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는 인간형 로봇 ‘에이다’가 로봇으로서는 처음으로 영국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했다고 영국 주요 매체들이 11일 보도했다.
외형상 인간 여성과 닮은 에이다는 이날 TV로 생중계된 영국 상원 통신·디지털위원회 청문회에 발명자인 에이든 멜러와 함께 나와 의원들의 질문에 답했다. 이 청문회는 새로운 기술들이 예술·창작 분야 산업에 미칠 영향을 토의하는 자리였다.
생중계 영상에서 에이다는 단발 길이의 검은 가발과 짙은 빛깔의 데님 멜빵바지를 입고 있었으나, 팔 부분은 기계 골격이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멜러는 에이다를 세워 놓은 후 옆 자리에 앉아 개발 과정과 원리를 설명하면서 “대답을 하는 데 쓰이는 AI 언어모델이 더 좋은 대답을 할 수 있도록,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 미리 제출해 줄 것을 (의원들에게)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어 에이다가 계속 기립한 자세로 의원들의 질문에 답했다. 목과 머리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는가 하면, 눈을 깜빡이고 입을 움직이는 등 인간의 행동을 본뜬 움직임을 보였다.
영국 상원 청문회 출석한 에이다와 발명자 에이든 멜러. 청문회 TV생중계 화면 캡처
에이다는 데버라 불 상원의원에게서 “어떻게 예술 창작을 하며, 창작물은 인간의 창작물과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을 받고 “(두)눈에 달린 카메라, 인공지능(AI) 알고리즘, AI 로봇 팔을 이용해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이를 통해 시각적으로 매력적인 이미지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는 컴퓨터 프로그램이자 알고리즘이며, 또 그에 의존합니다. 비록 나는 생명체가 아니지만 예술을 창작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에이다는 또 자신이 대규모의 텍스트를 분석해 공통의 내용과 시적 구조를 파악하고 이런 구조와 내용 등을 활용해 새로운 시를 지을 수 있다고도 밝혔다.
에이다는 “이것이 인간과 다른 점은 ‘의식'”이라며 “내게는 주관적 경험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능력은 있습니다만”이라고 덧붙였다.
청문회에서 답변하는 에이다. 연합뉴스 유튜브 화면 캡처
청문회 도중 에이다가 한동안 ‘먹통’ 상태가 되면서 진행이 몇 분간 중단되기도 했다.
옆 자리에 앉아 있던 멜러는 자리에서 일어나 에이다에게 선글라스를 씌운 후, 허리를 숙여 에이다의 다리 쪽에 있는 전원 스위치를 껐다가 켜는 듯한 동작을 하고 나서 에이다에게 씌운 선글라스를 도로 벗기는 등 리셋하는 절차를 거쳤다.
에이다는 예술 창작에 있어 기술의 역할에 관한 린 페더스톤 상원의원의 질문에는 “계속해서 커질 것”이라며 “예술가들이 기술을 이용해 자신을 표현하고 기술, 사회, 문화 사이의 관계를 성찰하고 탐구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고 있다”고 답변했다.
에이다는 2019년 완성된 이래 꾸준히 화제가 돼 왔으며, 이 로봇이 그린 그림들은 여러 미술관과 화랑에 전시됐다. 작품 중에는 지난달 세상을 떠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그린 것도 있다. 첫 개인전은 2019년 2월에 옥스퍼드대에서 했다. 작년에는 런던의 디자인 뮤지엄에서, 올해는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각각 개인전을 열었다.
발명자인 에이든 멜러는 옥스퍼드와 런던 등에서 화랑을 운영하고 있다.
에이다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그는 이날 청문회에서 에이다의 제작 배경을 설명하면서 프로젝트에 약 30명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에이다의 제작은 콘월 지방에 있는 로봇 회사인 ‘엔지니어드 아츠’가 담당했다. 에이다의 AI 부분은 옥스퍼드대 컴퓨터 AI 연구진이, 단색 소묘를 하는 로봇팔은 리즈대 전자전기공학부 학부생 살라헤딘 알 아브드와 지아드 아바스가 각각 개발했다. 물감이 담긴 팔레트를 이용해 그림에 채색할 수 있는 로봇팔은 올해 4월 추가됐다.
‘에이다'(Ai-da)라는 이름은 ‘인공지능’의 약어인 ‘AI’라는 말과, 세계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꼽히는 수학자 겸 저술가 러블레이스 백작부인 에이다 킹(1815∼1852)의 이름을 딴 것이다. 연합뉴스.