주말 아침 어거스타 리버워크를 걸었다. 주 출입구는 모리스 미술관이 있는 10가 인근이다. 남쪽 끝 6가 인근 철교 아래 쪽으로도 주차장이 있다. 나는 모리스 미술관에서 시작해 사바나강 철교 부근까지 1시간 가량 걸었다. 강변길은 한적했다. 간혹 혼자 뛰는 사람, 짝을 이뤄 걷는 사람, 개와 함께 산책하는 노인들이 스쳐 갔다. 인적이 없어 스산하지 않을 정도의 사람 숫자였다.
리버워크 제방 위로 산책로는 포장이 되어 있다. 자전거를 타기에도 좋다.
강 건너에는 커다란 집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집집이 보트를 댈 수 있는 데크가 있고, 크고 작은 배들이 정박돼 있었다. 미국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부촌 풍경이었다. 이른 시간부터 사바나강에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도 있었다. 낚시줄 아래로 아침 햇살을 받은 물빛이 은빛으로 반짝였다. 물새 두 마리가 낮게 날았다. 평화로웠다.
강태공들이 사바나강에 낚시대를 던진 채 세월을 낚고 있다.
지난해 들렀던 항구도시 사바나의 리버프론트가 생각났다. 비슷한 듯 많이 달랐다. 그곳 역시 이런 강변 공원이지만 수많은 가게와 즐비한 고급호텔로 조지아의 대표적 관광 명소가 되어 있다. 텍사스 샌안토니오 리버워크도 떠올랐다.
도심 운하 양옆으로 조성된 산책길은 쇼핑과 먹거리 명소가 되어 샌안토니오를 먹여 살리는 효자 관광지가 됐다. 어거스타 리버워크도 그렇게 되기를 꿈꿨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은, 아니 한참은 요원해 보였다. 외지인들을 불러들일 만한 인프라가 주변에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 결정적 이유일 터이다.
주말이면 각종 공연이 열리는 야외 공연장. 사바나강 건너로는 고급 주택들이 보인다.
사람 몰려드는 유명 관광지가 되는 게 꼭 좋기만 할까는 의문이다. 주민 입장에서, 혹은 나같은 여행객들에겐 지금 이 모습 이대로의 여유가 더 좋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걸으며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어떤 보약보다 몸에 좋은 여유와 휴식을 즐기는 것 같았다.
얼굴 맞대고 앉아 밀어를 나누는 젊은이, 함께 나와 담소하는 가족들, 두 손 잡고 여유롭게 걷는 부부, 무시로 세월을 낚는 강태공들, 그들의 유유자적함이야말로 번잡한 관광지에선 쉽게 볼 수 없는 풍경들이었다.
젊은 연인들이 강변에 앉아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다
리버워크 산책 후엔 모리스 미술관(Moris Museum of Art)도 둘러봤다. 이곳은 어거스타 크로니클 발행인이었던 윌리엄 모리스 3세(William S. Morris III)가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설립한 미술관으로 1992년부터 일반에 공개됐다.
남부의 풍광과 생활을 표현한 그림과 사진, 조각, 공예 작품들이 넓은 전시실마다 가득가득 전시돼 있었다. 작품들을 감상하며 남부 출신 작가들이 과거 흑인들의 억눌림, 아픔과 슬픔을 수준 높은 예술로 치환함으로써 미국 미술의 다양성을 확장시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리스 미술관. 일요일은 무료다.
미술관은 화~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 일요일은 정오부터 개관하며 입장료는 무료다. 월요일은 휴관. 관람료는 어른 5달러, 학생 및 군인은 3달러, 12세 이하는 무료다. ▶주소 : 1 10th St. Augusta, GA 30901.
모리스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 남부 생활을 묘사한 작품들이 많다.
#. 어거스타 수로(Augusta Canal)도 빠뜨릴 수 없었다. 어거스타 수로는 조지아주에 3개밖에 없는 국립유산지역(National Heritage Area) 중의 하나다. 나머지 둘은 애틀랜타 인근 아라비아 마운틴과, 대서양 연안 사바나 일대의 아프리카 흑인 노예 생활 문화를 간직한 굴라 지치 문화유산 회랑(Gullah Geechee Cultural Heritage Corridor)이다.
어거스타 수로는 사바나강 물줄기로 따로 흘려 만든 인공 수로다. 1845년 완공됐으며 길이는 약 8마일이다. 19세기 목화나 직물 등의 이동 통로로 이용됐으며 지금은 전기를 생산해 어거스타에서 사용하고, 남는 전력은 조지아파워에 판매한다고 한다. 수로 주변은 산책로와 공원으로 개발되어 어거스타 주민들의 휴양지로 이용되고 있다.
어거스타 수로
수로 산책로로 접어드는 입구는 여러 곳이다.
어거스타 관광 안내 사이트에서 소개하고 있는 트레일 헤드는 Headgates at Savannah Rapids Park /Water Pump Station, end of Riverlook Drive /Lake Olmstead, end of Milledge Road(access to River Levee, Towpath, Mill Village trails) /Mill Village Trailhead, Grace Street near Kroc Center /Discovery Center at Enterprise Mill /Old Turning Basin at 13th Street, near Walton Rehab Hospital 등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곳은 어거스타 수로 시작점인 래피드 파크(Savannah Rapids Park: 3300 Evans to Locks Rd., Martinez)다. 33에이커의 큰 공원으로 숲과 공원이 잘 조성돼 있다.
여행객들은 수로의 남쪽 끝, 도심 가까운 어거스타 캐널 디스커버리센터(주소: 1450 Greene St. Augusta, GA 30901)도 많이 찾는다.
나도 이곳 주변 트레일을 1시간 정도 걸었다. 트레일은 둑을 따라 북쪽으로 이어져 있었고 수로의 물은 생각보다 맑고 물살도 빨랐다. 다만 기대했던 나무나 숲이 없어 땡볕 아래 걸어야 한다는 것은 아쉬웠다.
옛날 방적 공장 건물을 개조한 디스커버리 센터는 어거스타 수로에 관한 과거와 현재의 모든 내력을 전시해 놓은 일종의 방문자센터다.
조지아 어거스타 관광 안내 책자들.
* 메모: 피니지 습지 자연공원 (Phinizy Swamp nature Park, 1858 Lock & Dam Rd. Augusta, GA 30906)도 어거스타 소개 책자엔 빠지지 않는다. 1100에이커의 도심 늪지대로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지로 유명하다. 로컬 맥주 양조장인 리버워치 브루어리(Riverwatch Brewery, 1175 4th St, Augusta, GA 30901)를 추천하는 글도 많다.
글·사진=이종호 애틀랜타중앙일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