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이민자들을 모조리 감옥에 집어넣자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우리 조상들은 미국에 합법적으로 이민왔는데, 너희들도 법을 지켜라”는 소리를 한다. 그러나 미국의 역사, 특히 이민의 역사를 알게 된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조상이 100, 200년전에 미국에 이민왔을 때는 이민’법’이라는게 아예 없었고, 따라서 합법 이민, 불법이민이라는 개념은 더더욱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예일대학 출판부(Yale University Press)에서 나온 ‘이민: 미국의 역사’ (Immigration: An American History)라는 책은 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이민 문제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사실은 미국 역사에서 여러차례 되풀이된 일임을 설명한다.
에를 들어 미국 건국 직후만 하더라도 이민법은 커녕, 미국 시민에 대한 법률 규정도 없었다. 건국 5년 후에 제정된 시민권법(Naturalization Act of 1790)은 무슨 수단을 쓰건 일단 미국에만 도착해서 2년을 살면 시민권을 주었다. 물론 ‘도덕적인 품성을 갖춘 자유민 백인’에게만 시민권을 준다는 인종차별적 조건도 빼놓지 않았다.
남북전쟁 후 노예해방을 위해 제정된 1866년 민권법(Civil Rights Act of 1866)은 흑인에게 시민권 부여를 허가했지만, 중국인 등 아시아계는 미국에 거주할 권리만 주어졌을 뿐 시민권을 취득할 권리는 없었다. 중국계가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게 된 것은 30여년이 지난 1898년 연방대법원의 United States v. Wong Kim Ark 판례부터였다. 이렇게 백인이 아닌 이민자들은 ‘합법적 미국인’이 될 길이 원천봉쇄됐던 것이 미국 이민법의 역사다.
이 책의 저자인 하샤 다이너(Hasia Diner) 뉴욕대 역사학 교수에 따르면, 1차대전 직후 경제불황과 몰려드는 중국, 일본, 한국계 이민자들을 노란색 위험(yellow peril)이라며 경계했다. 결국 미의회는 잇단 반이민법을 통과시킨다. 1920년 긴급 이민쿼터법(Emergency Quota Act)은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이민 쿼터를 엄격하게 제한했고, 1924년 아시안 배제법(Asian Exclusion Act)은 이들 국가의 이민을 원천봉쇄해버렸다. 불과 5년전 트럼프 행정부 시절 벌어졌던 중동 7개 국가 입국금지 명령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미국 영사가 대사관에서 이민 희망자를 인터뷰하고 비자와 영주권을 발급하기 시작한 것도 1920년대부터다. 그 전에는 어떻게든 미국에만 도착하면 시민권의 길이 열렸던 때와 달리, 이제는 미국에 오기 전부터 법적 장벽이 생긴 것이다. 다이너 교수는 “비자와 인터뷰가 생기면서 1930년대 나치 독일의 탄압을 피해 출국한 유태인들의 미국 입국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었다”며 “그런 유태인들이 몇년 후 어떤 최후를 맞이했을지 상상해보라”고 지적했다.
이 책의 공동저자인 알바니 대학 칼 본 템포 (Carl Bon Temp) 교수에 따르면, 요즘 미국사회가 겪고 있는 멕시코 국경 난민문제만 해도 원래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에 따르면 1970년대만 해도 미국-멕시코 국경 경비는 동네 경찰이 했고 예산도 충분치 않았다. 요즘처럼 국경 경비가 강화된 것은 9.11을 계기로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 그리고 마약과의 전쟁(War on Drugs) 등 정치적 이유 때문이다.
기후변화와 경제난으로 인한 이민자들의 캐러밴 행렬도 미국 역사에 몇번이나 반복되던 일이다. 19세기 중반 아이리쉬 이민자들은 감자 전염병 창궐로 굶주림에 시달리다 미국으로 이민을 시도했고, 1890년대에는 이탈리아 북부 흉작으로, 1850년에는 리투아니아의 기아로 배고픔에 시달린 이들 국가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몰려왔다. 오늘날 경제난으로 인해 미국 밀입국을 시도하는 중남미 국민들과 다를 바가 없다. 이들 국가 출신 조상을 둔 백인들이 멕시코 국경 캐러밴을 ‘밀입국자’라고 비난하는 것은 ‘개구리 올챙이적 모르는 꼴’이다.
템포 교수는 “미국의 이민제도는 절대 불변이 아니고, 우리가 만든 것이며 우리가 고칠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 말대로, 우리 한인들이 이민자들의 의지를 모으면 투표와 정치 참여로 더욱 좋은 이민법과 사회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