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년간의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유명을 달리하시는 한인분들의 소식을 종종 들었다. 그러나 부고기사 등에 어디에도 코로나19로 돌아가셨다는 내용은 없었다. 돌아가신 것도 안타까운데 괜히 코로나19라는 병명을 적어서 찜찜할 필요는 없다는 이유일 것이다. 미국 신문 부고란이나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사망원인을 간략히 밝히는 미국인들의 풍습과는 전혀 다른 셈이다. 아마도 아시안 특유의 체면차리기(saving face)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UCLA 카이저 퍼머난테 의료평등센터(UCLA Kaiser Permanente Center for Health Equity)의 주재연구원인 윈스턴 왕 박사가 주장한 내용은 흥미롭다. 그동안 언론보도와 통념에 따르면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거나 사망한 인종 그룹은 주로 흑인 및 라티노 인구였다.
그러나 코로나 초기 기간 동안 가장 전염률이 높았던 뉴욕의 경우, 병원 입원률이 가장 높았던 그룹은 사실 중국계 미국인이었다고 왕 박사는 지적한다. 그는 아시아계에 대한 자료 부족을 원인으로 지적하며 “이런 사실은 뉴스 머릿기사로 단 한번도 보도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가하면 아칸소주 북서부에서 코로나로 인해 가장 많이 죽거나 병원에 입원한 그룹은 미크로네시아 이산민족 출신의 마셜제도 원주민이라고 왕 박사는 강조했다. 마셜제도 원주민들은 특히 사람이 빽빽히 모인 가금류 공장에서 일하면서 코로나 피해를 크게 입었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뉴저지주에서 가장 병원 입원률이 높은 집단 가운데 하나는 방글라데시인들이었다.
왕 박사는 아시안 이민자들의 코로나19 실태가 잘 알려지지 않는데 대해서, 의사와 간호사 의료관계자들이 해당 문화나 언어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 결과 아시안들의 피해 상황은 주 전체 차원에서 공유되지도 않았고, 코로나 피해가 심각한 지역 지원금 배분에도 활용되지 못했다고 그는 지적했다.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아시안 전문 의료연구기관인 아시안 헬스 서비스(Asian Health Services)의 회장 투 콰치(Tu Quach)도 이같은 왕박사의 주장에 공감한다. 그에 따르면 아시아태평양계 이민자들은 코로나19 때문에 또다른 피해를 겪었다고 지적한다. 바로 아시안 커뮤니티를 겨냥한 증오범죄(hate crimes)의 급격한 증가현상이다.
그는 “우리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바이러스 때문에 비난받았고, 또 바이러스 국면에서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무시당했다”며 “전임 대통령이 아시아계를 바이러스의 원인이라며 비난한 것이 원인”이라고 말했다.
콰치 화장은 “아시아계 병원 스태프와 환자들도 병원에 오는 길에 다양한 물리적, 언어적 폭력을 당했다”며 “그래서 아시아계 커뮤니티는 더욱더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야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시아계의 4분의 3은 무서워서 집안에 머무르고 있다고 말했다”며 “그러면 폭력은 피할수 있을지 몰라도, 코로나29 검사 및 다양한 의료 서비스 등을 받지 못해 위험한 상황에 빠질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쿼치 회장은 또 코로나19 관련 정보가 큰 피해를 입은 흑인과 라티노계에 집중됨에 따라, 정작 아시아 태평양계를 위한 코로나19 정보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콰치 회장은 “아시아계 커뮤니티는 피해를 입었지만, 그 사실이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결국 아시안 커뮤니티는 침묵속에 고통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시아계는 미국내에서 가장 급속하게 늘어나는 집단이며, 2050년에는 그 규모가 34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흑인, 라티노를 대상으로 한 의학연구결과는 많지만, 아시안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는 많지 않다. 국립보건연구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이 배분하는 의료보건 연구자금 가운데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1%도 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아시아태평양계에 대한 정보부족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에 있는 한인들은 의사에게 ‘아프다’거나, 변호사에게 ‘도와달라’고 잘 말하지 않는다. 의료보험이 없어서일수도 있고, 변호사비를 감당할수 없다고 지레 짐작하기 때문일수도 있다. 영어가 안돼서 도움을 청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혼자 꽁꽁 앓다가 나중에 전문가를 찾아가면 상황은 이미 걷잡을수 없이 악화된 경우가 많다.
그래도 힘들면 힘들다, 어려우면 도와달라고 말해보자. 주변사람도 좋고, 이웃 미국 사람도 좋고, 정부기관 사람들도 좋다. 힘든 이민생활에서 마음 터놓을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도움을 청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