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걷는 멤버 중에 한 분 생일이라고 네 쌍의 부부가 음식점의 작은 방에 모여 잡담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람수가 모두 8명이다보니 남자들과 여자들이 모두 어울려 수다를 떨었다.
부부싸움이 수다의 중심이었다. 동참한 부부들은 오랫동안 같이 살았고 이젠 같이 늙어가는 부부들이다. 말 다르고 문화 다른 일터에서 은퇴하고, 먹고 살만 한 여유도 있고, 자녀들은 저들의 삶을 살아가니, 이젠 고생 끝낸 부부가 서로를 위로하며 행복하게 살아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 어느 부부나 다 부부싸움을 한다는 솔직한 고백들이 쏟아졌다. 모두들 배꼽을 잡고 웃었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우리 부부사이에서 이견이 있어 다툼을 하면 내가 이겼거든요. 이젠 아니어요. 그 반대요. 이젠 마누라 말을 들어야 해요! 마누라 말 안 들었다 가는 쫓겨나게 생겼어요.” 모두들 큰 소리로 웃었다. 나도 크게 웃은 이유는 공감하기 때문이다.
“누구와 말을 할 때 내가 말하면, 남편은 왜 끼어드느냐고 해요. 나는 뭐 입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남편은 자기말에 내의견을 말하면 왜 토를 다느냐고 덤벼요. 나는 내 의견을 말하면 안 되는 거처럼 말해요. 집안 일은 내가 더 많이 해왔고 더 잘 아는데.” “걸혼하고 처음에는 아내가 안 그랬거든요. 지금은 말 끝마다 토를 달아요.”
“난 바빠 죽겠는데 저 남자는 집안에서 꾸물대니 잔소리를 안 할 수가 있어요?” “늘 같이 붙어 있으면 더 싸워. 우리 남편은 밖으로 나돌아서 나는 내 하고싶은 것 하니 그래도 덜 싸우지. 금방 들은 이야기도 뭐냐 고 되묻고 또 물어봐, 귀찮고 화나지.”
“말 많아진 여자 말을 참고 들어보면, 말이 동쪽 갔다 서쪽 갔다가, 당장 일을 말하다가 옛날 이야기를 하다가, 목줄 끈긴 가축처럼 어디로 뛸지 종잡을 수가 있어야지.” “방에서 또 불을 안 끄고 나오는 버릇 자각시키려, 불 안 끄고 나왔다고 하면, 옛날에 내가 잘못한 것을 다 들고나와 싸우자고 하니 참.”
“남편이 화를 낸다는 것은 아직도 기가 살아 있다는 거잖아요. 남자들은 기가 죽으면 일찍 죽어요. 남편 기를 살리기 위해서도 부부 싸움이 필요해요.” “싸우다 가도 내 손을 잡으며 남편이 말해요. 여보, 그래도 당신이 건강하게 옆에 있어서 고마워요.”
“여행가서 오늘 빠진 부부도 부부싸움 할까?” “남편이 너무 착해서 그들은 부부싸움 안 할 거야.” “부부싸움 않는 집은 없어요!” 동화의 끝에 해피-엔딩, ‘그리고 두 사람은 영원히 행복했습니다’는 가짜이고 미신이라고 한다. 진화 과정에서 우리 뇌는 불만족하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만족과 쾌락이 영원하다면 지속적으로 발전을 추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초집중” 이라는 책 속에 그런 인용문이 있다.
많은 남자들이 직장에서 일할 땐 부인의 의견과 마주칠 기회가 없었다. 남편이 은퇴하고 집에만 들어앉아 오랜 세월 부인이 전담해온 가정일에 끼어들어 분담하고 공유하는 과정에서 부부싸움이 일어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왜 엄마 아빠의대화는 늘 말싸움 같아!?” 큰 아들이 우리 부부에게 말 한 적이 있다. ‘사사건건 내가 아 하면 마누라는 어 하며 어깃장을 놓는 걸까?’ 나는 한때 심각했다. 중대한 문제는 말을 하지 말고 글로 적어서 전달하고 아내도 글로 대답하게 시도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조촐한 생일 파티에서 부부싸움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며 듣고 보니, 안심이 되었다. 부부싸움 안 하는 부부가 없어 보이고, 사람은 누구나 보다 더 진화하기위해서 불만족이 필수로 온다는 말에 동감하기 때문이다.
부부싸움에서 힘이 강한 남편이 부인에게 하는 폭력, 싸우는 소리가 이웃까지 들리는 공해, 부부 싸움에 상처받은 자녀들, 이혼으로 이어지는 부부싸움, 그런 부부싸움이 아닌 우리들의 부부싸움은, 그 방법과, 환경과 심각성이 다르다. 우리들이 나눈 부부싸움은 대화 속 갈등이라고 할까?
“부부싸움 끝날 때쯤 내 손을 잡으며 남편이 말해요. 여보, 그래도 당신이 건강하게 옆에 있어서 고마워요.” 라고 말한 분 같이, 대화속에 갈등이 오면 부부가 손을 잡고, 서로의 다른 의견을 말하고, 진지하게 듣고, 그래서 한사람의 의견이 부부의 의견이 아니라 합의된 의견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야당이 있어 집권 여당의 정책을 비판하는 민주주의 제도가 한사람의 독제정치보다 더 진화 진보된 제도인 것처럼, 은퇴후에 가사도 분담하고 부부의 의견이 합의된 의견으로 진화하기 위한 과정에서 의견 충돌이 부부싸움이라는 형식으로 일어나는 것 같다. 그 형식과 과정이 과격하지 않고 사랑 안에서 부드럽도록 노력해야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