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인생배우기 (7)
이른 아침 창문을 열면 제법 서늘한 공기가 밀려든다. 어느덧 가을이다. 가을이 오면,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시가 있고, 사람이 있고, 장소가 있고, 드라마의 한 장면도 있다. 다시 돌아오는 계절이 몰고 오는 기억들처럼 사람과의 만남이 몰고 오는 의미에는 어마어마한 것들이 담겨 있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의 의미와 진정한 환대가 무엇인지 잘 표현하고 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책을 펼치면 첫 장에 제목과 함께 비행기에서 내리는 승객들이 보인다. 어깨에 가방을 맨 작은 소녀가 집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피켓 옆에서 낯선 어른들을 만나고 있다. 수민은 그렇게 한국에서 택배처럼 비행기에 실려 미국의 새 부모에게 입양된다.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수민은 낯선 두려움을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 위로 받는다.
Anyah-No, Ahpo-Hurt, Gom-Teddy Bear, PoPo-Kiss 그리고 Goyangi-Cat. 수민을 입양한 부모님은 수민을 위해 간단한 한국말을 배운다. 하지만 수민에게는 말이 필요 없는 고양이가 더 의지된다. 어느 날 아침 고양이는 열려진 문틈으로 사라져 돌아오지 않고, 수민과 가족은 고양이를 찾아 동네를 헤맨다. 수민은 집을 잃은 고양이가 얼마나 외롭고 두려울지 알고 있다. 자신이 그러했으므로. 수민은 한국말로 고양이를 부르며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시간이 흘러 다시 돌아온 고양이를 만났을 때, 수민은 마침내 웃는다.
이 책의 작가 크리스틴 맥도넬(Christine McDonnell)은 학교에서 사서이자 교사로 근무하면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 여러 책을 썼다. 그리고 실제로 한국아이 두 명을 입양한 엄마라고 한다. 수민은 네 살 때 입양되어 지금은 잘 자랐지만, 입양아의 슬픔과 상실감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음을 작가는 말한다.
책 가운데 ‘고양이, 어린이, 집, 가족, 사랑, 엄마, 아빠, 먹다, 돌보다’ 같은 단어들이 한글로 적혀있다. 고양이의 부드러운 털처럼 그림은 따뜻하고 포근하게 그려졌다. 따뜻한 단어와 부드러운 그림은 새로운 가족을 찾은 수민이 느꼈을 위로와 평안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림책을 보는 나의 마음은 어둡기만 했다.
해외입양아 국적취득 현황에 따르면 1970년 이후,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아동은 10만 6천여 명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6만 2천 명 가량만 미국 국적을 취득해서, 5명 중 2명은 무국적자라고 한다. 한국에 살 때는 미국에 입양된 사람이 왜 미국국적을 받지 못해 추방대상이 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별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작은 범죄에라도 연루되면 강제 추방되어 한국으로 보내지는 입양아들은 한국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나라에서 말도 통하지 않고 찾아갈 가족도 없이 버려지는 것이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버려졌던 아이가 자라서 미국에서 한국으로 버려지는 악순환이다.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입양인 시민권법’이 올해 2월 4일에 미국 연방 하원 의회를 통과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하지만 정식으로 법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상원과 미국 대통령의 서명이 되어야 한다는데, 아직 최종 통과에 대한 소식은 찾을 수 없다. 단지 여러 한인 단체와 사람들이 법안 통과를 위해 힘을 모으고 애쓰고 있다는 기사만 보인다.
순수한 아이 같은 마음으로 그림책을 보다가 미국 법안까지 찾아보게 되는 현실에 길을 잃고 헤매는 고양이가 된 기분이다. 길고양이 한 마리의 상처도 제대로 치유하기 어려운데, 어린 시절 버림받은 사람의 상처는 영원히 아물지 못하고 작은 자극에도 터져버릴까 무섭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